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 풍경] 배려와 공감의 언어
우리 사회에 장애인, 노인에 더해 새로운 약자들이 늘었다. 배려와 공감으로 대하되 늘 언어 표현에 조심해야 할 일이다.
탈북자(脫北者)는 글자 그대로 ‘북한을 탈출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어감이 그리 좋지 않기에 ‘탈북인’, ‘탈북남성’, ‘탈북여성’이 요즘 추세다. 국내에 정착한 경우 ‘새터민’이라는 새 이름이 쓰였다. 썩 좋은 이름이라고 여겼는데 탈북민 단체와 당사자들이 탐탁지 않아 해 쓰지 않는다. 북한인의 자존심과 관련이 있다. 비록 독재와 억압에 시달렸던 땅이라도 ‘헌것’과 ‘새것’이란 상대 비교가 마뜩잖았던 까닭이다.
‘조선족(朝鮮族)’이란 말도 지양해야 한다. 중국의 주류인 한족(漢族)이 소수민족 지칭의 하나로 부르는 말이다. ‘중국동포’, ‘재중동포(在中同胞)’를 주저하면 안 된다. 동포라는 낱말에 인색하지 않을 일이다. 식당과 일터 등에서 만나는 옌볜•하얼빈•지린 지역 동포들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일부 신문, 방송이 언중의 현실적 쓰임이란 잣대로 조선족을 고집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교포’는 타국에 거주•정착한 그 나라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법적•행정적 뉘앙스가 강하다. 반면 ‘동포’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따스하게 다정히 부른 말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경우는 동포로 일반화하는 것이 여러모로 설득적이다. 그런데 타국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럴 때는 동포는 사치고, 교포도 저어하게 된다. ‘한인(韓人)’이 소박한 대안이다. 한인은 본디 한국인의 뿌리 정도만 있는 사람들을 칭할 때 혹은 교포, 동포 등을 모두 아우를 때 쓰기 좋다.
국내 거주 외국인 250만 시대다. 이 중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민자(다문화가정)가 절반 이상이다. 특히 동남아시아 이민자가 눈에 많이 띈다. 한류 열풍으로 요즘은 미국, 유럽에서도 케이팝, K-드라마, K-푸드에 열광하지만 그 시작은 어디까지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이었다.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서남아시아 국민은 그래서인지 일반적으로 한국인에게 호의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문제다. 가난하고 자기보다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홀대하고 무시하는 습속 말이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문제가 덜했으나 이제는 그들이 우리 안에 있다. 우리끼리의 농담이라도 피부색이나 말소리 등으로 ‘필리핀 사람 같다’, ‘태국에서 왔니’ 운운한다면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십상이다. 듣는 이 입장에서는 놀림조로 인식되며 크게는 동남아시아인 전체에게 실례다.
자신의 출생지, 고향, 성장지, 거주지 등과 관련한 표현도 생각해 볼 문제다. 스스로의 지리적 배경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일단 전향적이다. 그러나 지나친 건 문제며 반대로 뜻 모를 열패감, 수치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타인을 향할 때다. 설익은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일반화하거나 확대 해석해 함부로 단정 지어 언급하면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동시에 화를 부를 수도 있다.
먼저 출신지, 성장지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충청도 사람은 이러저러하고 하는 화법은 경솔하고 위험하다. 내용이 중립적이거나 좋은 것이라 여겨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며 해석하기 나름이다. 세 지역이 고향에 해당될 때 ‘우리 전라도•경상도•충청도 사람은’ 하며 자기를 내세우거나 낮추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대안으로 ‘충청인’, ‘호남인’, ‘영남인’을 제안한다. 진중하고 사려 깊어 보인다. 동향인(同鄕人)들 앞에서는 ‘우리 충청도 사람’, ‘우리 경상도 사람’, ‘우리 전라도 사람’ 운운해도 큰 문제는 아닐 테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서도 ‘우리 호남인’, ‘우리 영남인’, ‘우리 충청인’ 하는 게 더 교양있고 근사하다는 생각이다. 서울, 경기도, 강원도의 경우 서울인, 경기인, 강원인이 어색하기에 불필요하다. 그만큼 지방색이 덜하다는 이야기니 섭섭해 할 일은 아니다.
뭉뚱그리면 우리 사회 소수자, 비주류를 배려하고 다원성 사회를 의식하는 말글살이를 체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 대화나 공적 말하기에 있어 상대에게 언짢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단어나 표현을 피하고 수신자, 수용자 중심의 어법을 구사하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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