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中 외교부장에서 출판사 직원으로 쫓겨난 친강
▷‘헬리콥터를 타고 정상에 오른 관리’라고 불릴 정도로 친 전 부장은 승승장구했다. 2018년 외교부 부부장, 2021년 주미 대사를 거쳐 이듬해 중국 최연소(56세) 외교부장이 됐다. 몇 달 뒤 중국공산당 국무위원(부총리급)으로도 승격됐는데 전임인 왕이 부장이 5년간 외교부장을 하다 그 자리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초고속 승진이었다. 하지만 성공은 거기까지였고 가파른 추락이 찾아왔다. 외교부장 재임 6개월 만인 지난해 6월 그는 돌연 자취를 감췄다.
▷아무리 잘나가는 공직자나 기업인, 연예인도 공산당 눈 밖에 나거나 부패 혐의 등에 연루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게 중국이다. 하지만 시 주석의 복심이자 중국 ‘늑대전사(전랑) 외교’의 상징이던 그의 갑작스러운 퇴장은 온갖 추측을 낳았다. 홍콩의 유명 여성 앵커와 혼외자를 출산했다는 소문부터 권력 암투설, 간첩설, 사망설이 이어졌다. 그러다 올 7월 중국은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친 전 부장의 사직 요구를 수용해 면직했다고 밝혔을 뿐 관련 경위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동지’로 지칭해 완전히 숙청된 건 아닐 것이란 여지를 남겼다.
▷1년 넘게 행방이 묘연했던 친 전 부장이 올봄부터 중국 외교부 산하 출판사에 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최근 보도했다. 베이징 도심 골목에 있는 ‘월드 어페어스 프레스’(세계지식출판사)라는 곳에 그의 이름이 낮은 직급으로 올라 있다는 것이다. 그가 실제 근무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직원들은 친 전 부장이 일한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부총리급에서 출판사 하위직으로 추락하긴 했지만 처벌을 면한 것만으로도 그에겐 다행이란 시각이 많다. 시 주석은 2012년 집권 이후 ‘호랑이 사냥’이라 불리는 고위층 사정 작업을 지속해 왔는데 그 와중에 옥사하거나 종신형에 처한 권력자들이 적지 않다. 중국 정부는 친 전 부장을 처벌하지 않고도 그의 행방을 철저히 감추고 낙마 경위도 비밀에 부침으로써 ‘어떤 공직자도 당의 손아귀에 있다’는 선전 효과를 이미 거둔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정부가 고위 각료를 경질할 때 국민에게 사유를 밝히는 게 상식이지만, 친 전 부장은 왜 내쳐졌는지, 또 어떻게 돌아왔는지 알 길이 없다. 의문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사회주의 중국의 짙은 폐쇄성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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