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가업승계 활성화할 상속세 개편안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기업의 경영 승계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가혹할 정도로 높은 상속세 부담이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일본(55%)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보다 높다. 대주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에는 평가액에 20% 할증이 가산돼 상속세율은 60%까지 치솟는다.
상속세는 중소기업의 경영승계에서도 가장 큰 난관으로 꼽힌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인과 2세 경영자의 90% 이상이 과중한 상속세로 가업승계가 어렵다고 한다. 상속세 재원 마련이 어려워 가업승계보다 기업매각을 선택하는 중소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일본이나 독일처럼 3대 이상 승계되는 강소기업이 희소한 것도 높은 상속세에 기인한다.
과도한 상속세는 기업인에 대한 징벌적 과세로 작용해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기업의 존속을 위협한다. 복지국가인 스웨덴이 그랬다. 한때 최고 상속세율이 70%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 당시 상속세 부담을 피해 이케아(IKEA) 등 스웨덴 대표 기업들이 본사를 해외로 이전했다. 아스트라와 같은 제약기업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지분을 대량 매각해 주가가 폭락하면서 영국의 제네카가 인수했다. 기업들의 탈출과 매각이 경제에 악영향을 주면서 스웨덴은 2005년 상속세를 폐지해 지금은 상속세율이 0%이다.
우리나라 상속세제는 2000년 이후 25년간 변하지 않아 경제 규모의 성장을 반영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동안 국내총생산(GDP)과 1인당 국민소득은 3배 이상 증가했지만 상속세 과세표준 구간은 멈춰 있다.
상속세제의 시대적 낙후와 경직성을 인식한 정부는 지난 7월 새로운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25년 만에 추진되는 개편안은 몇 가지 과감하며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하향 조정하고 최대주주 보유주식 20% 할증평가를 폐지한 것이다. 최고세율을 미국이나 영국 수준으로 낮추고 기업인에 대한 징벌적 과세 성격의 할증평가를 폐지해 상속세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자 한다.
가업상속공제 적용대상에서 매출액 한도를 없애고 상호출자집단 소속을 제외한 전체 중소·중견기업으로 확대한 점도 눈에 띈다. 공제대상 요건에서 매출액 기준을 폐지한 것은 중소기업의 성장 동기를 촉진하고 중견기업의 가업승계를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밸류업 및 스케일업 우수기업의 공제한도를 2배로 상향한 것은 획기적이다. 주주환원액 비율을 높여 기업가치를 높이거나 투자액 및 연구개발(R&D) 지출액 증가율이 높은 중소·중견기업은 최대 공제한도가 6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늘어난다. 단순한 가업승계를 넘어 주주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성장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경제적 기여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비수도권 8개 지역에 설치된 ‘기회발전특구’에 본사를 설치하거나 전체 근로자의 50% 이상이 근무하는 기업은 무제한의 공제한도를 누릴 수 있다. 기업의 지방 이전을 촉진하고자 상속세 면제에 해당하는 강력한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이다.
가업상속 공제혜택의 초점을 기업가치, 성장성, 지역이전 등에 맞춘 개편안은 긍정적 방향 전환이라고 평가한다. 이전처럼 중소·중견기업이라고 획일적으로 혜택을 부여하지 않는다. 경제적 책임과 정책 목적을 우수하게 충족하는 기업에 선별적으로 혜택을 확대하고자 한다.
중소기업은 정부 지원과 혜택을 누리기만 했지 경제적·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부정적 인식이 중소기업의 가업상속 공제혜택을 확대하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으로 작용했다. 경제적 책임과 기여도를 고려해 공제한도를 늘리는 세제 개편안은 이런 비판을 불식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과연 이 같은 상속세제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할 것이냐다. 지금까지 정부가 상속세제 개편을 몇 번 시도했지만 ‘부의 대물림’이라는 국민 정서에 가로막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기업의 가업승계를 활성화해 경제를 살리는 세제 개편안에 여야 모두가 공감하고 뜻을 모아줄 것을 희망한다. 그게 진정한 민생정치다.
김영환 (kyh103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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