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로 채운 강원의 별장, ‘ 연결의 힘’으로 활짝
이건희 철학 기반 조합·배치
‘변화와 도전’·‘입체적 사고’ 등
국외 환수유산 공간 처음 마련
강원색 품은 유물 유기적 구성
달항아리 2점 등 30점 최초 공개 서화 등 일부 교체 전시 예정

“합치는 것은 어디서나 힘을 발휘한다”
수집가의 보물들로 가득 찬 강원의 별장에 오면 위 문구가 마주한다. 한 마디로 ‘상승효과’다. 수집가들은 일정한 주제 없이 물건을 모으는 듯 하지만, 그래서 남은 이들이 조합해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난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에세이 중 ‘박물관의 원리’라는 챕터 속에 나오는 이 말은 수집의 힘을 드러낸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 이건희 회장 기증 국립춘천박물관 특별전’이 11일 개막, 11월 24일까지 열린다. 1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먼저 공개된 전시를 보면 수집가인 이건희 회장의 철학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기증품의 조합은 따뜻하고 영리하다. 한 수집가의 생전 철학을 그가 평생 모아온 기증품들을 나눠 배치하는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보고 싶어하는 명작부터 최초 공개 작품, 강원의 마음을 품고 있는 기증품까지 다양하다. 와글와글 수다스럽다가도, 평온한 기운이 감싸는 재미있는 전시다. 수백년 지난 오래된 그림과 물건들 속에서 연결의 힘을 다시 믿게 된다. 유물을 과거에 가두지 않고, 상상력의 영역으로 열어 두는 박물관이라는 공간의 매력도 느낄 수 있다. 유쾌하고 위대한 유산이다.

■ 이전 전시와 무엇이 다르나
전시공간은 8곳으로 나뉘었다. 공간마다 주제를 드러내는 ‘이야기 명패’를 먼저 마주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도입된 기법이다. 수집가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를 볼 수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한 기획이다.
특히 백자 ‘청화 대나무무늬각병’에 대해서는 강원에서의 대접이 남다르다. 다른 전시에서는 일반 전시품과 다르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빛과 각도 등에 따라 달라지는 각병의 미감, 순백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강조한 ‘입체적 사고’를 투영한 기획이다.
국외 환수 코너도 마련한 점도 차별점이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국외 경매에서 수집한 도자기 7점은 보관 상자, 경매품 꼬리표, 도록 등까지 세트로 전시돼 우리 유산을 되찾아 오려 했던 노력이 엿보인다. 이중 ‘청자 철채 인삼 잎 무늬 병’은 매병 전체를 갈색 안료로 칠하고 인삼 잎을 판 후 흰 흙으로 메워 독특하다. 이미 보물로 지정된 다른 매병과 기법·문양이 같아 가치가 높다.

■강원의 가치 곳곳에
수려한 경관이 있는 강원의 기증품들을 적극 발굴해 지역 관객의 발길을 끌 예정이다. 먼저 조선시대 대표 수납가구인 ‘강원도 반닫이’가 반갑다. 강원의 우직한 성품을 상징하듯 명기(사람·동물 모양 백자)들과 함께 놓였다. 소나무로 두껍게 만들었는데 다른 지역보다 크고 넓다. 아래로 갈수록 푸근한 모양의 백자 ‘청화동정추월무늬 항아리’에서는 푸른 달빛 아래 호수에 떠가는 나룻배의 모습에서 강원의 호젓함을 느낄 수 있다. 18세기 예단의 총수 강세황이 금강산 가는 길목에 남긴 ‘피금정도’가 걸렸고, 11월 5일부터는 금빛 물감으로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표현한 ‘금강산도’가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강원에서 처음 선보이는 기증품은 목가구 1점, 도자기 27점 등 30점이다.
■여운과 해석의 즐거움
이건희 컬렉션 중 가장 많은 장르가 도자, 그중에서도 백자가 많다.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자기들을 현미경으로 자주 관찰했다는 일화도 남아있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철학에서도 강조했던 ‘변화와 도전’이라는 주제어가 도자와 연결돼 있다. 양구에서 백토를 찾았던 노력, 재료와 기술의 변화 속 분투한 장인들의 정신이다.
원래 ‘대호’로 불린 ‘달항아리’는 문학적 이름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문화적 해석과 연출, 기획이 가능해졌고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김환기 작가와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새 이름을 붙였다는 일화를 생각하면 만남의 의미도 되새겨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름 각 42㎝와 45㎝인 대형 ‘달항아리’ 2점이 처음 관객을 만난다.
이 회장은 기록유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보물 ‘월인석보’에서는 15세기의 편집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의 ‘월인천강지곡’과 수양대군의 ‘석보상절’을 엮었는데 서체와 글자크기에 차이를 둔 편집이 눈에 띈다.

■‘n차관람’의 이유
107만명이 관람한 이번 특별전은 여러번 찾는 관객도 많았다. 국보‘인왕제색도’가 선사하는 공간감은 내달 6일까지 1달간만 느낄 수 있고, 보물인 고려불화 ‘천수보살관음도’도 같은 기간에교체될 예정이다. 그전까지 복원 디지털 화면으로 대중을 구원하기 위한 천 개의 손과 눈을 찾아보는 재미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사운드와 미디어아트가 함께 하는 고려시대 ‘범종’도 이전 전시에서 인기가 높았는데 춘천에서도 함께 한다. 성덕대왕 신종의 소리를 따왔고, 분자가 퍼지는 시각적 효과가 평안을 안긴다. 빛에 약한 서화를 보존하고, 다양한 전시품을 선보이기 위해 2∼3차례에 추가 교체도 이뤄질 예정이다.
■2년간 특별전 집대성
개막식에는 김황식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육동한 춘천시장, 김진호 춘천시의장,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 이영림 춘천지검장, 경민현 강원도민일보 사장, 신현상 강원문화재단 대표이사 등 각계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김황식 이사장은 “국보급 2만여 점을 아무 조건없이 국가에 기증한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고 감동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국내 순회 마지막 전시인 춘천에서 그동안 축적돼 온 감정과 지혜를 집대성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수경 국립춘천박물관장은 “제작 시기와 용도가 다른 물건을 연결하며 새로운 생각과 세상을 만나시기를 바란다”며 “기획자로서 기증전의 문을 열고 춘천에서 닫는 이례적 경험을 하게 됐다. 입체적 사고의 중요성, 박물관과 수집이 왜 필요한지 녹여내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김여진·최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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