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마이크’ 낀 시도지사들 ‘균형발전’ 한목소리
13개 단체장 참가.. 인구감소, 소멸극복 정책 제안
청년유출, 저출생, 인구감소 등 소멸 위기에 직면한 전국 시도의 단체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균형발전’을 역설했다.
17개 광역시도 단체장들의 모임인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10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대한민국의 미래, 지역에서 답을 찾다’를 주제로 ‘2024 시도지사 정책콘퍼런스’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김동연 경기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김진태 강원지사, 홍준표 대구시장, 최민호 세종시장을 제외한 12개 시도지사가 참석했다. 6개 방송사 중계로 진행된 이날 정책 콘퍼런스는 기업설명회장을 방불케 했다. ‘스티브 잡스’처럼 마이크를 차고 무대에 오른 시도지사들은 전 국민을 상대로 현장에서 검증된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고, 중앙정부에 정책을 제안했다.
기조세션에선 박형준 시도지사협의회장(부산시장)이 먼저 무대에 올랐다. ‘균형발전과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박 회장은 “지역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 ‘우는 소리’라고 하고, 그러다 보니 지방의 문제를 대한민국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떡 나누듯 하는 정책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도지사 정책 콘퍼런스는 미국 주지사들의 모임인 전미주지사협의회(NGA) 연례총회를 벤치마킹한 것. NGA는 50개 주와 2개 자치주, 3개 준주 등 55개 지방정부로 구성된 단체로, 연방정부를 상대로 주정부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1908년 설립됐다. 한국의 시도지사협의회와 유사하다.
지방인재 유출이 지방 소멸을 부르고 지방에서 이탈한 인구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 수도권 출산율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인구 감소로 귀결되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첫 번째 세션에선 인구 유출 방지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제시됐다.
“지역 소멸 위기 극복에 일자리만 한 게 없다”고 밝힌 김관영 전북지사는 기업 양성론을 펼쳤다. 그는 “도 공무원과 지역 기업을 1 대 1로 연결, 기업 전담제를 실시했는데 반응이 좋아 현재 2,800명의 공무원이 2,800개의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며 “덕분에 최근 2년 동안 투자 유치 금액이 13조 원에 이르게 됐다”고 소개했다. 이전 10년 동안 전북도가 유치한 투자액은 15조 원 수준이다.
지역 기업 양성 관점에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대한 울산의 지지가 눈길을 끌었다. 발전소 지역의 전기요금을 더 싸게 하는, 차등 전기요금제의 근거가 되는 법안이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꽃, 꿀 많은 곳에 나비와 벌이 몰려들 듯이, 전기료 싼 곳을 찾아 기업이 지방으로 몰려올 것”이라며 “고급 일자리를 찾아 청년들이 돌아오고, 인구 유출도 지역 소멸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보수정당(국민의힘) 소속임에도 전향적으로 '동거혼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김 지사는 “충남에서 아이를 낳으면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을 지기로 했지만, 미혼 남녀 10명 중 4명은 아이 낳을 생각이 없다는 게 현실”이라며 “결혼은 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도록 프랑스처럼 동거혼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한국도 비혼 출산이 있긴 하지만 4% 수준이고, 김 지사가 언급한 프랑스의 비혼 출산율은 62.2%다.
인구 감소 대응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세션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대에 먼저 올랐다. 오 시장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양분되다시피 한 대한민국을 수도권과 충청권 호남권 영남권 4개의 강소국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오 시장은 “인구 500만~600만 도시 국가들의 경쟁력을 봤더니 공통적으로 개성 있는 발전 전략이 있었다”며 “지방에 복지, 재정 등의 권한을 완전히 이양하고, 4개의 광역 경제권이 경쟁하도록 해 경쟁력을 키워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경제를 주제로 한 세 번째 세션에선 강기정 광주시장이 “광주하면 머리띠 매고 데모하는 도시, 강한 도시를 떠올리는데, 그것은 허구”라고 말문을 열었다. 강 시장은 “80년 민주화 운동했고, 정의를 위해 싸워 자랑스러운 도시인 것은 맞지만, 그러다 보니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는데, 이제는 시민 삶을 혁명할 차례”라며 국가산업단지 유치, 인공지능(AI) 실증 밸리 등 추진 사업을 소개했다.
정장 차림의 다른 단체장들과 달리 파란 리넨 셔츠 차림으로 마이크를 잡은 이철우 경북지사는 “세계가 우러러보는 한국이지만, 정작 우리는 헬조선, 1위 자살률 등 나쁜 것으로 가득하다”며 “중앙집권이 너무 강하다 보니 이제 한계가 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지사는 이 같은 대한민국이 변하기 위해선 공무원이 바뀌어야 하고, 특히 중앙 공직자들의 인식 전환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행사는 중앙의 시각에서 지방을 보는 것이 아닌, 지방의 시각에서 중앙을 이야기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행사를 지켜본 행안부 관계자는 “저출생, 지방소멸에 대한 시도지사님들의 치열한 고민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서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며 “국정의 동반자로서, 오늘 나온 내용들을 중심으로 중앙과 지방이 협력해 해법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마친 시도지사들은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전국 시·도지사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내년에 또다시 정책 콘퍼런스에 나서기로 했다. 이날 행사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무라이 요시히로 일본전국지사회 회장(미야기현 지사), 재레드 폴리스 전미주지사협회(NGA) 회장(콜로라도 주지사)이 축사를 했다.
시도협 관계자는 “제2의 국무회의로 불리는 중앙지방협력회의체가 있고, 지금까지 일곱 차례나 열렸지만, 어디까지나 ‘중앙정부의 플랫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며 “그런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리를 따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김민순 기자 s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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