[사설] 양식 팽개친 ‘응급실 블랙리스트’ 엄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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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막힌다.
의료공백으로 시시각각 살얼음판을 걷는 와중에 응급실에서 분투하는 의료진의 실명을 공개한 '블랙리스트'까지 나왔다.
'추석 명절에도 응급실을 지켜 주시는 선생님'이라는 식의 조롱에 대인기피증을 겪는 의료진도 있다고 한다.
의료 현장 의사들의 실명을 악의적으로 공개하는 행태는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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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여야의정 협의체 논의 나서라
말문이 막힌다. 의료공백으로 시시각각 살얼음판을 걷는 와중에 응급실에서 분투하는 의료진의 실명을 공개한 ‘블랙리스트’까지 나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응급실 부역’ 코너가 개설돼 병원별 응급실 근무 인원과 실명이 비난글과 함께 실렸다. ‘응급실 뺑뺑이’로 온 국민이 걱정인데 추석 명절 근무자들을 조롱하다니 참담할 뿐이다.
‘감사한 의사’라는 사이트에 실린 내용을 보면 과연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의 게시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응급실에 남아 하루하루 버티며 환자를 돌보는 동료들의 실명 공개와 함께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추석 명절에 응급 환자를 돌보겠다는 의사들과 복귀 전공의들, 파견된 군의관 이름까지 공개됐다. ‘추석 명절에도 응급실을 지켜 주시는 선생님’이라는 식의 조롱에 대인기피증을 겪는 의료진도 있다고 한다.
이 문제는 처음도 아니다. 지난 3월 의사 커뮤니티에 병원에 남은 전공의들을 비꼬는 ‘참의사 리스트’가 올라왔다. 복귀 전공의 신상을 제보받는다는 글이 게시되면 개인 신상을 담은 답글도 이어졌다. 7월에는 수업에 복귀한 의대생들의 실명도 공유됐다. 이러니 일부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은 조리돌림이 두려워 병원과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집단이 직역 이익을 지키려고 이런 무도한 행태를 보일 수 있는지 공분이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응급실 파행까지 두고 볼 수 없어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사실상 전부 양보한 마당이다. 근무지 이탈의 책임을 묻기는커녕 그로 인해 생긴 수련 공백까지 눈감아 주기로 했다.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해 의료계가 의견을 내면 내후년 정원의 원점 재검토까지 하겠다고 정부는 물러섰다. 이런데도 의료계 태도에서는 꼬인 실타래를 풀겠다는 의지가 조금도 읽히지 않는다. 내년도 의대 정원의 70%에 육박하는 대입 수시 접수가 그제 시작됐는데도 그마저 백지화를 요구한다. 삼척동자도 현실 인식을 하겠건만 교수들이 삭발투쟁까지 하고 나섰다. 마지막 금도만은 넘지 말라고 후배와 제자들을 다독이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의료 현장 의사들의 실명을 악의적으로 공개하는 행태는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범죄다.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정부 조치를 과하다고 생각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민 생명을 지키는 최일선의 엘리트 집단답게 의료계가 자성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 줄 때다. 지금 의료계는 일치된 내부 의견조차 내놓지 못해 사분오열이다. 내부 동의를 얻은 대표성 있는 기구를 새롭게 구성해 여야정 협의체의 논의 테이블에 앉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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