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왕국’ 디즈니, ‘PC 선도자’ MS… 기업 역사가 곧 브랜드
〈2〉 글로벌 ‘톱100 브랜드’ 비결은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어낸 기업들… 독보적인 헤리티지 구축 성공 가도
韓, 브랜드 가치 100위 기업 3곳뿐… “차세대 경영자에 헤리티지 교육을”
“픽사는 내가 디즈니 재직 중에 했던 아마도 최고의 인수였다.”
로버트 아이거 전 디즈니 최고경영자(CEO·2005∼2020년)는 2021년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창립자인 월트 디즈니는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개척자였다. 그가 1957년 종이에 그린 ‘디즈니 시너지 맵’은 100년이 넘은 디즈니의 경영철학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아이거는 그 헤리티지를 물려받아 ‘콘텐츠 제국’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2006년 픽사 인수를 시작으로 루커스필름, 마블, 21세기폭스 등을 잇달아 품에 안았다. 1923년에 설립돼 역사상 가장 오래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이처럼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벌인 것은 IP 사업의 선두 주자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미키마우스’ 같은 동화 IP를 넘어 ‘아이언 맨’ ‘심슨 가족’ 등 성인들을 겨냥한 IP까지 확보한 디즈니는 ‘무형의 자산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다.
● 브랜드를 넘어 아이콘이 된 기업들
MS는 개인용 컴퓨터(PC) 시대를 열었다. 윈도 이전 도스(DOS) 기반 컴퓨터는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등 진입 장벽이 높았다. 아이콘을 마우스로 클릭하는 윈도 운영체제의 간단한 조작법 덕에 PC는 순식간에 대중화됐다. 지난해 말 기준 세계 시장에서 MS 윈도의 점유율은 72.79%에 달한다. ‘PC 선도자’라는 기업 이미지는 MS로서는 가장 중요한 유산이 됐다.
한국의 산업적, 문화적 역량이 세계적 수준까지 도달한 지금, 한국 기업들도 패러다임 시프트를 주도하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춘우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간의 어떤 사고 방식과 생활 습관을 바꾸는, 역사를 새로 만드는 제품으로 독보적인 헤리티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고집스러운 ‘우리 것’ 사수
2013∼2023년 11년 연속 글로벌 1위 브랜드에 오른 애플은 자사의 ‘한 입 베어 문 사과’ 로고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전 세계 유사 로고에 소송을 걸고 있다. 지난해 애플은 스위스과일연합(FUS)의 사과 로고가 자신들의 것과 유사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엔 구성원이 5명뿐이던 미국 스타트업 ‘프리피어’의 배 모양 로고가 애플과 비슷하다며 소송을 걸었다. 핵심 유산을 지키기 위한 집요함이다. 경영 측면에선 스티브 잡스의 철학과 유산인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을 지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단순함은 제품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능, 광고, 마케팅 등 모든 부분에서 강조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 가보면 약 130년간 이어온 메르세데스벤츠의 기술력과 브랜드 헤리티지를 경험할 수 있다. 1886년 소개된 최초의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 바겐’부터 최근 신차에 이르기까지 수백 대의 차량이 전시돼 있다. 벤츠는 별도의 클래식카 팀을 운영하며 헤리티지 구축에 힘쓰고 있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본 혼다는 본사에 창업주가 만든 오토바이를 전시해 직원들이 매일 보면서 창업정신을 직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은 이런 공간 활용 측면에서 취약한 편”이라고 했다.
● 브랜드 가치 상위 100개 중 한국 기업 3개뿐
전문가들은 산업화가 시작된 지 반세기를 넘긴 한국 기업들도 이제 고유의 헤리티지를 경영 철학에 접목할 시점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헤리티지 구축에 필요한 조건 중 하나는 ‘시간의 축적’인데 이미 한국 기업들도 1세대 창업주들의 시대가 지나고 2, 3세 경영이 시작됐을 만큼 성숙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류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주목받는 시기적 흐름도 만들어졌다.
전문가들은 최상위 브랜드 가치를 오랜 시간 유지한 기업들의 헤리티지 경쟁력 구축 사례를 한국 기업들이 참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 경쟁력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이 헤리티지의 힘이기 때문이다. 김상순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선진국 기업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은 헤리티지를 한국 기업들은 단시간에 따라잡아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며 “압축적으로 헤리티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경영자들에게 헤리티지 관련 교육을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민아 기자 omg@donga.com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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