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시골 마을의 ‘최저 자살률’ 비결, 이웃간 ‘절묘한 거리감’ 이었다 [방구석 도쿄통신]
도쿠시마현 가이후초, 이웃간 거리감이 자살률 낮춰
고민상담에도 ‘결단은 너의 몫’, 유대감 위에 존중심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일본 내면 풍경, 살림, 2014
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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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자살이 많은 나라’라는 오명(汚名)이 있습니다. 지난해 자살자 수는 2만1818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2678명)의 약 8배였습니다. 한 건의 자살 혹은 자살 미수는 주위 평균 5.6명에게도 부정적인 심리 영향을 가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낳는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한 국가에 자살이 사라지면 약 1조7000억엔(약 16조2억3000만원)의 GDP(국내총생산) 상승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죠.
자살 문제는 일본 사회의 고질적 과제 중 하나인 만큼, 중앙정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선 자살률이 낮은 국내외 사례를 통해 무엇이 ‘자살예방인자’로 작용하는지 연구에 매진합니다. 이 가운데 최근 ‘일본에서 자살률이 가장 낮은 지역’이 언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남동부 도쿠시마현 끝자락에 있는 연안 도시 가이후초(海部町)입니다.
서울 종로보다 약간 넓은 면적(26㎢)에 8600여 명이 사는 시골마을 가이후초를 두곤 1995년 9월 15일 일찍이 아사히신문이 <노인 자살 17년간 제로, 다른 지역과 달라도 아주 다른 도쿠시마 가이후초> 제하의 기사를 내보낸 적 있습니다. 지역 특성과 자살률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오카 마유미(岡檀·일본 정보 시스템 연구기구 통계수리연구소 교수)씨는 이 기사에 주목, 최근 일본에서 자살률이 가장 낮은 10개 지역 중 가이후초가 유일하게 낙도(落島·외딴 섬)가 아닌 점을 포착했습니다.
지난 7일 야후뉴스에 따르면, 오카 교수는 최근 4년에 걸쳐 200명 이상의 가이후초 주민들과 만나고 3300명 이상을 설문조사해 이 지역의 특성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그의 결론은 “가이후초 주민들 사이엔 ‘긴밀한 유대’가 없다. 이웃 간 관계가 교착돼 있지 않고 ‘완만한 유대’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자살 방지를 위해선 지역 주민들이 나서 독거노인 등 외로움에 취약한 사람을 챙기고 친목을 다져야 한단 분석이 많은데, 이와 대치되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이 지역에 사는 보건사 마츠바라 후미코(松原文子)씨는 최근 도쿠시마현 내에서도 자살률이 비교적 높은 지역에서 이주했다고 합니다. 그는 야후뉴스에 “가이후초에 비해 다른 지역에는 ‘강한 유대’가 있다고 느낀다”며 “강한 유대감의 집단에선 남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의존 관계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무언가 돌려줘야 한다는 역학관계가 생기기 쉽다. 그로 인해 되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기 어렵고, 우울함에 빠질 확률이 높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반면 가이후초의 경우 이웃과의 교제가 드물고, 남을 돕는 일도 의무감이 아닌 ‘내친김에 하는 일’로 인식해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되는 역학관계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마츠바라씨의 설명입니다.
오카 교수는 나아가 가이후초 주민들이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절묘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상대방을 관찰한다”고 했습니다. 유대감이 강하지 않다고 해서 다른 이웃에게 무관심하진 않다는 것인데요.
예컨대 가이후초에서 굴 양식을 하는 이와모토 겐스케(岩本健輔)씨는 평소 출장이 잦은데, 이러한 사정을 아는 이웃들이 이따금 집 근처 벌초를 대신 해준다고 합니다. 평소 대화가 잦지 않아도 오가며 알게 된 서로의 사정을 헤아려 티 나지 않게 도와준다는 거죠.
