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필라델피아, 11월 대선에서 해리스 승리 이뤄낼까 [뉴스에 안 나오는 美 대선 이야기]
편집자주
트럼프와 해리스의 ‘건곤일척’ 대결의 흐름을 미국 내부의 고유한 시각과 키워드로 점검한다.
<4> 대선의 '쐐기돌', 펜실베이니아
경합주 흐름 선도하는 펜실베이니아
공화당 농촌, 민주당 도시에서 우세
필라델피아 흑인 유권자 응집이 관건
오늘은 미국에서 가장 경건한 날인 '9·11 테러' 23주년이다. 미국 전역에서 당시 희생자를 기리는 많은 추모행사가 열리는데, 펜실베이니아 남서부 생크스빌(플라이트93 추모관) 행사는 특히 의미가 크다. 이곳은 9·11 당일 납치된 여객기 중 유일하게 목표(워싱턴 미 의회 건물)를 타격하지 못한 UA 93편 항공기 탑승자들을 기념하는 장소다.
공교롭게도 (미국을 위해 희생된 이들을 위한) 펜실베이니아의 이 지역이 2024년 대선 향방을 가를 핵심 진앙지로 떠올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7월 유세 중 총격을 받고도 성조기를 배경으로 꿋꿋이 버텨내는 장면을 연출했던 곳(버틀러)도 펜실베이니아였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맹추격에 나선 것도 이 지역이다. 펜실베이니아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매사추세츠, 켄터키, 버지니아 등과 함께 '스테이트'(State)가 아닌 '커먼웰스'(Commonwealth)로 자처하는 몇 안 되는 지방이며, 대선 경합지로 분류된 곳 가운데 배정된 선거인단 규모가 가장 크다.(대선에서 승리하려면 270명의 선거인단이 필요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펜실베이니아와 관련, 가장 먼저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를 떠올린다. 필라델피아는 독립 직후 미 연방의 첫 수도였고, 1919년 이승만 전 대통령 주도로 한국 독립을 선포한 한인자유대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피츠버그는 미국 산업혁명을 주도한 도시였다. 하지만 정치 전문가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 그리고 그 사이에 넓은 '앨라배마'가 존재하는 지역으로 펜실베이니아를 구획한다. 동쪽과 서쪽에 대도시가 있고,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앨라배마주를 닮은 농촌지역이 그 사이에 혼재한다는 얘기다. 펜실베이니아 정치지형을 한마디로 요약한 이 표현은 민주당 전략가 제임스 카빌이 1986년부터 퍼뜨렸는데, 그는 1992년 빌 클린턴 당선의 1등 공신이기도 하다.
사실 펜실베이니아 농업벨트는 가난한 '앨라배마'를 뛰어넘는 지역이다. 1,300만 명인 펜실베이니아 전체 주민 가운데 300만 명이 거주한다. 한국인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초콜릿 회사, 허쉬의 본부도 있다. 북부 지역은 목재 산업에 경쟁력이 있고, 18세기 생활방식을 고집하며 현대문명을 거부하는 기독교 종파인 아미시(Amish) 정착촌도 이곳에 있다.
필자는 이 지역의 정치적 중요성을 잘 이해한다. 펜실베이니아 지역의 5선 상원의원 보좌관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 농촌 유권자들은 스스로를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집단으로 여기지만, 선거 승리를 원하는 정치인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 필자가 모셨던 상원의원의 비서실장이 농촌 유권자들의 표심을 정확히 파악해 전달하는 등 트럼프 캠프와 협력, 펜실베이니아에서 트럼프 승리를 이끌었다.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할 때도 농촌의 바뀐 표심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유권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 북동부 스크랜턴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번에 트럼프 캠프가 J.D. 밴스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낙점한 것도, 그가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 펜실베이니아 농촌 정서를 공유하는 오하이오 출신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막판까지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를 러닝메이트 후보로 검토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셔피로 대신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선택했을까. 공화당과는 다른 계산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펜실베이니아에서 민주당 전략의 핵심은 필라델피아에서의 압승이다. 특히 카멀라 해리스처럼 비백인, 소수 인종 후보라면 더욱 중요하다. 펜실베이니아 농촌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탈표를 최소화하는 한편, 대도시인 필라델피아와 그 주변 지역에서 격차를 벌이는 방식으로 최종 승리를 이룬다는 전략이다.
민주당 전략에는 나름 근거가 있다. 우선 필라델피아와 교외 지역에는 600만 명이 넘는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주 전체 인구의 절반에 육박한다. 게다가 인종적 다양성도 해리스에게 유리하다. 2020년 조사에 따르면 필라델피아에는 흑인이 백인보다 많고(38% 대 34%), 히스패닉 비중도 거의 15%에 달한다. 펜실베이니아 전체 유권자 구성이 백인 61%, 흑인 12%, 히스패닉 19%인 것과 사뭇 다르다. 이 때문에 2020년과 최근 후보 사퇴 직전까지도 바이든 대통령 진영은 선거대책본부를 필라델피아에 설치하는 걸 검토했다. 결국 두 번 모두 바이든 대통령이 36년 동안 상원의원으로 재임한 델라웨어에 설치하기는 했지만···.
요약하면, 해리스 진영은 필라델피아와 주변 지역에서 소수 민족, 청소년, 여성 유권자를 최대한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2008년과 2012년의 오바마 대선 전략을 채택했다. 트럼프 후보도 필라델피아와 연고를 맺고는 있는데, 바로 학연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와튼 경영대학 출신이다. 그는 또 2014년까지 필라델피아 인근의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서 카지노를 운영했는데, 이 카지노의 공격적 마케팅 대상이었던 필라델피아 부유층은 트럼프에 대해 호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도시와 농촌.' 두 전략 모두 성공 전력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게 효과적일지는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미국에서 펜실베이니아는 '키스톤(Key Stone) 주'로 불려 왔다. '키스톤'은 아치형 구조에서 양옆 하중을 감당하면서도 연결시키는 역할인데, 미국 동부 최초 13개 독립주 사이에서 펜실베이니아가 정치적 연결 고리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는 이번 대선에서도 경합주들의 판세를 묶는 역할을 통해 '키스톤'이라는 명성을 재확인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폴 공 미국 루거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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