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양보없는 X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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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 2학년 때로 기억된다.
긴 글을 읽기 싫어했던 필자는 단편소설선집을 뒤적이다 아주 짧은 소설을 발견했다.
필자도 사소한 상황에서 가끔씩 그런 경우를 겪는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필자 쪽으로 넘어져도, 필자의 구두 뒤꿈치를 밟아도 필자를 쳐다보지조차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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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 2학년 때로 기억된다. 긴 글을 읽기 싫어했던 필자는 단편소설선집을 뒤적이다 아주 짧은 소설을 발견했다. 일제시대 소설가 김동인의 'X씨'였는데 단 2쪽이었다. 다 읽고서는 좀 황당했다.
지기 싫어하는 오만한 X씨는 남에게 절대로 길을 비켜 주지 않는데, 어느 날 자기보다 더 오만한 임자를 만나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소설의 표현을 빌리면 "그 어떤 사람은 코를 잔뜩 하늘로 쳐들고 '이 세상에 나밖에 사람이 어디 있어' 하는 듯이 뚜거덕 뚜거덕 걸어옵니다. X씨는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늘 목이 저절로 어깨로 수그러들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한 X씨는 유서를 쓰고 한강에 투신한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으랴 싶은데,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양보하지 않는 세태는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 사회에는 사과를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도 양보하지 않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 필자도 사소한 상황에서 가끔씩 그런 경우를 겪는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필자 쪽으로 넘어져도, 필자의 구두 뒤꿈치를 밟아도 필자를 쳐다보지조차 않는다. 한번은 초등학생과 아버지인 듯한 사람이 같이 지하철을 탔는데, 초등학생은 내 발을 밟고 얼른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아버지는 필자 쪽을 전혀 쳐다보지도 않았다.
물론 바쁜 현대 사회에, 특히나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장소에서 약간 스치거나 부딪혔다고 멈추어 미안하다고 할 여유가 있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로 인지할 정도의 충돌이라면 눈인사라도 해서 미안함을 표시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20년 전 미국 연수를 간 때가 떠오른다. 그때 미국 교포들이 해 준 조언 중에, 미국에서는 미안한 상황이 생겨도 절대 "I'm sorry"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작은 건이라도 소송을 잘 거는데, 소송의 근거가 "I'm sorry"가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웬걸. 좀 살아보니 이 사람들은 팔만 스쳐도 서로 상대에게 사과를 연발하였다.
자동차 운전 중 겪는 불쾌한 사례도 있다. 다른 도로에서 새로운 도로로 진입하는데 기존에 진행하던 많은 차들은 절대 끼워주지 않겠다는 기세로 달린다. 얌체처럼 중간에 새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램프에서 들어와 진입하려는 차량을 안 끼워 주겠다고 필자의 자동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는 더 빨리 운전해 가는 차들을 보면 너무하다 싶다. 함부로 끼어든다고 욕을 하는 운전자도 있다. 그런 중에 끼워주는 은혜로운 운전자도 있다. 이 양보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자 배려가 아닐까 싶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X씨 정도는 아니겠지만, 혹시 우리 사회 전반에, 남에게 틈을 보이면 안 되며, 남을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그래서 양보도 해서는 안 된다는 정신적 방어기제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이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손실은 얼마일까 등을 생각해 본다. 반면 다른 차가 끼어들 틈을 주고 기다려주는 운전자들도 있음을 볼 때, 언젠가는 서로에게 관대해지는 사회가 도래할 것임을 희망해 본다.
[이종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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