이와모토씨는 “일본 시골 마을은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는 ‘배타적 거리감’이나, 모르는 사람이 우리집을 휙휙 드나드는 ‘과하게 가까운 거리감’ 중 하나로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필요할 땐 서로 도우면서도, 필요가 없으면 특별히 만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 거리감이 절묘하다”고 했습니다.
다른 특징으로는, 가이후초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상대를 막론하고 반말을 쓰는 것은 아니고, 10살 안팎의 나이차 정도에서 그런 모습이 두드러졌습니다.
이처럼 연령차를 신경 쓰지 않고 대화하는 덕분에 가이후초 사람들은 주민회나 학부모회 등 모임에서 누구든 편히 의견을 개진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가이후초를 안고 있는 가이요초(海陽町) 미우라 시게키(三浦茂貴) 정장(町長)은 “어떤 커뮤니티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면서 “회의가 길어지기도 하지만, (모두의 의견을 듣고 정한) 최종 결과는 항상 평가도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반말 사용이 일상적인 가이후초에선 입 밖에 꺼내기 어려운 고민거리도 남에게 고백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오카 교수가 밝혔습니다. 오카 교수는 도쿠시마현 지역 주민들에게 ‘고민이 있을 때 남에게 상담하거나 도움을 쉽게 구할 수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이에 비교적 자살률이 높은 마을에선 “그렇다”는 응답이 절반 이하인 47.4%였고, 가이후초에선 62.8%였습니다.
이에 대해 지역 복지센터 ‘앗타카이요(あったかいよう·따뜻하게)’에서 활동한 가사하라 마리(笠原まり)씨는 “특히 가이후초 사람들은 ‘고민을 들었으니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식의 지나침이 없고, ‘어디 한번 들어줄 테니 얘기해봐라’라는 텐션으로 심각하지 않게 가볍게 (남의 말을) 들어준다”고 했습니다.
어느 집단이든 성격이나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만 남는 ‘균질화’가 진행될수록, 그 특성에서 벗어나는 언행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오카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의 집단 대부분은 균질화돼 있다고 했죠.
일본에선 흔히 ‘눈치가 없다’는 말을 ‘공기(空氣)를 못 읽는다’고 표현하는데, 이에 들어맞는 설명인 셈입니다. 1977년 일본 사회평론가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책 <공기의 연구>에선 이 ‘공기’가 ‘일본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쓰였습니다. 일본 학생들 사이엔 ‘이지메(집단 따돌림) 문화’가 만연하다고 유명한데요. 학생들 사이에서도 집단 특유의 ‘공기’를 읽지 못한 사람이 이지메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이후초는 이런 통상적 일본 집단들과는 다르다는 게 오카 교수 설명입니다. 그는 “가이후초 집단은 다양성을 존중한다. 예컨대 고민 상담을 해도 그 결과에까지 관여하진 않는다. 상대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라며 “가이후초도 일본의 다른 집단들과 똑같이 소문을 좋아하고 사생활 이야기도 금방 퍼진다. 하지만 유대감 위에 상대방과 거리를 두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다른 마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했습니다.
오카 교수는 최근 이처럼 자살률을 낮추는 데 일조한 가이후초의 특성을 다른 지역에도 반영하기 위한 연구에 한창이라고 합니다. 2013년에는 이를 주제로 <살기 좋은 마을, 자살률이 낮은 데는 이유가 있다>는 단행본도 냈습니다. 그는 지난 7일 야후뉴스에 “자살률이란 큰 과제에 대한 대책은 당장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차례차례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9월 11일 55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일본 최저 자살률’을 자랑하는 시골마을의 비결에 대해 소개해드렸습니다. 때로는 남들과의 유대보다 적당한 거리감이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53~54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나가사키는 왜 원폭 추도식에 이스라엘 초대하지 않았을까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8/28/PAC3FH7V6VDKPPT7ABHNKKGC4I/
기시다의 포기가 부른 자민당의 ‘새 바람’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9/04/ZPPKWYZEJNBQBPO5XB2SNLE7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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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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