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린 미래에도 ‘K팝의 원조’일 수 있을까
지난 8월 초, SM엔터테인먼트가 만든 영국 보이그룹 ‘디어 앨리스’의 존재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1996년 H.O.T.가 데뷔한 지 28년 만에 한국이 만든 영국 보이그룹이 등장한 것이다. 테이크 댓(Take That), 원디렉션(One Direction)등 브리티시 보이그룹에 열광했던 이들이라면 이 낯선 풍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더욱 의미심장하게 와닿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질문들이 따라붙는다. 과연 이들은 한국 출신 K팝 그룹들만큼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K팝이 이를 통해 얻는 이익은 무엇일까? K팝은 이제 비로소 주류에 진입(편입)하는 걸까? 그런데 한국이 만드는 영국 보이그룹은 과연 K팝일까? 이 질문들에 대한 불명확한 대답의 실마리를 얻기 위해 우리는 K팝의 본질과 그 궁극의 지향점을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K팝을 ‘음악’ 장르로 규정하려는 노력은 여지없이 수포로 돌아갔다. 전자음악과 흑인음악적 성향, 장르가 복잡하게 뒤섞인 혼종성 등은 현대 대중음악의 공통된 특질이지 K팝만의 것이라 보긴 어렵다. 절도 있는 군무나 화려한 무대, AI 이미지를 방불케 하는 비현실적 외모도 있겠지만 결국 K팝이 다른 대중음악에 비해 유독 도드라지게 하는 근본적 차이는 바로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체계화된 훈련생 육성 시스템, 그리고 세계시장을 겨냥한 현지화 전략에서 만들어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지화 전략은 원래 가요시장의 열악함을 타개하려 고안해낸 일종의 ‘궁여지책’이었다. 일차적으론 선진 음악시장인 일본 등에 진출해 보다 안정적 수익을 올리고 K팝 산업의 파이를 키우려는 의도였다. 물론 그 안에는 88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움튼 세계화에 대한 욕망과 비전도 숨어 있었다. 미국과 영국 등 서구가 독점해 온 장르 중심의 음악이 아닌 비주얼적 매력과 퍼포먼스 중심의 음악이 대세가 되는 시장이 열리면 젊고 수려한 한국 아이돌에 서구인들이 열광하게 될 것이라 내다본 이는 SM엔터테인먼트의 수장 이수만이었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오리지널리티와 진정성이 핵심이 되는 음악의 시대가 저물고 MTV와 마이클 잭슨의 시대가 열리면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젊은 ‘아이돌’들이 음악의 주인공으로 떠올랐고, 그 흐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시스템화한 것은 놀랍게도 한국이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No. 1’을 차지한 보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K팝이 내세운 성공 카드는 ‘다국적’ 아이돌이었다. 솔로에 비해 다양한 이미지와 퍼포먼스로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아티스트 한 명의 재능이나 카리스마에 의존하기에 가요의 저변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는 것도 현실적 이유였을 것이다. 어쨌든 민족국가라는 개념으로 지난 한 세기를 살아온 세계인들이 주변부 음악인 K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 국적, 인종, 언어의 장벽은 높았고 이 같은 한계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현지인이나 교포 멤버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었다. 소녀시대에서 뉴진스까지 다국적 멤버를 활용한 이 같은 현지화 전략은 대부분 효과가 입증되었고, 이는 여전히 K팝 산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문제는 이 현지화 단계의 마지막이자 궁극적 지향이라 할 만한 ‘현지인만으로 이루어진 K팝’이라는 개념이 예기치 못한 딜레마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만약 K팝의 요체가 음악이 아니라 트레이닝 시스템과 현지화 전략이라면 그건 분명 복제될 수 있다. 그 속도는 우리가 영미권 혹은 일본의 아이돌을 모방해 성공시킨 것보다 훨씬 더 빠를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 예기치 못한 미래의 시장에서도 여전히 K팝의 ‘원조’임을 성공적으로 주장할 수 있을까. 구태의연하지 않은 K팝의 창조적 아이디어가 새롭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영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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