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링위에 정부뿐"…4자협의체 열쇠 쥔 전공의 냉소
여야정, 전공의·의대생 협의체 참여 설득해야
(서울=뉴스1) 강승지 김규빈 기자 = 의료공백 해소를 위해 정치권에서 제기한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에 대해 전공의와 의대생은 어떤 입장일까. 상당수는 협의체에 크게 관심 없다며 그동안 정부의 태도에 질려 의업에 환멸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일부는 대한의사협회(의협)나 의대 교수단체들이 사태 해결에 나서는 걸 두고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11일 정치권과 의료계에 따르면 협의체를 제안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당 지도부는 추석 연휴 전 협의체 1차 회의 개최를 목표로 의협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을 접촉해 의견을 들은 걸로 알려졌다.
대전협과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 등은 줄곧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전날(9일)부터 2025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시작된 터라 백지화 요구는 관철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의사 단체들은 협의체 합류의 전제 조건으로 '백지화'를 내세우고 있다. 의협은 전날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증원 백지화는 전공의 복귀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했다. 의료계 한 인사는 "협의체 합류의 칼자루는 전공의와 의대생이 쥐고 있다"며 "그들의 동의나 지지 없는 협의체 합류는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고까지 했다.
대전협과 의대협은 협의체 합류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뉴스1>이 접촉한 전공의·의대생은 한목소리로 "정부와 정치권이 우리 얘기를 들을 자세가 돼 있어야 하고 참여는 그다음 문제"라고 털어놨다.
레지던트 임용 포기 전공의 A 씨는 "정부는 젊은이에게 의업의 환멸을 느끼게 했다. 혼자 북치고, 장구 친다"며 "대통령은 고집만 내세우니 이미 끝났다. 이제 병의원 이용이 힘들 거다. 그 힘듦에 익숙해지는 게 보건복지부의 큰 그림이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직 전공의 B씨는 "참여는 필요하나, 정부의 파격적 제안이나 모든 걸 내려놓는 모습을 봐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 참여했다가는) 이용당하는 것밖에 안 된다"며 "해결 방안은 없다. 내년 2월까지 돌아갈 생각 없고, 큰 변화가 없다면 3월 모집 때에도 절반 이상은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는 일까지 막으려면 대화를 할 수 있겠으나, 요구안이 명확해야 한다는 지적은 물론 협의체 구성에 환영 입장을 낸 일부 교수단체를 향한 적개심도 드러냈다.
수련을 이어온 전공의 C 씨는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며 "의료계는 우위를 점해 그간 얘기 못했던 의료사고 형사소송 면책, 수가 협상 등을 해야 한다. 지금 의협 회장 탄핵한다고 싸울 게 아니라 건의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사직 전공의 D 씨는 "의정갈등이라는 링 위에 정부만 남았다. 정부가 누구랑 싸우고, 협의하는지 모르겠다. 일종의 '섀도복싱'"이라며 "일부 교수들이 이 사태를 일종의 갈등으로 보는 게 사태를 길게 끌었다. 더 이상 갈등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지방소재 의대 본과 1학년 휴학생 E 씨는 "기성세대 간의 갈등으로 사회 초년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정부는 토론회나 포럼에 의대생을 초청한 적 있나"라며 "의대증원은 교수, 협회 이야기만 듣고 결정했다. 어른들 싸움에 꿈이 유예될 수만은 없다"고 토로했다.
의협과 전공의 대표와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임현택 의협 회장이 지난 5월 취임했을 때부터 "임 회장의 독단적 행동을 심히 우려하고 있다"면서 각을 세웠었다.
박단 비대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현택 회장은 사직 전공의와 휴학 의대생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박단, 의대협 비대위원장인 손정호, 김서영, 조주신은 그 어떤 테이블에서도 임 회장과 같이 앉을 생각이 없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임 회장 및 의협 집행부는 전공의와 의대생 언급을 삼가길 바라며, 임 회장의 조속한 사퇴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31일 의협 임시대의원총회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끌어내야 한다"며 임 회장에 대한 탄핵도 거론했다.
앞선 지난 7월 그는 "의대협 회장 시절, 의협은 필요할 때 '그래도 너흰 잃을 게 없잖아'라며 학생들을 전면에 내세웠고, 돌아서면 '그래서 너흰 아직 의사는 아니잖아'라며 외면했다"며 "젊은 의사들이 마음껏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달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들은 대정부 요구와 복귀 모두 전공의·의대생 각자 결정에 달렸지, 다른 이가 주도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의협이 의사 법정단체이긴 해도 전공의·의대생 입장을 반영할 수 없으며 임 회장에게 전략마저 부재한 데 따른 '최후통첩'으로 풀이된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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