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명칼럼] 文 전 대통령이 검찰청에 가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4. 9. 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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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항공사 특혜취업 의혹' 사건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했다는 보도는 그리스 비극적인 메타포가 있다.

한국 전직 대통령, 그리고 대통령제의 운명이 그렇다.

문 전 대통령이 이번에 소환되면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검찰청에 간 '4연속 전직 대통령'이 된다.

전두환, 노태우를 포함하면 지난 44년간 대통령을 거쳐 간 8명 중 6명이 피의자가 되는 것이고 이 중 5명은 이미 형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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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연속 전직 대통령 피의자
권한 그대로, 권위는 해체된
'가분수 대통령제'의 업보
5연속, 6연속 기록 이어질 것

검찰이 '항공사 특혜취업 의혹' 사건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했다는 보도는 그리스 비극적인 메타포가 있다. '나는 그 운명으로부터 예외일 것'이라는 기대, 운명의 추포사로부터 도망치려는 기도는 번번이 무위에 그치고 있다. 한국 전직 대통령, 그리고 대통령제의 운명이 그렇다.

문 전 대통령이 이번에 소환되면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검찰청에 간 '4연속 전직 대통령'이 된다. 전두환, 노태우를 포함하면 지난 44년간 대통령을 거쳐 간 8명 중 6명이 피의자가 되는 것이고 이 중 5명은 이미 형을 살았다. 예외인 김영삼, 김대중은 아들들이 감옥에 갔다. 풍수가 됐든, '공간 정치학'에 대한 신념이든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를 버린 것은 이 비극의 연쇄 고리를 끊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임기 달력은 벌써 퇴임 후 경호를 준비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용산 시스템'은 한국 대통령의 운명을 바꿔놓는 데 성공하고 있는가. 그리스 비극에서 운명을 바꾸려는 인간의 기도는 대부분 해프닝으로 끝난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었든 용산을 버리고 청와대로 돌아가리란 예감이 든다.

문 전 대통령은 기소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를 '정치보복'이라 하고 반대 진영은 '만시지탄'의 한숨을 쉰다. 당파를 초월해 대다수 한국인은 대통령들이 왜 플루타르크의 영웅들처럼 순백한 삶을 살지 않는지 불만이다. 대통령에 대한 극단적 혐오와 터무니없는 기대가 병존하는 현상, 이것이 이 나라 대통령제를 '농담'으로 만들고 있다.

대통령제는 의회중심제가 태동하기 전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선진 국가 중 미국과 한국만이 '행정부의 단일 수반을 국민투표로 선출하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정의에 따르면 한 개인에게 행정수반이면서 동시에 고귀하고 위엄 있는 '선출된 군주'이자 도덕적 표상으로 봉직하기를 기대하는 제도다. 대통령은 큰 권한이 있고 그 권한이 권위에 의해 뒷받침할 때만 위대할 수 있다. 그런 대통령은 드물다. 대통령제 역사가 200년이 넘는 미국에서도 손에 꼽는다.

권위주의 시대를 거쳐온 한국인들은 모든 종류의 권위를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가진 권한은 그대로 둔 채 권위만 해체해 오는 중이다. 그 결과 하체(권위)는 부실하고 머리(권력)만 큰 가분수 대통령이 만들어졌다. 권위로 뒷받침되지 않는 대통령의 무수한 권한 행사는 다 시빗거리고 국정농단 혹은 직권남용의 혐의를 받는다. 한국의 대통령은 임기 후 감옥에 갈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실제 감옥에 간다. 미국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차이는 있다. 200여 년간 형사 기소된 전현직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뿐이다.

대통령제는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이 불일치할 때 극적으로 취약해진다. 나라를 돌아가게 하는 큰 권력은 모두 대통령에게 있는데 권력 행사가 사방에서 막혀 버린다. 국정은 표류하고 당파 간 갈등이 증폭된다. 이런 맹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이유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작동하기 어려운 제도가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제도의 효과가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제도를 작동시킨 정치인들에 의해서 가능했다."

지금 한국에는 그런 정치인들이 없다. 대통령제는 기본적으로 행운이 따라야 하는 제도이고 대통령 개인의 권위, 교착을 타개할 정치인이 없으면 고장 난 기계처럼 무용해진다. 계속 불행한 전직 대통령을 배출할 것이다. '피의자 문재인' 개인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것이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제도의 문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노원명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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