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현명하지 못한 처신”

강필희 기자 2024. 9. 1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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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의 만기 출소를 앞두고 그의 사회 복귀를 막아 달라는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을 달궜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 법률상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영부인이 명품백을 덥썩 받는 행위는 '현명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몰염치와 몰지각의 결과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처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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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의 만기 출소를 앞두고 그의 사회 복귀를 막아 달라는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을 달궜다. 무기징역도 가능한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주취 감형으로 12년형이 선고될 때부터 사법부에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당시 법으로는 음주가 감형 사유로 버젓이 작동했고, 출소를 막을 방법은 지금도 없다. 이태원 참사 역시 참혹한 결과에 비해 책임자 처벌이 약해 논란을 빚었다. 국민적 공분과는 별개로 구청 소방 경찰에 법적 책임을 묻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사실만 굳어졌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은 사법적 잣대와 국민 법감정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검찰에 이어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회도 김 여사에게 적용된 청탁금지법, 뇌물수수, 알선수재, 변호사법, 직권남용, 증거인멸 등 6개 혐의에 불기소 결론을 내렸다. 모 인터넷 매체가 지난해 12월 대통령 부부를 고발한 지 9개월 만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 법률상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가 자서전에서 묘사한 백악관 생활 중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이라는 건물을 무료로 사용하지만 거기서 먹고 자고 입는데 쓰는 비용 일체를 자비로 부담한다는 사실이다. 직원이 월 단위로 계산해 대통령 부부에게 청구한다. 어느 날 오바마가 식사 메뉴로 스시를 부탁했는데, 미슐랭급인 백악관 셰프가 해외에서 공수한 재료로 만든 한끼 가격이 엄청났다. 미셸 오바마는 남편에게 “앞으로 제발 이런 거 저런 거 먹고 싶다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김 여사의 명품백 사건 때문에 2년 가까이 온 나라가 혼란스럽다.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의 함정이라 해도, 몰래카메라 장면은 빙산의 일각일 뿐 음지에서 얼마나 많은 거래가 오갈까 상상하게 만든다. 게다가 현행법으로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니 국민은 더 분노한다. 근거가 없으면 법을 바꾸고 대통령 배우자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하지만 속도가 느리다. 대통령이 주변을 제어 못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숱하게 봤다. 영부인이 명품백을 덥썩 받는 행위는 ‘현명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몰염치와 몰지각의 결과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처신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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