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에 처음 울린 배소현의 우승 시계

최수현 기자 2024. 9. 11.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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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PGA 시즌 다승 공동 1위 달려
배소현이 지난달 KLPGA 투어 더헤븐 마스터즈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그는 이 대회와 지난 5월 E1 채리티 오픈, 지난 1일 KG 레이디스 오픈까지 올 시즌 3승을 올렸다. /KLPGT

20대 초중반 선수들이 우승을 휩쓰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지금까지 배소현 같은 선수는 없었다. 서른 살까지 잠잠하던 그는 서른한 살이 된 올해 3승을 올려 시즌 최다승 공동 1위를 달린다. KLPGA 투어에서 만 30세 이후 한 시즌 3승을 올린 선수는 1988년 정길자(당시 만 30세)와 배소현뿐이다. 정길자는 그전에 이미 7승을 보유했지만, 배소현은 1부 투어 우승이 올해 처음이다. 드라이브샷 거리도 매년 늘어 투어를 대표하는 장타자로 거듭났다.

지난 1일 KG 레이디스 오픈에서 세 번째 우승을 거둔 배소현은 지난 8일 KB금융 스타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선두를 달리다 공동 4위로 마쳤다. 그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은퇴를 고려할 나이라고 남들은 얘기해도, 나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소현은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 출신으로 실내 연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골프를 접했다. “아버지가 오며 가며 가르쳐주셔서 샷을 할 줄은 알았지만 제대로 연습을 해보진 않았다”고 한다. 골프보다 다른 운동을 더 좋아해서 태권도 3품에, 학교 육상 선수로도 활약했다. 중3이 되어서야 “부모님도 원하시고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골프 선수로 진로를 정했다.

그래픽=김하경

초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경력을 쌓는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늦은 출발이었다. 고교 진학 대신 검정고시를 택했고, 코치인 아버지와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에 매달렸다. “하나하나 이뤄가는 과정에 재미를 느꼈다”며 “프로 되고 나서 잘하면 된다는 아버지 말씀만 믿었다”고 했다. 주니어·아마추어 골프 대회 경험이 전무했던 배소현이 처음 출전해본 골프 대회가 2011년 프로 테스트였다. 그해 프로 테스트 통과는 물론 3부 투어 우승까지 이룬 그는 2016년까지 2·3부 투어를 뛰면서 또래들과 경쟁하는 경험을 쌓았다.

배소현은 꾸준히 문을 두드리다 24세였던 2017년 KLPGA(1부) 투어 데뷔에 성공했다. 하지만 코치이자 캐디로 곁을 지켜온 아버지가 이듬해 갑작스럽게 투병을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좋은 성적을 빨리 보여주려고 애를 썼지만 2019년 2부 투어로 내려갔고 아버지는 그해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저에게 무척 큰 사람이었고, 어떻게 보면 아버지만 믿고 골프를 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결과와 미래보다는 과정과 현재에 더 집중하게 됐다”고 했다. “‘나중이란 게 없을 수도 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되,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생각했어요.”

2020년 KLPGA 투어에 복귀한 뒤론 허리 부상에 시달렸다. 코로나로 실내 운동 시설이 폐쇄되면서 야외에서 러닝을 하다가 상태가 악화됐다. 시술 후에도 통증이 심해 은퇴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허리가 아파 샷 연습을 많이 할 수 없게 되자 대신 체력 운동을 크게 늘렸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는데, 덕분에 허리 재활은 물론이고 골프 실력도 점점 좋아졌다”고 했다. 근육을 쓰는 방법을 알게 됐고, 허리에 부담이 덜한 방식으로 스윙을 교정했다. 통증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30대 접어드는 나이에도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가 늘었다. 2022년까지 243야드(24위) 수준을 유지해오다가 2023년 249.84야드(8위), 올해는 252.86야드(5위)를 기록 중이다.

코치였던 아버지가 투병을 시작한 2018년부터 배소현은 이시우 코치에게 골프를 배웠다. “한 스텝 올라갈 때마다 다음 스텝을 제시하면서 성장을 도와주셨다”고 했다. 배소현은 이시우 코치가 지도하는 고진영(29), 박현경(24) 등 우수한 선수들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궁금한 걸 물어보면서 끊임없이 분석하고 적용했다. “잘하는 선수들은 공통점이 있어요. 모자란 부분이 뭔지, 어떤 부분에 집중해서 어떻게 훈련할 것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어요. 일상생활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어요.”

올 시즌 거둔 3승은 이 모든 시간과 과정, 노력과 시도가 쌓인 끝에 얻은 결과라고 한다. “많이 힘들 땐 ‘언젠가 웃으면서 얘기할 날이 오겠지’ 생각했다”며 “꾸준히 계속해온 준비가 맞아떨어져 우승으로 그 결과를 맞이하는 기쁨과 성취감이 정말 크다”고 했다. “오래 선수 생활을 하면서 계속 새로운 경험을 쌓으며 성장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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