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노믹스, 트럼프노믹스와 비교해보니

김다은 기자 2024. 9. 11.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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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격 사건을 계기로 대선 판세가 완전히 기운 것 같았던 분위기가 초박빙 승부로 바뀌었다. 그 중심에는 해리스 부통령의 차별화된 경제 공약이 있다.
8월22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 위로 올라가고 있다. ⓒAP Photo

“중산층의 존엄성을 지키겠다.” 8월27일 공개된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선거광고 ‘에브리데이(everyday)’에 나오는 말이다. 해리스 후보의 경제정책을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는 8월16일 이번 대선 최대 격전지인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선거유세에서도 ‘기회의 경제’를 앞세우며 중산층의 “경제적 안보(economic security), 안정성(stability), 존엄성(dignity)을 지키겠다”라고 연설했다.

해리스 후보가 주목하는 것은 시민들이 주방 테이블에 앉아 살펴보는 청구서, 식료품 매장 선반에 놓인 물건 등이다. 해리스는 용돈을 벌기 위해 맥도날드에서 일한 경험, 어머니가 주택을 마련하려고 10년 이상 저축하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을 연설에 담았다. 힘겹지 않게 주택을 소유하고, 그곳에서 자녀를 키우고, 자기만의 작은 가게를 열어 가족을 부양하며, 높은 식료품 가격에 허덕이지 않는 삶을 위한 지원을 경제 공약의 중심에 내세웠다. 환호도, 비판도 동시에 나왔지만 확실한 것은 경제정책에서는 해리스가 여론의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8월22일 민주당 전당대회를 통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70여 일 남은 미국 대선의 ‘매치업’이 마침내 확정됐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격 사건을 계기로 판세가 기운 것 같던 분위기는 초박빙 승부로 바뀌고 있다. 8월27일, 민주당 해리스 후보가 48% 지지율로 공화당 트럼프 후보(44%)에게 4%포인트 앞선다는 여론조사도 발표됐다.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가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난 8월23일부터 25일까지 전국 유권자 7818명으로 대상으로 진행한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 결과, 해리스가 근소한 차이로 우위에 올랐다. 피격 사건 이후 승리를 확신한 듯 다소 ‘어른스러워진 모습’으로 온건한 메시지를 내놓던 트럼프는 해리스의 지지율이 치솟자 인신공격성 메시지를 내놓으며 다시 날 선 견제를 시작했다.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 등 공화당 인사도 그런 트럼프에게 ‘막말보다 정책 이야기를 하라’며 불안해한다.

‘해리스노믹스’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뜨거운 토론 주제 중 하나는 해리스가 언급한 식료품 가격 억제다. 물가상승 억제 공약 중 하나로 기업이 식료품 가격 인상으로 부당한 폭리를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연방 차원에서 규제하겠다는 내용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식료품 가격을 올렸는데, 공급망 문제가 개선된 지금까지도 높은 가격을 유지하며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를 “마두로(베네수엘라 대통령)식 가격통제”라고 비난했다.

후보 교체와 전당대회라는 모멘텀을 계기로 해리스와 트럼프의 여론 점유율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차별화된 경제 공약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물가인상에 대한 책임에서 해리스는 자유롭지 않다. 물가상승기 미국 행정부의 수뇌부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2022년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가파르게 금리를 올렸다. 물가상승이 최고조에 달했던 2022년 8월에는 가정용 식료품 가격이 1년 전보다 13.5%나 상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스는 차별화된 경제정책으로 과거의 실책을 만회하며 신뢰도를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강한 관세’로?

내수경제 정책과 달리 해리스 후보와 트럼프 후보의 대외정책에는 닮은 점들이 있다. 보호무역 등 ‘아메리카 퍼스트’로 대변되는 미국 우선주의다. 하지만 이를 관철하는 강도가 다르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모든 수입 물품에 10% 보편 관세를 물리려 한다. 현재 약 3% 수준인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일명 ‘트럼프 상호무역법’도 내세우고 있다. 미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에 똑같은 비율로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중심으로 세계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의욕은 더 노골적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중국에 60% 이상 관세율을 적용하고 최혜국 대우도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최혜국 대우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 따라 두 국가 간 무역관계에서 제3국에 부여하는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게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박탈한다는 건 관세를 자율적으로 늘리겠다는 의미다. 미국은 대규모 무역적자가 만성화된 상황인데, 이 가운데 대중국 무역적자가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한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미국 방위군협회 전시회에서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연설대에 섰다. ⓒAFP PHOTO

지난 7월, 국회 미래연구원에서 발간한 ‘트럼프 2.0시대, 미·중 관계와 국제질서의 미래’ 보고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할 경우, 대중국 정책에 집중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신이 레거시(족적)를 남길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분야인 만큼 “트럼프 2기는 중국을 최대 위협,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적국으로 규정하고, 미·중 경쟁을 ‘관리’가 아닌 ‘승리’해야 하는 게임으로 인식”하면서 정책을 펼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해리스 후보는 ‘강한 관세’라는 강압적 수단보다 유화책을 주장한다. 대미 투자를 유인하되 외교·안보 동맹국에 편의를 제공하며 나라에 따라,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겠다는 입장이다. 바이든 정부가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기지 건설을 촉진하는 온쇼어링(onshoring) 정책을 펼치면서도 가까운 우방국에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혹은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 혼재한 정책을 펼친 만큼 해리스 행정부도 이를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중국 기업을 견제하되 공산품 수입은 지속하고 핵심 기술 물자에 대해선 수출통제 등으로 미국의 경쟁력 우위를 유지한다는 디리스킹(위험 통제)을 택했다. 전략적으로 손을 잡겠다는 여지를 남긴 셈이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주장하는 보편 관세가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비싼 관세를 지불해서 물건을 수입할 경우 자국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수입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져 결국 국내 소비자에게 관세가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리스 캠프는 이처럼 보편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트럼프 세금’이라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의 진보 성향 민간단체인 ‘액션펀드‘는 트럼프 측이 주장하는 보편 관세로 중산층 가구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연간 3900달러(약 520만원) 증가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보복적 성격의 관세 정치는 연방정부가 경제에 개입할 수 있다는 트럼프의 비전이 반영된 전략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경제 공약만은 ‘보수의 전통’을 계승하지 않는 후보라는 아이러니한 평가도 나온다.

