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207] 광천 토굴 새우젓
등줄기로 흐르던 땀이 멈추면서 닭살이 돋고 오싹해졌다. 옹암리 새우젓 토굴에 들어섰을 때다. 갑자기 34도에서 14도로 이동했으니, 몸이 놀랄 만하다. 새우젓은 기온 14도, 습도 85%가 유지되어야 맛있게 발효된다. 이보다 낮은 기온에서는 발효되지 않고, 높은 기온에서는 부패한다. 기온과 습도 두 조건을 갖춘 곳이 홍성군 광천읍에 있는 옹암리 토굴이다. 덕분에 바다와 접하지 않는 내륙에서 새우젓 고장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옹암리는 한때 바닷물이 닿던 포구마을이었다. 1950년대에는 안면도, 원산도, 고대도, 장고도, 효자도, 육도, 월도 등 충남지역 섬을 오가는 크고 작은 120척의 배가 머물렀다. 조선일보 1971년 2월 18일 자에도 ‘어선 백여 척과 객선 50척의 포구인 이 마을에선 음력 초엿새에 어항제를 해마다 지낸다’고 했다. 이들 배에 싣고 온 건어물과 젓갈 등 해산물과 섬살이에 필요한 생필품이 옹암포 제방에서 거래되었다. 초기 광천시장 모습이다. 당시 활동했던 보부상을 통해 홍주, 결성, 청양, 보령, 대흥 등 오일장으로 퍼져나갔고, 장항선 광천역을 통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토굴 새우젓은 한 주민이 폐광 갱도에 보관한 새우젓이 부패하지 않고 잘 숙성된 것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주민들은 마을 뒤 당산 아래에 굴을 파서 새우젓 보관용 토굴을 만들었다. 이후 벼 품종개량으로 쌀 생산량이 늘고, 안강망 등 젓새우잡이 어법도 발달하면서 토굴 역할도 커졌다. 토굴은 저온저장시설이 없었던 시기에 장기간 새우젓 맛을 지속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새우젓 산지로 유명한 신안 전장포에도 한때 폐광 토굴에서 새우젓을 숙성했다.
아쉽게 1970년대 천수만 수심이 낮아지고, 안면도 연륙교가 개통되면서 옹암포구는 폐항되었다. 게다가 인근 바다에서 젓새우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옹암리 새우젓 토굴의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서해안고속도로 등 내륙교통이 발달하여 신안과 목포에서 질 좋은 오젓과 육젓 등을 구입해 토굴에서 숙성시켰다. 또 가정마다 좋은 냉장시설을 갖추면서 토굴 새우젓 본연의 맛을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기회도 늘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 속에 천연발효 시설인 새우젓 토굴의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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