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망치는 에코사이드, 국제형사재판소서 책임 물어야”

최우리 기자 2024. 9. 1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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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섬나라들 ‘로마 규정 개정’ 제안
올해 6월28일 촬영된 바누아투의 상공 사진. 신화/연합뉴스

“우리는 모든 지도자들이 생태와 기후 파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로를 모색하면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관한 로마 규정 개정을 구체적 첫 걸음으로 제안할 것을 촉구한다.” (피아메 나오미 마타파 사모아 총리 )

국제 환경단체 ‘스톱 에코사이드 인터내셔널’(Stop Ecoside International·SEI)은 태평양에 위치한 세 섬나라인 바누아투·피지·사모아가 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제형사재판소(ICC) 회의에서 대규모 생태계 파괴 행위인 ‘에코사이드’를 전쟁범죄처럼 국제형사재판소가 단죄할 수 있는 범죄에 포함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에코사이드는 대량 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와 환경(eco)을 합친 조어로 인간의 행위 등으로 생태계가 광범위하게 파괴돼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의 환경 향유가 심각하게 감소하거나 점차 감소되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이들 국가는 에코사이드 범죄를 광범위하거나 장기적으로, 심각한 환경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저지른 불법행위 또는 부당행위로 규정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2차 세계대전 뒤 중대한 국제범죄를 저지른 개인의 형사책임을 물을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따라 설립됐다. 설립 근거 다자 조약인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은 이 재판소에 관할권이 있는 범죄를 집단살해,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침략범죄로 한정했다. 태평양 세 섬나라는 로마 규정을 개정해 에코사이드를 저지른 국가 지도자나 회사 경영진 등 개인을 전쟁범죄를 저지른 이처럼 단죄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태평양 세 섬나라가 이런 주장을 한 배경에는 이들 국가 전 세계 탄소 배출 비중은 미미하지만 기후변화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는 점이 있다. 지난달 27일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남서태평양 기후상태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에서 태평양 섬들의 탄소배출량 비중은 0.02%에 불과하지만, 해수면 온도 상승 속도가 세계 평균보다 세 배 이상 빠르다.

‘에코사이드’ 국제 범죄 규정 운동은 영국의 환경운동 변호사 폴리 히긴스(Polly Higgins)가 지난 2017년 제안한 캠페인에서 시작됐다.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 개발도상국을 위한 선진국의 기금 모금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시작됐으며, 2018~2019년 유럽을 중심으로 기후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세계 각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벨기에는 최근 에코사이드를 범죄로 규정했고, 유럽연합은 국제 범죄에 에코사이드를 포함하기 위해 일부 지침을 변경했다. 멕시코도 에코사이드를 범죄로 규정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핀란드, 룩셈부르크, 뉴질랜드, 파나마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한국에서도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환경권 논의가 확대되면서 최근 법학계와 인권단체 등에서 주목하고 있는 담론이다.

지난해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행사에서 사람들이 에코사이드 반대 대형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가디언 갈무리

로마 규정 개정은 토론에만 여러 해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은 대부분의 국가가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나타내기를 꺼리겠지만 실질적으로는 강력한 반대에 부닥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에코사이드가 국제 범죄로 규정될 경우 화석연료 기업 경영진의 형사 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화석연료 기업의 강한 저항이 예상된다. 개정 절차도 까다롭다. 로마 규정 가입 국가는 120국이 넘으며 전체 3분의 2인 80개국 이상이 찬성해야 규정을 변경할 수 있다.

또한 미국과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은 국제형사재판소 가입국이 아니기 때문에 로마 규정이 실제로 개정된다 하더라도 실질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국제변호사이자 영국 런던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법학 교수인 필립 샌즈 케이시는 가디언에 에코사이드가 국제 범죄로 인정할 것이라고 “100% 확신한다”면서 “유일한 질문은 언제 인정되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지만 지금은 신념을 갖고 있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 국내법에 명시한 것처럼 실질적 변화가 있었다. 이는 시기적으로 적절했고 올바른 생각이었다”고 강조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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