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축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직접 가보니···

시카고·양호경 통신원 2024. 9. 11.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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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참관했다. 5만명이 넘는 대의원과 지지자가 시카고로 모여들었다. 대통령 후보를 공식 지명하는 이 행사의 분위기는 절박함에 가까웠다.
8월22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대선후보 수락 연설을 마친 직후 빨간색, 흰색, 파란색 풍선 10만 개가 공중에 흩날리고 있다.ⓒAP Photo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전현직 대통령에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 등 과거 유력 대선후보까지 총출동했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전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등 민주당원에게 인기가 높은 인물들이 연사로 나섰고, 가수 비욘세와 테일러 스위프트까지 참석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유명 인사가 총집결하는 축제가 벌어졌다. 시카고에서 8월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간 개최된 미국 민주당의 전당대회 이야기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의 가장 중요한 행사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공식 지명하는 일이다. 1월 뉴햄프셔주에서 시작된 7개월간의 대통령 후보 경선 결과를 대의원 4000명이 최종 확정하는 행사다.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에서 지명되는 대통령 후보는 경선으로 선출된 후보가 아니었다. 경선에서 승리한 바이든 대통령은 한 달 전인 7월에 후보직을 사퇴하고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에게 공을 넘겼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8월 초에 온라인 전자투표를 통해 대통령 후보 선출의 법적 절차는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만명 넘는 민주당 대의원과 지지자들이 시카고로 모여들었다. 2020년 전당대회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약식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8년 만에 정식으로 개최되는 이 행사의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시카고의 관문인 오헤어 공항에서 전당대회 방문객 안내 자원봉사를 하던 케이트 씨는 “4년 전 전당대회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올해는 자원봉사를 하게 돼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시카고 시내 곳곳에 민주당 전당대회(DNC) 행사 안내가 붙어 있다. ⓒ 양호경 제공 
시카고 시내에서 만난 민주당 전당대회 자원봉사자들. ⓒ양호경 제공

축제의 주요 행사장은 프로농구 팀 시카고 불스의 홈경기장인 유나이티드 센터다.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지명 수락 연설을 한 곳이다. 전당대회 나흘 동안 저녁에 주요 인사들의 연설이 진행되고 전 세계로 중계됐다. 하지만 5만명의 진정한 축제는 낮에 시카고 시내 곳곳에서 벌어졌다. 민주당 소속의 노동위원회, 청년위원회, 여성위원회, 환경과 기후위기 위원회뿐만 아니라 인종과 성소수자 모임 등이 올해 대선의 주요한 의제를 토론하고 또 선거 승리를 위해 결의를 다졌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청년·인종별 비공식 지지자 모임들이 오전 8시부터 밤 1~2시까지 계속 개최되었다.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 뉴저지주 대의원 조찬 모임에 참석한 필 머피 주지사. ⓒ양호경 제공

트럼프로부터 출발한 절박함

정식 행사가 진행되면서 분위기는 축제보다 결의대회에 가까워졌다. 뉴저지주 대의원 조찬 모임에 참석한 민주당 소속 필 머피 주지사가 선거 구호인 “싸워야(When we fight)”를 외치면, 대의원들은 “우리가 이긴다(We win)”로 화답했다. 그는 이번 선거가 미국의 헌법을 수호하는 역대 가장 중요한 선거임을 강조했다. 선거에 임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은 여성과 인종별 연찬회에서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출신 지지자 연찬회를 조직한 크리스틴 첸 씨는 해리스 후보가 강조한 “(미국의 자유와 다양성을 위해) 제대로 해보자(Do something about it)”라는 구호를 계속 외쳤다.

해리스 후보의 장점과 미국의 가치에 대한 긍정적 발언도 많았지만 연단에 선 정치인과 사회자, 청중의 주된 분위기는 ‘절박함’에 가까웠다. 그 절박함의 근원에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대한 공포심이 깔려 있다. 민주당 여성위원회 행사장에서 만난 줄리언 씨는 “트럼프 생각만 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배가 아프다”라며 이번 선거에서 꼭 해리스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후보의 누적된 혐오 발언에 맞대응하기 위해서인지 상대적으로 부드러웠던 민주당 지지층의 언어가 좀 사나워진 인상이 들었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당원들만의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각종 기업과 연구소에서 민주당원과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토론회와 교육을 개최한다. 여러 언론사도 시카고 시내 곳곳에 미디어 부스를 설치하고 시카고를 방문한 정치인 등을 초청해 대담을 진행한다. 대중에 공개되는 이 행사들은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바로 눈앞에서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언론과의 대담에서 주목받은 인물은 최근 해리스 캠페인에 합류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선임고문 데이비드 플루프였다. 그는 가장 역동적이라고 평가받는 오바마 선거 캠페인의 조직 책임자였다.

