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펀드 우선 판매… 신의성실 의무 어긴 은행·증권사
투자자에 고보수 저수익 상품 권유
"채권형서 수익 극대화" 목소리도
은행과 증권사 등이 운용보수가 높고 수익률이 나빠도 계열사 펀드를 우선 판매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 신의성실의무를 지키지 않고 판매사가 받는 판매수수료를 낮추면서까지 계열 자산운용사의 펀드 판매 비중을 높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특히 일반 투자자가 주로 거래하는 '주식형 펀드'에서만 계열사 펀드의 보수가 더 높았다. 판매사를 포함해 기관 투자자들이 주로 참여하는 '채권형 펀드'에서는 계열사 펀드의 보수가 더 낮았다. 자신들의 성과에 반영되는 채권에서는 총보수를 낮춰 투자하는 반면, 개인 투자자에게는 보수가 더 높은 계열사 펀드를 판매해 이익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금융투자협회 펀드공시에 따르면 KB와 신한, 하나, 미래에셋 계열 펀드판매사(은행·증권·보험)가 판매한 계열 자산운용사 주식형 펀드의 총보수가 비계열사 상품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 보수는 투자자가 판매사나 운용사로부터 받는 각종 서비스의 대가로 지불하는 비용이다. 가입과 해지시 지불하는 일회성 판매수수료와 달리 운용자금에 비례해 매일 계산된다. 즉 펀드 운용자금이 늘어날수록 판매사와 운용사 모두 이득을 보는 구조다.
국민은행이 판매한 계열사 KB자산운용 펀드의 평균 총 보수는 1.4606%로 비계열사 펀드 1.4046%보다 높았다. KB국민은행뿐 아니라 계열사인 KB증권도 계열사 펀드의 보수가 비계열사보다 0.06%포인트(p) 더 높았고, KB손해보험도 계열사 펀드 보수가 0.02%p 더 많았다.
교보증권과 BNK투자증권, iM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들의 계열사 펀드판매 총 보수가 비계열사보다 절반 가까이 낮은 것과 비교된다.
신한은행과 신한투자증권도 계열사인 신한자산운용 펀드상품 판매 보수가 비계열사 상품보다 높았다. 두 곳 모두 계열사와 비계열사 평균 보수가 0.1%p 가까이 차이났다. 하나은행과 하나증권 역시 비계열사보다 계열사 상품의 보수가 더 높게 책정됐다.
미래에셋이 계열사와 비계열사간 보수 격차가 가장 컸다. 미래에셋생명이 판매한 미래에셋자산운용 상품의 평균 보수는 1.5718%로 비계열사(1.3843%)와 0.2%p가까이 차이났고, 미래에셋증권 역시 계열사 상품 보수가 0.1%p 더 비쌌다.
신한은행, 미래에셋증권 등은 6월 말 기준 계열사 펀드 판매 상한 비중인 25%를 모두 채우거나 넘긴 상태다. KB국민은행은 23%로 상한을 대부분 채웠다. 계열사 펀드 '밀어주기'를 막기 위해 상한을 설정해 놓자 보수가 높은 상품 위주로 판매, 이익을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나은행과 KB증권 등은 계열사 펀드의 판매 수수료를 비계열사 보다 낮게 설정해 운용보수가 더 비싼 계열사 상품 선택을 유도하기도 했다. 하나은행의 계열사 펀드 판매수수료는 0.64%, 비계열사는 0.80%였다. KB증권도 계열사 펀드의 판매수수료를 0.3%p 낮게 설정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산운용사가 계열사와 비계열사간 보수를 다르게 책정하지 않는다"며 "판매회사가 판매한 계열사 펀드의 총보수가 더 높다는 것은 보수가 비싼 상품을 투자자에게 더 많이 권했거나, 직접 선택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판매회사는 투자자에게 상품을 추천하거나 투자자의 자금으로 상품을 선택할 때 투자자의 수익을 우선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운용보수가 더 비싼 계열사 상품을 추천하면서 수익률까지 확보하지 못해 계열사 상품을 밀어주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KB국민은행이 판매한 계열사 펀드 가운데 최근 1년간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상품은 전체의 31% 수준에 달했다. 반면 비계열사 상품에서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상품 비중은 18%에 그쳤다.
신한투자증권은 판매한 계열사 상품 가운데 절반 이상(52.8%)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비계열사 판매 상품의 마이너스 수익률 비중이 26% 수준에 불과한 것과 비교된다. 수익률은 더 떨어지고, 운용보수는 비싼데도 계열사인 신한자산운용의 펀드 상품을 판매하거나 사준 것이다.
하나은행과 KB증권, 하나증권, 미래에셋생명 등도 운용보수가 더 비싼 계열사 상품의 수익률이 비계열사 상품보다 낮게 나왔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수익률과 보수가 비슷한 계열사 상품을 추천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수익률은 떨어지고, 보수는 비싼 상품을 투자자에게 추천했다면 판매회사가 신의성실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판매회사가 자기 자본을 직접 투자하는 비중이 높은 채권형 상품에서는 계열사 상품의 보수가 더 낮게 나온다는 것은 일반 투자자에게서 얻는 이득을 높여 해당 계열사의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미 아니겠냐"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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