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구산동 고분군 ‘세상 밖으로’…100년 만에 재조사
[KBS 창원] [앵커]
옛 금관가야의 중심인 김해에는 다양한 가야 유산들이 있는데요.
김해 구산동 고분군에 대한 재조사가 일제강점기 이후 약 100년 만에 이뤄졌습니다.
당시 지배층의 무덤 구조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주요 자료로 평가됩니다.
윤경재 기자입니다.
[리포트]
수로왕비릉 바로 옆 야트막한 구릉의 사적 제72호, 김해 구산동 고분군 2호 봉분입니다.
직경 14m, 높이 4m 봉분 안에는 남쪽으로 입구를 낸 석실이 있습니다.
들어갈수록 사방의 돌벽이 좁아지는 횡혈식 석실분 형태입니다.
천장은 큰 돌 2개로 덮었습니다.
고분을 쌓아 올린 돌 사이에 석회를 두껍게 발라놓은 흔적입니다.
당시 최고위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유입니다.
석실과 배장묘에서 출토된 토기 2점과 무덤 둘레를 신라시대 유행한 호석으로 감싼 형태로 미뤄, 금관가야 멸망 직후인 7세기 초반 지배층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박미정/대성동고분박물관 학예연구사 : "일반적인 가야 고분은 호석이라든지 이런 구조가 밖으로 드러나는 구조가 아닙니다. 여기 같은 경우에 호석이 완전히 드러나는 신라식 고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1910년대 일제의 발굴과 도굴 뒤 알려진 게 거의 없었던 구산동 고분군의 실체를 최초 확인한 게 가장 큰 성과입니다.
가야에서 신라로 이어지는 지배층 고분 양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전망입니다.
또, 청동기시대 분묘와 조선시대 제단 흔적도 함께 발견돼 이곳이 수천 년 역사의 중심지였다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정인성/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청동기 시대 그리고 가야가 들어서는 시기, 그 이후 신라가 권역을 확장하는 시기에도 김해에서 가장 좋은 입지가 아니었나, 그래서 아마 여러 시대의 유구가 형성된 지점인 것 같습니다."]
연구진은 그간 알려진 1, 2호 봉분 사이 3기의 무덤을 더 발견했다며, 이에 대한 연구를 마무리한 뒤 사적 범위 재지정을 검토할 계획입니다.
KBS 뉴스 윤경재입니다.
촬영기자:이하우/그래픽:백진영
윤경재 기자 (econom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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