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경관에 담긴 애달픈 단종애사, 영월 여행 [투얼로지]

영월|김재범 기자 2024. 9. 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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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이 유유히 돌아가는 영월 청령포. 감입곡류하천 구하도의 대표적인 사례로 삼면이 강(서강)으로 둘러쌓고 남은 한쪽은 험준한 암벽이라 배가 아니면 오갈 수가 없어 단종이 이곳에 유배됐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영월은 물의 고장이다. 동강을 비롯해 서강(평창강)과 주천강이 동서로 지역을 가로 지르는가 하면, 영월읍에서는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이 시작된다. 이 물길들은 우리나라 감입곡류하천의 대표적 사례라는 청령포를 만들었고, 오랜 시간의 마법과 어우러져서는 무릉리 요선암이란 절경을 탄생시켰다.
이렇게 한껏 수려한 경관을 가진 고장이지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영월은 조선 시대 비운의 임금인 단종이 이곳으로 유배를 와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짠한 ‘애사’(哀史)를 안고 있다. 눈이 즐거워지는 빼어난 풍광과 비극적인 역사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묘한 아이러니. 그래서 영월은 방문객에게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힘든 삽상한 객창감을 전해준다.
영월 무릉리의 요선암. 주천강과 법흥천의 물길이 합류하면서 긴 세월에 걸쳐 기기묘묘한 모습의 바위들을 강변에 조성해 2013년 천연기념물로 등재됐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신선의 놀이터가 이곳, 요선암 무릉도원면 무릉리의 요선암은 태기산에서 발원한 주천강과 사자산에서 발원한 법흥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이곳은 두 강의 물줄기와 긴 세월이 만나 기이한 모양의 바위들을 물가에 탄생시켰다. 요선암의 바위는 2013년 영월 무릉리 요선암 돌개구멍이라는 명칭으로 천연기념물에 올랐다.
천연기념물인 영월 요선암에는 단단한 화강암 바위에 생긴 다양한 모양의 돌개구멍(포트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바위가 미끄럽고, 수심이 생각보다 깊은 곳이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돌개구멍은 강의 바위에 있는 갈라진 틈이나 오목한 곳으로 모래나 자갈이 들어가 오랜 세월 소용돌이치는 물살로 회전운동을 하면서 만들어 낸 항아리나 원통 모양으로 난 구멍을 말한다. 요선암이란 이름은 조선 명종 때 평창 군수이던 양사언이 이곳 바위에 ‘요선암’(邀僊巖)이라고 쓰면서 알려졌다.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뜻이다. 제법 넓은 강 유역에 저마다 다른 모양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넓게 퍼져 뛰어난 경치를 이루고 있다.
요선암 인근 언덕에 위치한 요선정과 무릉리마애여래좌상. 고색창연한 석불의 모습과 아담한 정자가 어우러져 제법 흥취가 나는 모습이다. 특히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계곡 경치가 일품이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요선암 옆에 있는 숲 속 오솔길을 따라 한 10분 정도 올라가면 아담한 정자와 바위에 새긴 부처, 마애불이 나온다. 요선정과 무릉리마애여래좌상이다. 이곳이 신라 때 절터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오래된 마애불과 한참 후대인 1900년대 초반에 지은 정자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역사적 의미보다는 여기서 내려다보는 계곡의 경치가 일품이다.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에 기대 앉아 새소리 들으며 잠시 여유를 즐기면 좋다.
영월 요선암 옆의 무릉리마애여래좌상. 신라 시대 절터였으나 지금은 이 마애불 정도만 남아 있다. 이곳에 앉아 산바람을 맞으며 계곡 아래로 무심히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면 차분한 힐링을 만끽할 수 있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휘돌아 흐르는 물길에 담긴 슬픔, 청령포 남면 광천리에 있는 청령포는 단종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지질학적 용어로는 구하도(舊河道)라고 하는데, 감입곡류하천에서 하천의 물길이 바뀌기 전에 흘렀던 이전 물길의 흔적이라고 한다.
영월 청령포로 가는 배를 타는 선착장의 모습. 이곳에 유배됐던 단종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와 단종과 정순왕후의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청령포는 삼면이 강(서강, 평창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으로는 육륙봉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마치 한반도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처럼 경치는 수려하지만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나다닐 수 없는 섬과 같은 곳이라 역설적으로 유배지로는 천혜의 조건이다.
