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의 경보음이 들리면, 일단 칼날이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라[윤지호의 투자, 함께 고민하시죠]
투자자는 낙천적이어야 한다. 투자의 실패 가능성보다 성공에 무게를 두고 선택해야 한다. 길게 보면 기술혁신이 이어져 경제는 성장하고, 주가도 상승한다. 장기투자자가 승자가 되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붙는다.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변동성 위험을 이겨내고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는 위험을 인지하며, 스스로를 지켜왔던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이다. 겁 없이 숲에 나선 원시인은 맹수의 먹이가 되었다. 숲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 일단 몸을 숨기고 맹수가 지나가길 기다려야 했다.
누구나 돈을 불릴 거란 기대로 카지노에 간다. 돈은 베팅의 크기에 비례해 벌 수 있다. 겁이 많아 매번 뒷걸음치는 이들은 큰돈을 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크게 잃지도 않는다. 잠시라도 카지노를 떠나지 못하는 도박꾼은 그렇지 않다. 위험한 상황이 오면 스스로 베팅을 멈출 수 있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돈을 따는 중이라면, 스스로의 운과 실력을 믿고 더 과감하게 승부할 뿐 게임을 멈출 수 없다. 행동경제학에서 ‘도박꾼의 자만’으로 불리는 심리적 오류다.
물론 투자와 도박은 다르다.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 호모 사피엔스의 선택이란 점은 같다.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프레임에 우리는 갇혀 있다. 마치 카지노에 들어서면 베팅을 멈추지 못하는 도박꾼처럼, 때론 욕망은 폭주기관차가 되어 제어할 수 없는 순간에 들어선다. 도박꾼의 자만이 결국 베팅을 멈추지 못하게 하듯이, 투자자나 투기꾼도 ‘나는 위험이 오기 전에 멈출 수 있어’ ‘힘든 순간이 와도 나는 버틸 수 있어’라고 자만하지만, 인간이기에 위기가 오면 대다수는 공포를 이겨내기 쉽지 않다.
투자자는 경기침체기로 향해갈 때 위험에 처한다. 기업이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면 고용을 줄이고 소비자는 지갑을 닫는다. 경기하강이 경기침체로 매번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경기침체는 반드시 돌아온다. 경기가 좋아도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 견딜 만한 조정이다. 하지만 호황에서 경기하강으로, 끝내는 경기침체로 나아갈 때의 조정은 견디기 힘들다. 경기가 좋을 때, 인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욕망의 총합을 키운다. 경기침체는 높아진 기대가 큰 실망으로 보답하는 구간이다.
2008년 잊혀진 한 경제학자가 소환된다. 그가 세운 가설은 살아있는 동안 학계에서 높이 평가받지 못했고,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인 1996년에 사망했다. 하이만 민스키는 호황기의 안정이 스스로 파괴의 씨앗을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모든 게 안정적으로 보이면, 개인은 빚으로 소비를 늘리고, 기업은 꿈꾸며 무리한 투자를 한다. 안정성이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고, 이는 결국 위기로 이어지는 불안정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투기적 행복감에 취해 욕망을 과도하게 키울 때 위기에서 공황으로 이어질 것으로 봤다. 민스키도 경기의 정점과 바닥은 소급해서만 알 수 있을 뿐,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음을 강조했다. 앨런 그리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1996년 버블을 경고했지만, 2000년 나스닥은 3배 상승했다.
민스키가 소환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안정이 불안정성을 만든다는 그의 가설을 이해하면 주가의 최고점에 나오는 탐욕이나 최저점에 동반되는 공포에 휘말리지 않을 정도는 될 수 있다.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은 이제 선반영 논란으로 연결되고 있고, 인플레이션 악몽을 지나가자 이제 연준은 금리를 내려 고용을 유지하려 한다. 중동 분쟁이 확산되고 있지만, 유가는 경기를 반영해 하락하고 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한계치에 들어서고,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로 확산되고 있는 전 세계 상업용 부동산 위험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경기가 정점을 치고, 하강에서 침체로 나아가는 시기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안정기에서 불안정기로 나아가고 있다면, 모든 것이 더 악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남은 2024년은 결과보다 미래를 대하는 태도가 투자성과를 결정지을 것이다.
윤지호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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