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용 소화기 판매"···화재공포 틈타 허위광고 기승

김창영 기자 2024. 9.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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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검색하면 관련 용품 수백종
잇단 화재에 단기간 등록건수 급증
전용제품 없는데도 공포심리 자극
정부, 전고체 전지기술 개발 추진
피해 커지는데 소비자 대책 하세월
한 아파트 단지에서 전기차 화재 전용 소화기라며 배치한 제품.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서울경제]

전기차와 리튬 배터리 화재가 잇따르면서 판매사들의 허위·과장 광고가 심각해지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전기차 전용 소화기라고 광고하거나 가정용 소화기를 자동차용이라고 잘못 소개하면서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10일 서울경제신문이 인터넷 포털 네이버 쇼핑에서 ‘전기차 전용 소화기’를 검색한 결과 관련 용품을 포함해 295건(판매 플랫폼이 다른 동일 제품 포함)이 검색됐다. 이 중 117건은 올해 7월 이후 등록됐다. 올 6월 경기 화성 아리셀 전지 공장 화재, 8월 인천 청라 아파트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여파로 제품 40%는 최근 두 달여 만에 새로 추가됐다.

제조사들은 자사 제품이 전기차 전용이라고 홍보하지만 이는 허위 사실이다. 전기차 전용 소화기는 국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전기차 리튬 배터리는 단단한 케이스에 싸여 분말 가루가 닿을 수 없으므로 내부 열 폭주로 화재가 발생하면 물을 뿌리거나 수조에 차량을 담가 열이 식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소화기 분말 가루로 불을 끄려면 추가 폭발을 감수하고 배터리에 구멍을 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속화재형 형식승인을 받은 소화기를 전기차 전용으로 홍보하는 것도 허위에 해당한다. 소화기 등급은 일반화재용(A), 유류화재용(B), 전기화재용(C), 주방화재용(K), 금속화재용(D)으로 나뉘는데 D급은 전기차 화재용이 아니라 마그네슘 합금 등 가연성 금속 화재에 쓰는 소화기다. 금속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전기차 리튬 배터리 화재 시 대량의 물을 이용한 냉각 소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리튬 배터리 화재에 적응성 있는 소화기는 없기 때문에 전용 배터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소방시설법상 형식승인을 안 받은 소화기를 판매해서는 안 되고 형식승인 규정을 피하기 위해 소화기 대신 소화장치라는 표현을 썼더라도 일반인이 소화기로 생각할 수 있다면 불법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피해 사례. 네이버 쇼핑 캡처

형식승인 여부를 밝히지 않는 제품도 많다. 소화기는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 시행령에서 정한 소방용품으로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으로부터 형식승인 및 제품 검사를 받고 합격 표시가 있어야만 유통이 가능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광고도 상당하다. T제조사의 경우 자사 제품을 전기차 전용이라고 소개했지만 상품 상세 설명에서는 가정용 겸용이라고 표기돼 있다. 자동차 겸용 표시가 없는 일반 분말소화기와 에어로졸식(스프레이형) 소화용구는 적법한 차량용 소화기가 아닌데도 이를 전기차 전용으로 소개하는 사례도 있다.

정부는 지난주 전기차 화재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이날 전지 공장 화재 재발방지 대책도 내놓았다. 아리셀 화재를 계기로 리튬전지를 법적 특수가연물로 지정해 특별관리하고 화재 위험도가 높은 전지 공장을 최우선으로 중점 관리 대상으로 지정한다는 내용이다. 발화점이 높은 전고체 전지 기술, 분리막 손상 단락을 방지하는 첨가제 기술, 금수성 물질 화재에 적응성이 높은 소화약제·소화기기 개발도 추진한다. D급 소화기 시험 기준을 마련하고 전동킥보드 등에 사용되는 소규모 리튬전지 화재에 대한 소화 성능 인증기준도 도입한다. 또 모든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작업장 배치 전 기초 안전보건교육 이수를 의무화한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전기차 화재 공포 마케팅이 도를 넘는 상황임에도 소비자 피해 예방책은 감감무소식이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전기차 소유주나 아파트 단지, 공공기관에서는 전기차 전용 소화기로 잘못 알고 제품을 구매했다는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소방 당국이 각 지방자치단체에 ‘전기차 전용 소화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D급 소화기는 전기차 소화제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보냈지만 여전히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가고 있다.

특히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올 12월부터 5인승 이상 차량 내 차량용 소화기 비치 의무화가 시행될 예정이어서 피해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올 8월부터 소방청 미인증 소화기 실태 조사에 돌입했지만 인력 한계 등으로 10월~11월께야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김창영 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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