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이 다가가야 한꺼풀 열린다[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현대 정신분석에서는 ‘분석 거울’이 분석가의 마음도 보여줍니다. 한쪽이 아닌 양방향 소통을 지향합니다. 분석의 핵심은 소통과 이해와 해석입니다. 대화를 근거로 이해해서 해석으로 돌려주는 일을 반복합니다. 그러니 소통이 막히면 분석도 막힙니다.
‘분석 거울’은 올바른 방법으로 닦아야 기능이 유지됩니다. 공감(共感)으로 밝게 닦아야 합니다. ‘남의 의견, 주장, 감정에 대해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믿고, 넓고 깊게 이해합니다. 늘 모든 것에 공감할 수는 없습니다.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의 관점(觀點)은 다릅니다. 과거와 현재를 분석가는 현미경으로, 피분석자는 망원경으로 살피려 한다면? 미래를 분석가는 망원경으로, 피분석자는 현미경으로 보려 한다면? 대화를 이어가면서 변화를 기다려야 합니다. 한결같이 견뎌야 합니다. 피분석자는 ‘학습된 무력감’에 사로잡혀 스스로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관점이 달라져야 마음이 자유를 찾습니다.
시간이 꽤 흘러도 삶을 파악하는 관점은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피분석자 사이에 크게 차이가 납니다. 변화는 통찰(洞察)로 시작되지만 ‘꿰뚫어 살펴야’ 하니 고통스럽습니다. 저항이 지속됩니다.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찾아내 해석으로 도우려 하지만 어렵습니다. 현미경으로 볼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서 그릇 인식하면 정말 어렵습니다. 서로 소통하려면 현미경으로 관측 도구를 바꿔야 합니다. 눈앞의 것을 망원경으로 보면 허망하게 놓칩니다. 생각 없이 멀리만 보면서 보고 있다고 우기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단, 만남과 대화가 오래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어질 수 있다면 격차는 좁혀지고, 관점은 통찰에 힘입어 깊어집니다. 반면에 특정 관점을 계속 고집하면 소통이 아닌 불통(不通)의 함정에 빠집니다.
공감할 수 있으면 소통의 문이 열립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분석가는 소통의 문을 넓게 열지 못합니다. 무리해서 좁은 틈새로 들어가려 하다가 끼이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됩니다. 수직적인 관계에서 강자가 약자의 입장을 공감하는 일은 드뭅니다. 수평적 관계가 돼야 공감이 활성화됩니다. 자신을 상대의 입장에 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분석가는 스스로 ‘교육 분석’을 여러 해 동안 받으면서 분석의 본질, 요체, 실제를 스스로 경험해야 합니다. 이론 공부와 사례 연구는 다음입니다.
분석은 대화를 기반으로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작업입니다. 변화하려면 깨닫고 실천하고 되풀이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비관적, 수동적 관점을 생산적, 능동적 관점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니 분석은 삶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관점을 깊게 넓게 만들어 내는 작업입니다. 관점이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놓치는 것들이 생깁니다. 균형이 잡힌 관점으로 바꾸고 유지하도록 피분석자를 돕지만 통합적 관점을 얻으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립니다. 변화는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바라는 마음과 현상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부딪히면 방어하고 저항합니다. 이를 뛰어넘어야 분석이 진행됩니다. 경험, 지식, 인내는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한결같음이 요구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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