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재야생화의 길 …화석연료 의존 늘리는 한국 안타깝다”

정원식 기자 2024. 9. 1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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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리프킨 신작 <플래닛 아쿠아> 출간
민음사 제공

“가뭄과 홍수 등 기후위기에 따른 직격탄을 맞고 있는 한국이 낡은 기술에 의존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세계적인 경제·사회 사상가 제러미 리프킨은 지난 9일 신작 <플래닛 아쿠아>의 전 세계 동시 출간을 맞아 한국 언론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화석연료 발전에는 많은 비용이 드는 반면 태양광과 풍력은 무료”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 정부는 동해에서 새 석유·가스전 시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냉각수 부족으로 원전 이용이 축소·중단되는 추세인데도 해외 원전 수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기후대응을 위해 댐 14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리프킨은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한국 정부가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플래닛 아쿠아>에 따르면 인류는 지난 6000년 간 댐과 저수지, 제방과 둑, 운하 등을 건설해 물을 격리하고 사유화하고 상품화함으로써 화석연료에 기반한 ‘도시 수력 문명’을 구축했다. 인류의 모든 사회경제 시스템과 거버넌스 시스템은 이 같은 수자원 인프라 위에 건축돼 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에 따라 이 같은 인프라가 송두리째 붕괴하고 있다.

“인류는 자본주의, 산업화, 사회주의 시스템을 구축하며 진보의 시대를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대기에 방출된 엄청난 온실가스로 인해 유례 없는 기상 이변을 겪고 있습니다. 눈이 한번도 오지 않았던 지역에 눈이 오고 홍수가 전 세계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산불로 대기가 주황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리프킨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만든 지 200년이 지나면서 지구는 재야생화의 길을 가고 있다”면서 과거처럼 물을 길들여 이 같은 추세를 역전시킬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지난 6000년 동안 물을 길들일 수 있다는 오만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곳곳에 지은 댐과 저수지 같은 인프라가 실시간으로 붕괴하고 있죠. 불과 25년쯤 뒤인 2050년 무렵에는 전 세계 수력발전 댐의 61%가 가뭄이나 홍수, 혹은 둘 모두에 취약한 상태에 처하게 될 겁니다. 수권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으며 우리가 수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합니다. 우리는 지금 잠들어 있어요. 깨어나야 합니다.”

리프킨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수십억 명의 인류가 기후 위험 지역에서 기후 안전 지역으로 탈출하면서 신유목 시대가 도래하고 임시도시가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14년 동안 기후 이상으로 인해 강제 이주한 사람들이 연평균 2100만명에 이른다. 2050년이 되면 기후 난민의 숫자는 12억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들이 중위도 아열대에서 북극이나 캐나다, 러시아로 이동하면서 이동 과정에서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팝업 도시가 나타날 겁니다. 해체와 재조립이 가능한 도시죠. 기후 난민이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도록 글로벌 기후 여권을 발급하자는 논의도 진행 중입니다. 중동과 중앙아메리카 일부 정부는 붕괴할 겁니다.”

대규모 기후 난민과 임시도시의 출현은 주권 국가의 쇠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고정된 국경을 방비한다는 전제 하에 구축된 지정학적 안보 개념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경제에 대한 관념도 “소유에서 접근으로, 수직적 경제에서 수평적 경제로, 중앙집권적 가치사슬에서 분산된 가치사슬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리프킨은 또 인구가 농촌에서 도시로 쏠리는 움직임이 역전되면서 대도시 생활도 종말을 맞을 것으로 예측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전환 과정이 기존 주권 국가들 간 분쟁이나 국가 내 갈등 없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느냐다. 리프킨은 “활동가로서 나는 미래를 낙관한다”고 말했다.

“80만년 전에 출현한 원시 인류 호미니드는 수차례에 걸친 극단적 기후변화에도 살아남았어요. 인간은 지구상에서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적응력이 가장 뛰어난 종입니다. 전두엽이 발달한 뇌가 있고 다음 세대에 지식을 전수할 능력도 있습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인류의 DNA에는 공감 능력이 새겨져 있습니다. 호주에서 산불이 일어났을 때 화상 입은 코알라의 사진에 전 세계가 슬퍼했던 일을 기억하나요. 인간만이 지닌 공감 능력을 확장해야 할 때입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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