<악시오스>가 준비한 대담에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선임고문이었던 데이비드 플루프(왼쪽)가 등장했다. ⓒ양호경 제공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가 개최한 대담에 깜짝 등장한 플루프를 보려고 모인 사람들로 행사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30분간 진행된 이 대담에서 민주당의 선거에 대한 인식과 캠페인 전략을 엿볼 수 있었다. 플루프는 “민주당은 트럼프와 달리 사회보장 정책과 세금, 건강보험 같은 중산층 문제에 집중할 것이다. 경합 주와 무당층에서 해리스 후보의 경쟁력이 확인된 일은 고무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선거는 11월이지만, 9월 말부터 사전투표와 우편투표가 시작되기 때문에 선거까지 “70여 일이 아니라 4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라며 (바이든 정부의 부통령이 아닌) 해리스 후보의 차별화된 정책과 이미지를 알리는 것이 도전 과제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원래대로라면 미국 대선 캠페인은 경선부터 1년 넘게 진행된다. 대통령 선거일이 두 달 남은 시점에, 캠페인을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된 대통령 후보와 지명 2주 차인 부통령 후보는 매우 이례적이다. 기성 정치인들이지만 전국적 지지도를 모아야 하는 후보가 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대의원 숙소 앞에서 만난 메릴랜드주 민주당 대의원 한 명은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를 “알려지지 않은(Unknown) 사람”이라고 말했다. 후보들도 대의원과 당원의 분위기를 의식한 듯 전당대회 기간 내내 동분서주했다. 대의원들이 모인 온라인 단체방에서 월즈가 뉴햄프셔주 대의원 모임에 참석했다거나, 30분 뒤에 청년위원회 행사장에 온다는 정보가 계속 공유됐다. 대의원과 전당대회까지 참석하는 열성 지지층의 마음을 얻어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민주당 전당대회 박람회에 걸려 있는 그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카멀라 해리스가 가장 오른쪽에 그려져 있다. 왼쪽부터 소저너 트루스(노예 출신 여성 권리운동가), 셜리 치점(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 하원의원), 캐럴 모즐리 브라운(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 상원의원).ⓒ 양호경 제공

절박함은 단결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시카고 곳곳에서 개최된 각종 행사는 올해 선거의 중요성과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목적이 강했고, 이견은 주목받지 못했다. 진보의원 코커스(Progressive Caucus) 소속 헤수스 가르시아 하원의원(일리노이주)은 “해리스는 2020년에 보여준 진보적 입장을 번복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공개된 민주당 2024 정책자료집에서 보편적 의료에 관한 내용은 삭제되고, 국경 안보 정책은 강경해졌다고도 지적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전당대회 기간에 큰 쟁점이 되었다.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충돌했다. 전당대회 본행사가 개최되는 유나이티드 센터 인근에서 친팔레스타인 집회가 매일 열렸다. 이들의 행사장 접근은 철저히 금지됐다. 일부 시위대가 대의원단 버스를 막아서거나, 대의원 중 일부가 행사장 안에서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반대를 외쳤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해리스 후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 모두의 안전과 자유를 강조했으나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본행사가 개최되는 유나이티드 센터 인근에서 친팔레스타인 집회가 매일 열렸다. ⓒ 양호경 제공

공화당 트럼프에게 맞서는 사람은 해리스이지만, 선거는 민주당과 트럼프의 싸움처럼 느껴졌다. 해리스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민주당 대의원과 지지자들의 절박함은 트럼프로부터 출발하는 듯했다. ‘간절한 축제’였던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고 대의원과 지지자들은 공화당 트럼프 후보에게 맞서 싸우기 위한 행동지침을 받고 각자 지역으로 돌아갔다.

민주당 축제의 끝을 기다렸다는 듯 8월23일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인 제3지대 후보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트럼프 지지 선언을 하면서 사퇴했다. 미국, 아니 전 세계의 미래를 두고 가장 중요한 선거로 평가되는 총성 없는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시카고·양호경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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