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 아너’ 김명민, 아버지의 이름으로[스경X인터뷰]
배우 김명민은 “‘메소드 연기’에서 멀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실제상황이 ‘메소드 연기’와 멀어지지 못하게 했다. 1회부터 아들의 사망을 목격하는 아버지. 그 역시 이제 갓 20살의 아들을 둔 아버지였다. 배우 신예찬이 연기한 아들 김상현의 출생연도 역시 2004년 4월 김명민의 아들과 같다.
2021년 JTBC 드라마 ‘로스쿨’에 출연했던 김명민은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유어 아너’를 통해 3년 만에 안방에 복귀했다. 그는 극 중 배경이 되는 우원시의 모든 권력을 움켜쥔 우원그룹의 회장 김강헌을 연기했다. 선대부터 이어지던 ‘조폭출신’이라는 꼬리표, 그는 큰 사업을 위해 자신을 양지로 끌어올렸고 교도소도 다녀왔다. 하지만 출소 직전 사고가 난다.
“손현주 형님의 캐스팅 소식을 들었어요. 거기에다 표민수 감독님이 참여하신다고 하시더군요. 대본을 안 봐도 하고 싶었어요. (손)현주 형님은 언젠가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존경하는 형님이었거든요. 정말 연기를 함께해보니 왜 ‘대배우 손현주’였는지를 알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김강헌 캐릭터는 배우 손현주를 찍어 눌러야 하는 배역이었기에 이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었습니다.”
극은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그 범인을 비정하게 추격하는 이야기이자, 역시 사고로 아들이 사람을 죽인 아버지가 그 아들에게 올 복수를 막기 위해 비정하게 도망치는 이야기다. 김강헌은 영화 ‘대부’의 캐릭터들에서 모티프를 땄다. ‘대부’의 말론 브란도와 알파치노의 중간 정도의 느낌을 잡고 고전적인 느낌의 줄무늬 정장을 골랐다. 살도 6㎏ 정도 찌웠는데 밤에 1000㎉를 섭취하는 고칼로리 식단을 이어갔다.
“사실 제 연기에 대해 ‘메소드 연기’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 의견을 이제는 좀 떨어뜨리고 싶어요. 주변에서 ‘힘들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군요. 요즘은 쉽게 쉽게 연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더라고요. 저 나름에는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래서 정서는 어려웠지만, 최대한 편하게 풀어보려고 애썼어요. 촬영장에서도 화기애애했고요.”
드라마는 크리에이터를 맡았던 표민수 감독의 활약으로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합류했다. 김명민은 그러한 상황에 대해 “올림픽에 대표선수로 나간 느낌”이라고 기억했다. 선배인 손현주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10개 정도는 딴 베테랑 금메달리스트라면 송호영 역 김도훈이나 김상혁 역 허남준의 경우에는 청소년 시절부터 상을 석권한 신예의 느낌이 났다.
“(손)현주 형님은 모든 걸 받아주시는 분이었어요. 제가 ‘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치유해주시고, 피곤하고 힘들어도 해소되는 존재셨습니다. 아마 신인들도 마찬가지였어요. 호긱 있었죠. 현주 선배님이 앞에서 끌고 가시니까 이 친구들도 자세가 달랐어요. ‘돋보이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몫을 100%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이 크더라고요.”
그의 3년 공백에는 아들의 존재가 있었다. 사실 제작발표회 당시 아들과의 시간을 보냈다고 해 화제가 됐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말을 조금 더 보탰다. 골프선수로 활동했던 아들이 국가대표 상비군 정도의 실력까지 성장했지만 승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운동을 그만둘 생각을 했다. 결국 모든 공부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왔고, 김명민은 기꺼이 자신의 경력을 내려놓고 아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엄마의 지원으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생활을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둘만의 시간을 갖고,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리고 아이와 둘만 미국 로드트립을 떠나기도 했고요. 3박4일 잠 안 자고 게임하고, 로드트립을 하니까 피로로 대상포진이 생기더군요.(웃음)”
그렇게 노력한 3년은 비로소 ‘친구 같은 아버지’ ‘친구 같은 아들’이 된 디딤돌이 됐다. 1996년 SBS 공채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무명의 시간도 있었지만, 2004년 ‘불멸의 이순신’의 히트 이후에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바빴던 것도 사실이다. 꾸준히 하던 연기를 잠시 내려놓고, 온몸이 근질거리는 열망을 가진 것도 그에게는 큰 경험이었다.
“제가 작품을 고르는 키워드는 ‘작품성’입니다. 예전에는 작품을 보는 시각이 좁았어요. 캐릭터가 얼마나 멋있게 나올지에만 집중했지만, 지금은 작품이 좋아야 캐릭터도 돋보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작품의 느낌을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드니까 얼마나 힘든 장면이 있는지도 보는 것 같아요. 밤새 비 맞는다고 하면 고민이 됩니다.(웃음)”
‘유어 아너’는 ‘연기본좌’로 불리는 김명민이 3년을 재충전한 끝에 돌아온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고, 가족의 중요성을 확인한 작품을 끝낸 그는 본격적으로 앞을 내다보고 있다. 그의 활기찬 연기를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도 2024년은 충분히 뿌듯하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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