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아버지 되겠다”…불전함 훔친 소년, 27년 만에 ‘사죄의 편지’

1997년 외환위기(IMF)로 많은 국민이 실직의 어려움을 겪던 시절, 경남 양산 통토사 불전함에서 3만 원을 훔친 소년이 27년 후 돈봉투와 함께 참회의 편지를 보낸 사연이 전해졌다.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9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에 따르면 최근 통도사 자장암 시주함에서 이름이 쓰여있지 않은 한 통의 손 편지와 함께 5만 원짜리로 된 현금 200만 원이 든 봉투를 발견했다.

편지에는 “어린 시절 생각이 없었습니다. 27년 전에 여기 자장암에서 시주함을 들고 산으로 가서 통에서 돈을 빼갔습니다. 약 3만 원 정도로 기억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어 “며칠 뒤 또 돈을 훔치러 갔는데 한 스님이 제 어깨를 잡고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셨습니다”며 “그날 아무 일도 없이 집으로 왔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한 적이 없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잘살고 있습니다”라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스님이 주문을 넣어서 착해진 거 같습니다. 그동안 못 와서 죄송합니다. 잠시 빌렸다고 생각해 주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사죄의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아이의 탄생을 알린 남성은 “아기에게 당당하고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날 스님, 너무 감사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라고 글을 끝맺었다.

27년 만에 전한 참회의 손 편지. 연합뉴스

27년 전 소년의 어깨를 따뜻하게 잡아준 스님은 통도사 주지를 역임한 후 지금은 자장암에 기거하는 현문 스님으로 알려졌다.

현문 스님은 “그때 그 소년이 불전함에 손을 댄 것을 보고 어깨를 다독였다. 그 인연이 소년에게 삶의 이정표가 돼 성찰의 기회로 작용한 것 같다”며 “곧 태어날 아이도 축복 속에 태어날 것”이라는 축원을 전했다.

박윤희 기자 py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