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재영]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프로참견러’ 이복현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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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대출 규제 발언으로 시장을 혼란스럽게 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불편과 어려움을 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며 마침내 머리를 숙였다.
앞서 3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7월 티몬·위메프(티메프) 미정산 사태 때도 사과한 적이 있지만, 감독기관 수장으로서의 관리 책임이 아닌 본인의 설화와 실책으로 고개를 숙인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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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 때 빠질 때 구분 안 하는 ‘실세 원장’
그간 시장에선 ‘기준금리는 한국은행이, 대출금리는 금감원이 결정한다’고들 했다. 이 원장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요동쳤다. 7월 초 이 원장이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에 편승한 대출 확대”를 우려하자 은행들은 20차례 넘게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높이며 몸을 사렸다. 대출 수요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지난달 말엔 “대출금리 인상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며 은행들을 질책했다. 이에 은행들이 대출에 빗장을 걸자 이달 4일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호통쳤다. 다음엔 또 무슨 말을 할까, 그저 이 원장의 입만 쳐다보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고 알려진 이 원장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언론에 등장하는 횟수만 보면 국무총리나 기획재정부 장관 등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금융기관 감독과 가계부채 대응 등 본업 외에도 빠지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법무부 주무인 상법과 형법 개정, 기재부 업무인 상속세와 금융투자소득세, 금융위 소관인 은행 지배구조와 공매도 재개 등의 이슈를 모두 이 원장이 주도하는 모양새다. 국내에선 은행의 탐욕을 다그치고, 해외에 나가선 K금융을 세일즈하는 것도 이 원장의 몫이다.
검사 출신인 이 원장은 본인의 포지션을 ‘금융 분야의 검찰총장’으로 잡은 듯하다. 대한민국 모든 형사 범죄가 검찰총장의 손을 거치듯, 금융 전 분야가 금감원장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금감원이 상법 이슈를 챙기는 이유로 “자본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했듯, 이 원장도 직제상 상위인 금융위원장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원장의 직설적 화법은 여전히 금융인보단 검사에 가깝다. 검찰은 범죄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을 강조하면 박수를 받는다. 하지만 금융에 대해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섬세하고 신중해야 한다.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정책대출의 금리’라고 해야 할 것을 ‘정책금리’라고 말하자 기준금리 인상으로 오해한 외국인들의 매도로 채권시장이 한때 출렁였다.
이 원장이 독주하는 데는 금융위의 책임도 피하기 어렵다. 현행법상 금융위는 금융 정책, 외국환업무 취급기관의 건전성 감독 및 금융감독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고, 금감원은 금융위의 지도·감독을 받아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를 수행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실세 원장을 앞세운 금감원의 힘이 금융위를 압도했다. 여당 국회의원들조차 신임 김병환 금융위원장의 인사청문회에서 “금융 당국 수장이 누구인지 헷갈린다”고 했을 정도다.
금융위원장-금감원장 역할 정리부터
금융위는 존재감이 없고, 금감원은 전방위로 칼춤을 추면서 일각에선 이참에 금융감독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금융산업 정책과 금융감독 정책을 분리하자는 법안이 최근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감독 체계 개편은 성급하게 추진할 일은 아니다. 현행법대로 금융위는 금융 정책 및 감독을 총괄하고 금감원은 감독 실무를 수행한다는 원칙부터 확립해야 한다.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 둘 다 ‘정명(正名)’을 되찾는 게 우선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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