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칼럼]국경에서 본 2024년 여름 북한 풍경

기자 2024. 9. 1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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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연구하면서 될 수 있으면 매년 북·중 국경 일대를 답사하려 했다. 올해도 늦은 8월에 국경답사를 다녀왔다. 북한을 직접 방문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고 신뢰할 만한 북한 관련 통계자료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국경답사는 북한의 실상을 파악할 차선의 대안이다. 물론 북·중 국경에서 한두 차례 북한을 바라본다고 해서 이 사회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 주민들의 말과 생각을 읽을 수 없기에 국경에서 보는 북한은 마치 풍경화나 풍속도를 보는 느낌이다. 따라서 이 풍경화를 뚫고 들어가 북한 사회의 내면을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방법의 하나가 시계열 분석이다. 매년 혹은 2~3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북·중 국경의 풍경을 시계열로 비교 관찰하면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지속하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되고 이를 통해 북한을 객관적으로 해석할 힘을 얻게 된다.

1996년부터 30년 가까이 북·중 국경에서 바라본 북한의 국경 도시와 농촌, 그리고 산야는 대체로 2010년대 초반까지는 거의 변화를 찾아볼 수 없는 무채색의 고장이었다. 온 산은 정상까지 덕지덕지 뙈기밭이 뒤덮었고, 퇴락한 건물과 주택으로 가득 찬 도시와 농촌에서는 어떤 건축의 움직임도 보기 어려웠다. 겉으로는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였지만 실상 발전이 멈추어 있었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북한의 풍경이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신의주와 혜산시에는 매년 고층빌딩이 올라가 스카이라인이 바뀌었으며 도시, 농촌 가릴 것 없이 주택 신축 붐이 일었다. 코로나로 북한이 국경봉쇄를 단행한 2020~2022년을 뛰어넘고 작년에 다시 국경답사에 나서보니, 신의주와 혜산시의 스카이라인이 다시 바뀌었고 북한 농촌 곳곳에 새로운 농촌주택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물론 만포시, 김정숙읍 등 중소도시나 벽지의 노동자구에선 여전히 무채색의 풍경이 가시지 않아 개발의 불균형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북한의 건설 붐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이러한 변화를 선진 대한민국의 문명 기술 수준에서 보면 조야하고 꾀죄죄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긴 시간을 두고 관찰해온 연구자의 눈엔 오랜 침묵의 땅에서 활력이 솟고 그들 나름의 미래를 향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올해 답사에서는 7월 말 압록강 일원에서 발생한 대홍수로 인한 피해 및 대처 상황도 살펴보았다. 북한의 수해 대처는 그들의 국가 위기관리 능력을 가늠할 기회이기에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압록강 일원에서 수해 피해는 압록강 하류와 상류에 집중되었다. 북·중 양국을 잇는 6개의 댐이 들어서 일찍이 댐 만수위를 상정하고 강변 마을들을 옮긴 적이 있는 압록강 구간에서는 주목할 만한 피해가 목격되지 않았다. 반면에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 하단리를 비롯한 피해지역들에서는 많은 인원과 중장비들이 침수되었던 농촌가옥들을 부수고 있었다. 가장 오지라 할 수 있는 양강도 김형직읍의 압록강 가에도 포클레인, 불도저, 트럭 등 중장비가 동원되어 복구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체로 북한 당국이 언론에 밝힌 대로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북한의 국가 위기관리 능력이 전보다 제고되었다고 느꼈다.

국내 일부 보도는 뙈기밭으로 산이 황폐해져 이번 폭우로 산사태가 많이 발생했다고 했으나 적어도 수백㎞에 이르는 압록강 변에서 북한의 산을 보았지만, 일부 소규모 산사태도 목격되었으나, 대체로 뙈기밭과 연관을 지을 만한 경우는 드물었다. 북한 주민 삶의 척박함을 상징했던 뙈기밭은 2015년 무렵부터 감소하기 시작했고 그 대신 조림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올해는 북한의 산림 복구 상황이 눈에 보일 정도였는데, 그 덕을 어느 정도 본 것 같다. 동행한 정통한 북한 경제 전문가는 “산등성이 뙈기밭들은 여전히 경작되고 있는 것이 많았지만 산 정상과 심한 경사지에 있었던 뙈기밭이 더 이상 경작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화되어 갔기에, 이 폭우가 더 큰 산사태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윤석열 정부를 비롯한 적잖은 이들이 북한의 현실을 ‘최악의 경제난’과 ‘민심이반’으로 표현하면서 북한 정권을 실패한 정권으로 규정하고 붕괴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가 북·중 국경에서 본 북한 경제는 우상향하고 있으며, 김정은의 리더십은 주민 친화의 쇼맨십을 갖춘 쪽으로 더 노회해졌다. 북한 붕괴의 조짐은 없으며, 그 가능성도 과거보다 현저히 줄었다. 이제 현실을 직시할 때가 되었다. 정부는 이제라도 북한 붕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 과학의 눈으로 북한을 보기 바란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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