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조의 만사소통] 더위에 대한 단상

관리자 2024. 9. 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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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찐다.

더위가 모든 걸 밉게 만든다.

더위 때문에 도저히 집으로 바로 퇴근할 수 없다고.

이 또한 더위가 선사한 기막힌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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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잊고자 얼음장 맥주 한잔
오아시스 같은 시원함 느껴져
땀 범벅 뜀박질 후 야경은 압권
이기려 않고 받아들이니 ‘선물’
주변 바꾸려 빚는 갈등 불필요
있는 그대로 이해…멋진 소통

푹푹 찐다. 더워서 죽을 맛이다. 에어컨을 펑펑 틀자니 전기료가 걱정이다. 찬물을 연신 들이켜니 배가 아프다.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한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온 나라를 달구는 날씨가 밉다. 덩달아 주변 사람들도 미워진다. 하는 일도 미워서 하기 싫다. 더위가 모든 걸 밉게 만든다. 얼마 동안 더 이렇게 살아야 할까?

덥다고 한탄만 할 일일까? 이렇게 더위와 각을 세워 싸워야만 할까?

“한치와 땅콩 먹자니까.” “아니야 맥주엔 황도야.” 안주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곳은 호프집. 친구가 퇴근하면서 전화를 했다. 무조건 오늘 저녁에 보자고. 더위 때문에 도저히 집으로 바로 퇴근할 수 없다고. 동네 호프집에서 한잔 때리잔다. 오케이. 나도 마찬가지. 시원한 맥주가 간절했다. 짜짠. 먼저 냉동된 호프 잔이 나왔다. 얇은 얼음을 하얗게 덮어쓴 잔을 살며시 잡았다. 오 마이 갓. 이 차갑고 청량한 설국의 느낌. 바로 이거지. 곧장 얼음장 같이 차가운 맥주를 들이켠다. 북극의 찬 기운이 목 줄기를 타고 온몸에 퍼진다. 으으으. 정신이 얼얼하다. 그렇다. 여름밤에 마시는 차디찬 맥주, 폭염 속에 마시는 맥주, 이건 분명 오아시스다. 더위 때문에 더 맛있는 것이 아닐까?

휴일 오후, 점심을 먹고 선풍기 앞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벌써 2시간째다. 처음에는 살포시 잠을 잤다. 20분 정도. 눈을 떴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편해도 너무 편해서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뒹굴고 있다. 멍하니 선풍기 바람만 쐰다. 누군가 말했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은 비워내는 것에서 나온다고. 빈둥거리며 멍 때리기 속에서 창의가 나온다고. 그 위대한 창의가 나오려나. 계속 게으름을 피운다. 이 또한 더위가 선사한 기막힌 선물이다.

여름밤 공기를 가르며 어설픈 조깅을 한다. 밤 공기를 가르다니. 걷는 건지 뛰는 건지 알 수 없는 뜀박질인데. 간만에 뛰는 것이라 뒤뚱뒤뚱 뭔가 어색하다. 공기를 가를 정도면 우사인 볼트나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튼 집 앞 천변을 뛴다. 집에 있으면 더우니까 나와서 뛴다. 땀이 줄줄 흐른다. 한 바가지를 넘어 한 드럼통은 될 것 같다.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땀을 흘리니 시원하다. 이 역시 더위가 준 선물이 아닐까? 뛰다 보니 어느새 한강에 닿았다. 와 저 멀리 보이는 야경이 황홀하다. 자주 보는 야경이지만 땀 흘리고 숨 할딱이며 보는 야경은 더 압권이다. 더위야 고맙다.

그러고 보니 더위를 이길 방법은 많다. 아니 이기는 것이 아니라 즐길 방법은 천지다. 더위가 주는 선물이 참 많기 때문이다. 더위야 어서 오너라를 외치며 즐기면 어떨까? ‘있는 그대로 본다’라는 말이 있다. 주어진 것을 탓하지 말고, 바꾸려 하지 말고, 그냥 그것 자체를 인정하라는 뜻일 거다. 어떤 대상을 존재하는 그 모습 그대로 놔두고 좋은 면을 바라보라는 것일 게다.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여름은 당연히 더운 것이다. 더워야 여름답다. 이걸 탓할 수 없다. 여름다움을 오히려 즐기면 된다.

비단 더위만 그럴까? 우린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사람을 바꾸려 하고, 내 주변을 바꾸려 한다. 그래서 사람과 갈등하고, 자연을 훼손하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이게 멋진 소통이 아닐까?

흐흐 더위야 반갑다. 내 너를 즐겨주마.

김혁조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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