영월 청령포의 단종 유배지. 유적지의 공원화가 잘 이루어졌고 송림이 울창해 여행객은 물론이고 인근 학교와 유치원생들의 체험학습 현장으로도 사랑받고 있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청령포에는 단종이 이곳에서 지냈다는 것을 알려주는 단묘유지비와 어가, 단종이 한양 방향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기던 곳이라는 노산대, 한양에 있는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돌탑, 외인의 접근을 금하기 위해 영조가 세웠다는 금표비 등의 역사 유적이 있다.
청령포로 유배 온 단종이 올라가 한양 쪽을 바라보던 노산대로 가는 길에 만난 서강의 모습. 이곳의 슬픈 역사를 무심히 지켜보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단종의 숙소 주변으로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데, 이중 천연기념물인 관음송이 있다. 단종이 걸터앉아 말벗을 삼았다는 관음송은 수령 600여 년 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다. 단종은 강 건너 영월부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기기 전까지 두어 달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워낙 지세가 험하고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단종이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했다고 전한다.
선착장에 있는 청령포의 모형과 서강을 오가는 배.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단종이 ‘육지고도’라고 표현할 정도로 외롭고 고립된 유배지였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소나무도 허리 굽혀 절을 하는 장릉 영월읍에 있는 장릉은 바로 단종이 묻힌 왕릉이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랐다. 장릉 주위의 소나무는 모두 능을 향해 절을 하듯 굽어 있다. 단종은 12세에 왕위에 올랐다가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17세에 죽음을 당했다.
단종이 묻힌 영월의 장릉. 능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고 정자각이나 기타 제례와 참배를 위한 시설과 길은 모두 언덕 아래에 조성한 특이한 형태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영월의 호장 엄흥도가 몰래 수습하여 장례를 지내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중종 시절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했다. 지금처럼 능호를 장릉으로 정하고, 왕권을 회복해 단종으로 추복된 것은 한참 뒤인 숙종 때다.
영월 장릉에 있는 엄흥도 정려각. 죽음을 무릅쓰고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장례를 지낸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영조가 세운 전각이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그래서 장릉은 다른 왕릉과 달리 병풍석과 난간석이 없고 석물도 단출하다. 봉분 앞에도 무인석이 없다. 묘가 조성된 언덕 아래에는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비, 정자각·홍살문·재실·정자 등이 있다.
영월 장릉의 단종 능침. 후대에 단종의 왕위가 복원되고 그에 걸맞게 능을 조성하기 까지 많은 세월과 우여곡절을 겪다 보니 다른 왕릉과 달리 병풍석이나 난간석이 없고 석물도 단출하다. 봉분 앞에 무인석도 없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이곳에 있는 단종 역사관에는 단종의 탄생부터 17세에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대기를 기록한 사료가 전시되어 있다. 창덕궁을 지나 강원도 영월에 이르기까지 단종의 유배 경로를 표시해둔 사진을 통해 단종의 발자취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청령포의 옛 사진과 유배를 갈 당시에 관리들과 단종의 모습을 재연해 놓은 밀납 인형도 전시되어 있다. 단종 역사관에서 단종능까지 짧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올갱이 해장국 1티어가 이곳에 영월은 오랜 고장의 역사에 비해 지역을 대표하는 ‘전국구’ 음식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것이 다슬기 해장국이다. 지역 방언인 올갱이 해장국으로 더 친숙한데, 영월에는 다슬기 해장국집이 여럿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영월역 앞에 있는 ‘다슬기향촌 성호식당’이다. 늘 사람으로 북적거려 이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아침밥을 먹으러 오픈런까지 해야 하는 드문 상황이 벌어지는 집이다.
영월역 앞에 있는 ‘다슬기향촌 성호식당’의 다슬기 해장국. 동강 다슬기를 넣고 끓인 국이 구수하면서 깊은 맛을 낸다 칼칼한 국물맛의 다슬기 순두부와 씹히는 다슬기 식감이 매력인 다슬기전도 있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신선한 동강 다슬기를 듬뿍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 국은 구수하면서 깊은 풍미를 전해준다. 굳이 전날 술을 먹지 않았더라도 절로 “어, 시원하네”라는 찬사가 입밖으로 나오는 그런 맛이다. 다슬기국에 고춧가루로 칼칼한 맛을 더하고 순두부를 넣은 다슬기 순두부나 씹히는 다슬기 살의 식감이 좋은 다슬기전도 일품이다.
영월 ‘다슬기향촌 성호식당’의 다슬기전(왼쪽)과 다슬기순두부. 전의식감과 칼칼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영월|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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