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장기화로 피로감…"러와 타협 원하는 우크라이나인 늘어"

김상훈 2024. 9. 1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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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싱크탱크 조사…우크라인 26% "전쟁 종식 위해 타협 원해"
러에 맞서야한다는 의견 다수지만 협상 원하는 목소리 커져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부서진 우크라 서부 르비우의 건물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AP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 6개월째 이어지면서, 장기전의 피로 속에 러시아와 협상을 원한다는 목소리가 우크라이나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싱크탱크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CEIP)이 조사업체 레이팅그룹에 의뢰해 지난 3월 우크라이나인 2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설문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26%가 전쟁 종식을 위한 러시아와 타협을 원한다고 답했다.

여전히 전체 응답자의 70%가량이 러시아에 맞서야 한다고 응답했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타협을 원한다는 비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이루기 위해 러시아와 협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찬반 질문에는 찬성 43%, 반대 54%였다.

전현직 군인들은 대체로 이런 흐름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군인 가운데 협상해야 한다는 응답 비율은 18%에 그쳤고, 맞서 싸우거나 러시아가 지칠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응답 비율은 80%에 육박했다.

우크라이나군 아조우 여단의 지휘관인 안드리 빌레츠스키 대령은 "서방은 물론 우크라이나에도 전쟁의 피로감이 형성됐다"며 "우크라이나에 있어 가장 긍정적인 순간은 아니지만, 군사적 재앙이 없었으니 (아직) 전쟁에 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2014년에 입대해 작년 부상으로 전역할 때까지 복무한 42세의 참전 용사 이반 판첸코도 "러시아는 지난 30년간 수십차례 국제 조약을 위반했다. 따라서 러시아와 합의는 가치가 없다"며 "우리가 장기간 지속할 평화를 원한다면 그들에게 최대한 상처를 입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에 숨진 가족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우크라 남성. [AFP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일반인들 사이에선 조심스럽게나마 러시아와 협상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남동부 자포리자에서 교사로 일하는 알라 프로니나(33)는 지난해 실패로 끝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이후 타협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남편이 전장에 가 있는 지금은 평화를 위해서라면 러시아에 점령된 영토를 포기할 의향도 있다고 말한다.

약 60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유명 블로거 나스티야 움카도 지난달 러시아군의 키이우 아동병원 공습 이후 1991년 기준 국경을 수복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고 전쟁 장기화와 관련해 정치인들을 비판하면서 "사람들은 평화를 원한다"고 썼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와 협상은 우크라이나 사회에서 금기다.

움카는 당시 블로그 글 때문에 국내 정보기관인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의 조사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에 있는 국제연구센터의 볼로디미르 두보비크 소장은 "사람들이 러시아와 협상할 준비가 더 된 것처럼 보이는 사실 자체가 큰 변화"라며 "하지만 휴전에는 상당한 정치적 위험이 따른다. 아마도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이를 나쁜 거래로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전쟁을 계속하는 것 역시 우크라이나에는 어려운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이미 동부 전선에서는 우크라이나 부대가 병력과 무기 열세 속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미국의 지원도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는 병력 난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초 징집 연령을 27세에서 25세로 낮췄지만, 신규 징집자 중 다수는 전쟁 초기 지원자들보다 나이가 많고 체력이 약하다고 한다.

동부 전선에서 싸우는 한 37세 군인은 훈련소에서 온 경험 없는 신병이 곧바로 전투에 배치돼 많은 인명피해가 날 것을 우려하면서 "우리 훈련에서는 여전히 소련 시절의 지침을 따른다. 의료 교육처럼 진짜 전쟁에서 필요한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전쟁이 길어지면서 치열한 전장 상황에 사람들이 점점 무심해지고 있다는 것도 우크라이나의 고민거리다.

실제로 동부 전선에서 불과 몇 시간 거리에 있는 드니프로에서는 술집과 카페가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어서, 마치 전쟁이 없는 나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부 전선에서 싸우는 45세의 소령계급 군인은 "왜 이 사회가 아무 일도 없는 척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정부는 정말 동기가 분명한 사람들이 영토를 내주는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결정은 싸우지 않는 사람들이 내릴 것이다. 고통스럽다"고 하소연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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