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폭군’ 차승원
- 박훈정 감독 ‘마녀’의 스핀오프
- 은퇴한 국정원 요원 ‘임상’ 맡아
- 2대8 가르마에 뿔테안경·바바리
- 고문하면서 극존칭 쓰는 기괴함
- 고난도 액션도 대역없이 소화해
- “긴장 속에서도 위트 살리려 노력”
‘변화무쌍’, 차승원을 보고 있으면 바로 이 단어가 떠오른다. 최근에만 해도 영화 ‘독전’ 시리즈, ‘낙원의 밤’ ‘싱크홀’, 드라마 ‘어느 날’ ‘우리들의 블루스’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그리고 ‘낙원의 밤’의 박훈정 감독과 다시 만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군’에서는 독보적인 킬러로 변신해 “역시 차승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박 감독이 이전에 연출한 ‘마녀’의 스핀오프라 할 수 있는 ‘폭군’은 초인 병기를 육성하는 폭군 프로그램의 마지막 샘플이 배달 사고로 사라진 후 각기 다른 목적으로 샘플을 차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쫓고 쫓기게 되는 추격 액션 스릴러 드라마다. 차승원은 은퇴한 국정원 요원이자 폭군 프로그램에 관련된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청소부, 임상 역을 맡았다.
그는 폭군 프로젝트 설계자인 최 국장 역의 김선호, 폭군 프로젝트를 폐기하고 샘플만 뺏으려는 추격자 폴 역의 김강우, 샘플 탈취를 의뢰받은 기술자 자경 역의 신예 조윤수와 호흡을 맞췄다. 이들은 러닝타임 내내 총 칼 도끼에 맨몸 격투까지 각 인물의 상황과 능력에 따라 다채롭게 액션을 펼치며 눈길을 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나 차승원은 ‘폭군’에서 “일상적이면서 비일상적이고, 수줍음이 있고 소극적이지만 다분히 폭력적이고, 노쇠한데 민첩한 임상의 극단적 양면성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에게서 ‘폭군’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오는 20일 첫 방송하는 유해진과 함께하는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라이트’에 대해 들었다.
▮차승원이 만든 킬러 ‘임상’
‘폭군’에서 차승원‘은 “저는 말이에요, 두 번 말하는 거 정말 싫어합니다” “이제 그만 죽어주시죠” 같은 대사를 예의 바른 듯하지만 굉장히 위협적인 말투로 소화하며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투에서부터 서늘함과 엉뚱함을 오가는 독특한 개성의 킬러 연기는 차승원이 직접 임상 역을 지목했기에 가능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박 감독님이 거의 시나리오 마무리 단계인데 장소만 알려주면 나오자마자 드리겠다고 하더라. 만나서 받고 읽었더니 ‘어떤 역할이 좋으세요?’라고 묻더라. 임상 역을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 국장 역은 자신보다 젊고 스마트한 배우가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고. “ 그거 하라고 저한테 준 거 아니에요?”라는 차승원의 말에 박 감독은 “네 맞아요”라며 맞장구쳤다. 차승원이 임상 역을 원했던 이유는 어떤 이미지 때문이다.
“임상의 독특한 행적들이 이해가 됐다. 한 조직에 오래 소속돼 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 어떻게 될지 생각했다. 막 질주하는 기차였다가 임상이 살고 있는 한 량의 기차처럼 벌판에 딱 놓인 모습을 상상해 보니 매력이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인물이기에 차승원의 아이디어가 많이 채택됐다. 2 대 8 가르마나 뿔테안경, 고지식해 보이는 복장 등이다. “지문에는 ‘다소 느끼해 보이는 헤어스타일’로 나왔다. 좀 과장된 것 같지만 2 대 8 가르마로 갔다. 안경은 제가 써보자고 했다. 초반에 기자를 사칭하니까 안경과 어울릴 것 같았다. 실은 노안이 와서 집에 돋보기안경이 6~7개 있기도 하고.(웃음) 안경, 구식 폴더폰, 바바리코트, 구식 재규어 자동차 등과 같은 소품은 임상을 대변한다.”
임상이 쓰는 극존칭 존댓말을 비롯해 차승원의 애드리브도 ‘폭군’에서 빛난다. “임상이 존댓말을 하는 것은 원래 시나리오에도 있었는데, 그것을 ‘그랬어요’가 아니라 ‘진짜 그러셨어요’라고 극존칭으로 바꿨다. 예를 들면 고문할 때 극존칭을 쓰니 더 기괴하면서 강압적으로 보인다.” 임상이 고등학생들한테 끌려갈 때 ‘다시 한번 고려해 보시죠. 아휴 그렇게 기분 나쁘시면 안 되시는데’라고 애드리브로 극존칭을 쓰는데,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암시하며 묘한 긴장감과 웃음을 유발한다.
