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민만 바라본다’면서 혼란 키우는 복지부
“군의관과 공보의 250명을 파견하면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일부 어려움은 있어도 극복해낼 수 있습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굳게 믿었다. 전공의 1만명이 떠난 빈자리를 메우지는 못하더라도, 응급실이 돌아가기만 한다면 군의관 카드는 제법 그럴싸하다고.
그러나 현실은 딴판이었다. 군의관을 파견한 첫날부터 의료현장 곳곳에서 파열음이 났다. 군의관들은 ‘환자에게 동의서를 받는 업무만 할 수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여도 중증 응급 환자 보는 건 부담된다’ ‘다른 부서에 배치해달라’고 했다. 심지어 응급실에 파견될 것이라는 안내를 받지 못했다는 군의관도 있었다. 응급실이 돌아가기는커녕 더 ‘응급’ 상황이 돼버렸다.
결국 군의관들은 대부분 부대로 복귀하거나 병원에서 응급실이 아닌 중환자실을 비롯한 다른 부서로 다시 배치됐다. 복지부는 “의료기관이 판단해 응급실이 아닌 곳에 배치하는 경우, 그 자리에 있던 인력이 응급실에서 근무할 수 있기 때문에 군의관 파견은 의미가 있다”고 했지만, 정부가 응급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현장에 투입하는 데에만 급급해 혼란을 더 키웠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부처 간 엇박자도 논란을 키웠다. 복지부는 국방부와 함께 응급실 근무를 거부한 군의관들을 근무지 명령 위반으로 징계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국방부가 징계 요청을 받은 적도 징계 검토도 없었다고 반박하자 돌연 입장을 바꿔 2시간 만에 철회했다. 복지부는 “군인으로서 근무지 배치 명령을 받은 사람인 바,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따르도록 설득하겠다”고 물러섰다.
군의관들에게 어떤 업무를 어디까지 맡겨야 할지 별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않고, 모두 의료기관 판단에 맡기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군의관이 투입된 한 병원의 응급의학과 교수는 “군의관들 보낼 테니 알아서 필요한 데 데려다 쓰라는 격”이라며 “우리 재량에 맡긴다고 하면서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의료계는 군의관이 응급실에 도움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의대 졸업 후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은 군의관들과 의료 취약지를 돌며 일상적인 공중보건 업무를 담당해온 공중보건의들에게 응급실 업무를 맡기는 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응급 환자의 응급처치와 진단, 후속진료 과로 연결하는 것이 응급의학과의 일인데, 단 몇 시간의 사전교육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군의관들의 업무 배치의 혼선이 계속되자 국방부도 복지부에 가이드라인 마련을 요청했지만, 복지부는 아직 검토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9일 군의관·공보의 150명을 추가로 현장에 파견했다. 여전히 머릿 수 채우기에만 연연한 나머지 원칙을 잊고 혼란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 됐다. 지난 8일 충북 청주에서 탈장 증세를 보인 4개월 영아가 인근 응급실을 찾지 못해 무려 100㎞ 떨어진 서울삼성병원에서 수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4~18일 닷새간의 추석 연휴가 고비다. 명절 연휴 기간에는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평소보다 2배 이상 급증하는 만큼, 응급실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지금은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올까.
응급실의 혼란 사태를 끊어낼 방법은 대화밖에 없다. 이미 2025년도 수시 입시 전형이 시작된 지금, 여전히 내년도 증원 철회를 고수하고 있는 의료계도 정부와 강 대 강 싸움을 멈추고 일단 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 복지부는 내년도 정원 변경이 어렵다면 증원으로 발생할 부작용에 대비하고, 의료계가 요구하는 2026년도 증원 계획을 원점에서 논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직 국민만 바라보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겠다”면, 지금이라도 이 혼란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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