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흥, 여기 워라밸 최고예요”…학대받던 정글의 왕이 정착했다는 이 동물원
앙상한 모습 ‘바람이’ 구조해
꾸준한 관리 건강 회복시키고
새끼 사자도 이송 가족찾아줘
동물복지 첫 거점 동물원 지정
“당장 동물원 없앨 순 없지만
야생 복귀전 적응 장소 바꿔
보살핌이 있는 공존 장소로”
지난해 7월, 비좁은 실내 사육장에서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뼈만 앙상한 모습의 ‘갈비 사자’ 바람이가 구조됐다. 청주동물원으로 옮겨진 바람이는 꾸준한 관리와 돌봄 속에서 건강을 되찾았고, 최근에는 바람이의 딸도 청주동물원으로 이송돼 여생을 함께 보내게 됐다.
청주동물원은 2018년 강원 동해 농장의 사육곰(반이·들이)을 시작으로 여우(김서방), 독수리(하늘이), 미니말(사라)에 바람이 부녀까지 여러 동물의 보호·구조치료를 해왔다. 야생동물구조센터가 구조했으나 장애가 발생한 야생동물을 데려와 치료하고, 방사가 가능한 경우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역할도 한다. 환경부는 지난 5월 청주동물원을 동물복지 증진을 위한 국내 첫 거점동물원으로 지정했다. 지난 20여년간 청주동물원을 동물친화적 공간으로 변모시켜 온 김정호 수의사(52)를 매일경제가 만났다.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했어요. 특히 야생동물에 관심이 많았죠.” 김 수의사는 야생동물 보호에 기여하고 싶어 수의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그가 대학을 졸업했을 땐 야생동물 수의사로는 ‘밥벌이’가 어려웠다. “당시엔 야생동물 수의사로 일할 곳이 거의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동물원에 취직했죠.”
과거 청주동물원의 모습은 지금과는 달랐다. 동물의 건강보다는 관리와 관람의 편의성이 우선이었다. “당시 동물원은 동물을 병들게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어요.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요. 이런 동물원에서 일하면서 수의사랍시고 동물을 진찰하고 치료한다는 게 모순으로 느껴졌죠.”
김 수의사는 청주동물원을 변화시켜나갔다. 우선 동물들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환경 조성에 힘썼다. 콘크리트 바닥을 흙으로 바꾸고, 나무와 풀을 심어 자연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었다. 풍부화 프로그램을 도입해 동물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본능적 행동을 유도했다. 사자에게는 먹이를 숨겨 찾게 하고, 원숭이에게는 퍼즐 장난감을 제공하는 식이다. “관람객의 편의보단 동물의 행복을 우선시했더니 오히려 관람객이 늘었어요. 바람이 소식이 알려진 지난해는 전년 대비 관람객이 50% 정도 증가했죠.
김 수의사는 이미 10여년 전 부터 동물권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개선돼 왔지만, 아직도 과거 운영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동물원들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인 창경원이 1909년에 문을 열었는데, 동물원수족관법은 100년이 훌쩍 지난 작년에야 시행됐어요. 그마저도 동물원 운영자의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법이에요. 동물은 피해를 당해도 신고할 수 없으니까요.”
그는 국내 동물원의 가장 큰 문제로 ‘과도한 동물 보유’를 꼽았다. “많은 동물원이 다양한 종을 전시하는 데 치중해요. 하지만 이는 각 동물의 복지를 저해할 수 있어요. 한정된 공간과 자원으로 너무 많은 동물을 관리하다 보면, 개별 동물에 대한 관심과 돌봄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김 수의사는 궁극적으로 전시를 위한 공간인 동물원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당장 동물원을 모두 없애자는 주장은 아니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적응한 모든 동물을 자연에 풀어 주는 것은 방사가 아니라 유기다.
대신 그는 동물원이 인간이 아닌 야생동물에게 필요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나 노령 야생동물이 여생을 보내거나 다친 야생동물이 자연으로 복귀하기 전 적응훈련을 받는 곳, 방문객들은 야생동물이 이렇게 오가는 과정을 경험하고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청주동물원은 야생동물보전센터를 조성 중이다. 야생동물의 외과수술과 건강검진을 진행할 동물병원 성격의 시설이다. “야생동물은 절대로 아픈 티를 내지 않아요.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도태되니까요. 그래서 야생동물은 검진과 예방이 아주 중요하죠.”
김 수의사는 야생동물의 건강검진을 관람객들에게 공개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검진 과정 공개를 통해 방문객들이 야생동물을 관람의 대상이 아닌 보살핌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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