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진해 장옥 거리를 아시는지요
벚꽃이 아름다운 도시 진해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나가야’란 일본식 지명은 친숙한 이름이었습니다. 진해에서 1960, 70년대 ‘하동’(夏童)이었던 사람들에게 나가야는 바다 이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진해의 대표적인 민간 항인 속천항에서 오른쪽으로 멀리 거제로 이어지던 바닷가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나가야는 여름철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 오글오글 모여 수영을 하던 바다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모여 여름을 나던 아이들에게 나가야는 다소 위험한 바다였습니다. 바다 밑바닥은 바위 천지였고, 그 바위들에는 굴 껍데기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발과 발바닥에 상처를 자주 입었습니다. 저 역시 그곳에서 상처를 많이 얻었습니다. 그래서 나가야란 이름에서는 굴 껍데기의 날카로움이 묻어났습니다. 그래서 나가야는 꺼려지고 공포감이 먼저 찾아오던 무섭기만 했던 바다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일본말을 귀동냥 눈동냥 하다 나가야가 일본풍 건축의 한 형태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결국 우리가 알던 나가야는 그런 지명을 가진 동네에 있는 바닷가였던 것입니다. 나가야는 ‘장옥’(長屋)이란 일본식 연립 주택 또는 다세대 주택의 이름이었습니다. 아직도 일제강점기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진해에는 나가야, 장옥이란 형태의 건축물이 남아 옛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가야 양식은 여러 가구가 지붕으로 나란히 이어져 있고 외벽을 공유하는 건물입니다. 굳이 우리 건축물에 비유하자면 맞배지붕의 건물에 그 아래 여러 채의 공간이 다닥다닥 이어져 있는 형태의 구조인 셈입니다. 나가야는 각각에 출입문이 있는 형식의 주택을 말합니다. 출입문이 하나밖에 없어 여러 가구가 공유하는 경우는 나가야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가야가 진해에만 남아 전하는 건축 형태는 아닙니다. 일제강점기가 휩쓸고 간 우리나라 어느 도시에든 어김없이 나가야의 흔적이 상처처럼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해방 후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나가야는 친숙한 건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건물들은 낡고 남루해져 버렸지만 진해에선 원도심 재생 사업을 하며 나가야를 다양하게 복원시켰습니다.
알고 보면 형식은 일본식이지만 한국인이 건축에 참여했고, 그곳에서 살았고, 지금도 관리하고 있다면 우리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선 옛 진해시청 앞에 장옥이 많았습니다. 1980년대 그 부근에 진해 예총 사무실이 있었는데, 지금도 건물만 남아 전하는 장옥 2층에 예총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진해 장옥 거리가 문화예술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황해당인판사가 있는 자리에 대표적인 장옥이 모여있습니다. 모든 장옥이 2층으로 이뤄져 있고, 2층으로 가기 위해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조심조심 올라갔다가 아슬아슬하게 내려오는 계단입니다. 입구가 작아 보이지만 들어가 보면 세로로 긴 형태의 공간이 꽤 넓습니다.
장옥거리 인근에 진해의 대표적인 8거리가 있습니다. 그곳엔 비슷한 시절 만들어진, 지금은 진해우체국 건물이 있습니다. 1912년 10월 25일에 준공된 것으로 알려진 이 건물은 러시아풍 단층 목조건물입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사적으로 지정돼 보호받는 우리나라 우체국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이런 원도심에 진해를 대표하는 예술촌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진해가 창원특례시의 진해구로 ‘전락’하고, 독자적인 사업 권한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뜻있는 예술가들이 장옥거리로, 그 부근으로 모여들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공간에 ‘장옥 아트 플레이스’가 있습니다.
행정의 사각지대지만 그 공간이 소중한 것은 예술과 문화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시를 쓰기 위해 가끔 장옥 거리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진해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장옥거리를 중심으로 새롭게 꽃피길 바랄 뿐입니다. 저 역시 진해 출신의 시인이기에.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