물가를 잡기 위한 국내 정책에서 두 후보는 본격적으로 다른 길을 지향한다. 트럼프 캠프는 지금의 높은 물가상승 원인이 바이든 행정부의 청정에너지 확대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석유·천연가스 등을 더 많이 생산해서(트럼프 캠프의 구호 중 하나는 원유를 더 많이 파자는 뜻인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이다) 에너지 가격을 낮춰서 물가를 안정시키고, 관세로 재정적자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계획이다.

트럼프가 관세에 목을 매는 이유는 하나다. 다른 각종 세금을 줄여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재임 중이던 2017년 법인세 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추는 법안에 서명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도입된 각종 감세 조치는 2025년 만료되는데, 이것을 영구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대기업 법인세율 20% 인하라는 선물도 준비했다.

사회보장 수급자들이 납부하고 있는 연방 소득세도 없앨 계획이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시행된 정책을 뒤집는 것으로, 노년층을 공략하기 위함이다. 서비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팁 세금 면제를 잇는 ‘핀셋’ 감세 공약이다. 결국 법인세·소득세 인하 공약을 내세우는 트럼프가 부족한 세수를 메우고 국가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찾은 방법이 수입품에 대한 관세다.

2월 13일 시카고의 한 식료품점에서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고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은 고물가 억제 대책이 경제정책의 주요 쟁점이다. ⓒAFP PHOTO

트럼프 후보가 35조 달러(약 4경7000조원)가 넘는 국가부채 해결을 위해 주목한 또 다른 국가재정 자금원은 비트코인이다. 7월 말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 참석한 트럼프는 비트코인에 부정적인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해고하고 미국이 ‘암호화폐의 수도’가 되도록 비트코인을 전략적으로 비축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중국이 할 것이다. 암호화폐는 100년 전의 철강산업이며, 언젠가는 금을 추월할 것”이기 때문에, 비트코인의 가치 상승을 기다리다 달러의 통화가치가 훼손되면 연방이 보유한 비트코인을 되팔아 채무를 갚겠다는 구상이다. 트럼프는 콘퍼런스 내내 ‘비트코인을 다시 위대하게(Make Bitcoin Great Again)’라고 적힌 모자를 쓴 열성 팬들의 응원을 받았다.

해리스노믹스, 세수 확보 현실성 있나

반면 민주당 해리스 후보의 고물가 억제 정책은 중산층의 비용절감에 방점을 찍고 있다. 연소득 40만 달러(약 5억3000만원) 미만 가정은 세금 부담을 줄여주되 순자산 1억 달러 이상인 억만장자에 대해선 주식가치 상승 등 미실현 자본이득에도 소득세율을 최저 25% 부과하겠다는 계획이다. 대기업의 최저세율도 15%에서 21%로 올린다. 바이든 행정부보다 더 강력한 부유층 증세 정책이다. 제임스 싱어 민주당 대선캠프 대변인은 “일하는 사람들의 주머니에 돈을 다시 넣어주고 대기업들이 정당한 몫을 내도록 하는 방안”이라며 트럼프가 낮춘 법인세도 28%로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리스 패키지’는 중산층의 삶 전반을 커버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에서 추진한 ‘2021 미국 구조계획’에 포함되었던 자녀 세액공제 확대를 부활시키고, 신생아 부모에게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할 예정이다. 자녀 한 명당 공제액을 2000달러에서 3600달러로 높이고 신생아에 대해선 6000달러를 공제한다. 해리스 부통령의 경제정책을 분석한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은 이 공약이 해리스의 정책 중 비용이 많이 드는 것들 중 하나가 되겠지만, 아동빈곤 해소에 상당 부분 기여할 거라고 봤다. 또 4년에 걸쳐 모든 신규 주택 구매자에게 최대 2만5000달러 수준의 선불금을 지원하고, 중산층을 위한 주택 300만 채를 신규 건설할 것이며, 신축 주택을 짓는 건설회사에 40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규제책도 있다. 사모펀드 등이 임대주택을 대량 사재기할 경우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다. 반면 공화당 트럼프 캠프의 주택공급 정책은 단순하다. 이민자를 추방해 빈집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주택 구매자에 대한 혜택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내용은 없다.

하지만 변수는 있다. 세수 확보의 현실성이다. 법인세 인상 등 해리스가 내세우는 세수를 확보하려면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 반면 트럼프 측의 관세 인상은 의회 승인 없이 대통령 권한만으로 추진할 수 있다. 〈블룸버그〉는 8월24일자 기사에서 금융계 고위층들이 해리스를 두고 “생각보다 친기업적 중도주의자”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기도 했다. 월가의 큰손을 등에 업은 해리스가 실제로 얼마나 ‘진보적’일 수 있을지도 시험대에 올랐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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