이런 부분은 차승원이 가진 웃음, 유머에 대한 연기관과 관련 있다. 그는 위트는 캐릭터를 되게 풍성하게 만드는 하나의 장치라 믿는다. “어떤 장르, 어떤 인물을 연기하더라도 위트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인물이 굉장히 심각한 상황에 있더라도 관객이 이 사람을 볼 때 배시시 웃으며 허물어지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긴장감이 사라지면 안 되기 때문에 텐션과 위트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한 요소다. 특히 임상 캐릭터는 이중적인 얼굴, 이중적인 몸놀림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대역 없는 액션
인상적인 액션 장면이 넘쳐나는 ‘폭군’ 속에서 차승원은 근접 거리에서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레밍턴(산탄총)을 주무기로 깔끔하면서도 화끈한 액션을 펼쳤다. 고난도 액션을 포함해 대부분 대역 없이 해냈다. “아무래도 대역은 티가 나서 될 수 있으면 제가 직접 하려 한다. 그런데 이번에 산탄총이 너무 무거워서 쏘는 장면을 촬영하고 나면 무리가 왔다.” 산탄총 액션 덕분에 지금도 팔꿈치가 좋지 않다는 차승원이지만 앞으로도 직접 액션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전했다.
“톰 크루즈 배우님을 보면 나이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배우는 주어지면 해야 하는 직업이지 않나. 액션 제안이 오면 할 수 있도록 신체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폭군’의 액션에선 차승원과 조윤수가 1 대 1로 맞붙는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조윤수가 액션 경험이 적은 신인 여배우라는 점에서 베테랑인 차승원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대본 리딩을 할 때 이 친구가 난도 있는 액션을 하기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미 ‘마녀’에서 박 감독이 신인 여배우 액션을 해봤으니까 계획이 있겠거니 했지만 난관을 헤쳐 나갈 조윤수를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실제 조윤수는 촬영 전 3개월간 간단한 동작으로도 스타일리시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자세 교정부터 순간적으로 파워풀한 에너지를 내기 위한 체력 훈련, 여러 인물과의 리얼한 액션 합을 위한 반복 협동 훈련까지 고강도 트레이닝을 거쳤다. 차승원은 후배 칭찬을 잊지 않았다.
“문득 ‘내가 저 나이였으면 이런 걸 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조윤수의 첫 촬영이 영하 10도인 겨울에 물에 젖어 있어야 하는 장면이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또 박 감독님이 녹록지 않은 사람이어서 무조건 자기 목표치대로 나와야 했다. 이런 것이 그 친구에게 어떤 자양분이 될지 모르겠지만, 큰 회오리 같은 게 지나가면 더 단단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유해진과 함께 ‘삼시세끼 라이트’
차승원에게는 ‘차줌마’라는 별명이 있다. 절친 유해진과 함께 출연한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서 각종 음식을 쉽게 해내며 군침이 돌게 해 붙은 별명이다. “한 달 전부터 저를 보고 ‘잘 보고 있어요’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저는 ‘지금 출연한 작품이 없는데 뭘 잘 보고 있지?’라고 생각했다. 알고 봤더니 이전의 ‘삼시세끼’ 시리즈가 하루 종일 나온다는 거다. 새 시리즈가 나오기 전에 이전 시리즈를 재방송하는 거였다. 저에게는 정말 감사한 일이다.”
오는 20일 새로운 ‘삼시세끼 라이트’가 첫 방송한다. 이번에도 유해진과 함께 출연한다. “유해진 씨와 저는 취향이나 식습관, 루틴이 다 다르다. 같은 거 하나를 굳이 꼽자면 배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공간에 있으면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자기 같은 게 흐르는 것 같다. 그 보이지 않는 N극과 S극이 어떤 파장을 일으켜 계속 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둘이 만날 때의 궁금함이 채널을 고정하게 만드는 힘이 아닌가 싶다.”
한편 ‘삼시세끼 라이트’의 첫 번째 게스트로 임영웅이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 예능에 잘 출연하지 않는 임영웅이기도 하고, 세 명의 조합이 낯설어 어떤 케미를 보여줄지 더욱 기대된다. “임영웅 그 친구. 참 좋았다. 잘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많이 가진 친구더라. 엄청 담백하고. 보통 예능에 나오는 게스트는 두 부류다. 와서 정신 못 차리다가 끝나고 나서야 ‘내가 실수했구나’ 하는 친구, 아니면 와서 과도하게 열심히 하려는 친구. 그런데 임영웅은 뭔가 하려고도, 하지 않으려고도 안 하고 담백하게 있더라. 그래서 저와 유해진 씨가 처음 임영웅 씨를 보고 ‘와 임영웅이다’고 했는데, 10분이 지나서는 잊게 됐다. 진짜 잘 있다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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