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새로운 빅 브러더’ 플랫폼이 더 위험한 이유

이성훈 기자 2024. 9. 1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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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플랫폼은 새 빅 브러더… 독점력은 역사상 가장 강해
자유주의 방패 뒤에 숨어 전세계에 절대적 권력 행사
1959년 개봉한 영화 ‘1984’의 한 장면. 엄격한 통제 사회를 상징하는 문구 “빅 브러더가 당신을 보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가 보인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정치적 성향이 리버럴(자유주의)인 것은 아이러니다. 반도체·플랫폼 같은 빅테크 산업의 본질은 독점력에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기성 권력과 산업의 반대편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탄생하고 성장했다. 욕하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현재 전 세계 구글 이용자는 약 40억명, 페이스북은 30억명. 인류 역사상 어떤 국가나 권력도 가져보지 못한 독점력이다.

‘빅 브러더’는 조지 오웰의 1949년 작 소설 ‘1984′에 등장한 이후 감시·통제에 의한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집 안에 설치한 ‘텔레스크린’이라는 장비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그러나 수집하는 정보의 양과 대상, 영향력을 감안하면 지금의 거대 플랫폼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새로운 ‘빅 브러더’의 출현이다.

거대 플랫폼은 몇 가지 점에서 고전적 빅 브러더보다 훨씬 위험하다. 우선 수집하는 정보의 정교함이다. 앱을 깔면서 ‘동의’ 버튼을 몇 번 누르면 실시간 위치, 건강 상태, 좋아하는 음식, 관계하는 친구 등 거의 모든 정보가 수집된다. 이런 소소한 정보(마이크로 데이터)를 최근 인공지능(AI)으로 통합·분석하면서, 거대 플랫폼은 본인보다 자신을 훨씬 잘 아는 ‘뉴 빅 브러더’가 됐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우리가 등록한 정보 외에 생각과 습관, 관심사 등을 타임라인이나 ‘좋아요’, 댓글 등의 기록을 토대로 분석한다. ‘AI 비서’ 같은 이름이 흔히 붙는데, 이쯤 되면 누가 상사이고 누가 비서인지 알기 어렵다. AI가 현재는 쥐 같은 동물을 대상으로 행동까지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고 있으나, 쥐의 자리에 인간이 올라갈 날이 멀지 않다.

원래 ‘빅 브러더’는 경계와 저항의 대상이다. ‘뉴 빅 브러더’는 다르다. 여러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거대 플랫폼의 속민(屬民)이 되고 있다. 플랫폼의 절대적 영향력을 통제하고 분산할 장치를 만들고 불법행위를 조사하면, 이용자들이 나서서 반발한다. 지난달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가 범죄 방조 혐의로 프랑스 정부에 체포됐을 때, 영국에서 폭동을 촉발한 가짜 뉴스 유포 책임을 물어 X(옛 트위터) 수사를 검토했을 때도 그랬다.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인 X 소유주 일론 머스크가 ‘표현의 자유’를 말할 땐 이율배반적 상황을 맞게 된다. 트럼프는 언론을 적으로 공격하는 대표적 스트롱 맨이다.

거대 플랫폼은 국가라는 경계에도 갇히지 않는다. 영향력이 전 지구적이다. 거대 플랫폼 사용 인구에 관한 공식 통계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대략 스마트폰 보급률(세계 평균 약 70%)과 비슷하다고 본다. 80억 세계 인구 중 거의 55억명에 이른다. 거대 정보가 서로 엮이고, 가짜 뉴스가 광범위하게 유포되면 그 파괴력은 상상 초월이다. 그들의 정보력은 일개 국가를 넘어섰고, 사용자들은 자발적으로 이들에게 투항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철저히 경제적 이익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정치 권력과 차이가 있다.

최근 거대 플랫폼에 대한 정치 권력의 규제, 이에 대한 빅테크의 반발은 새로운 빅 브러더와 올드 빅 브러더가 벌이는 권력 싸움이 본질일지 모른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에 따라 전체주의 국가는 몰락의 길을 걸었는데, 거대 플랫폼의 앞날은 예단하기 어렵다. 개인 정보 보호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자유주의’라는 화장까지 하고 있다. 어느 순간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기술 발전을 두려움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거대 플랫폼에 대한 경계는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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