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본능’ 이광용, KBS 떠나 프리랜서 도전…“영원히 100점 못 맞는 시험, 그래도 중계석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해”
“정말 많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할 기회도 받고, 예능도 경험했는데 다 해보니까 결국 제가 제일 즐겁게 잘할 수 있는 건 스포츠더라고요.”
KBS 스포츠 중계의 간판이었던 이광용 아나운서가 21년 넘게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 프리랜서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번에도 주 종목은 스포츠다.
이광용 아나운서는 2003년 KBS에 입사한 이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다. 그는 스포츠 토크쇼 <이광용의 옐로카드>를 비롯해 여행 교양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내레이션을 책임졌다. 가장 최근에는 시사 예능 <더라이브>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약했지만, 그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집중한 분야는 스포츠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에서 그를 만나 숨겨왔던 ‘스포츠 본능’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우선 KBS를 떠나게 된 배경에는 스포츠 중계권 문제가 있었다. 그는 “저는 KBS에서 두 대회 연속 월드컵 메인 캐스터를 했었기 때문에 축구라는 종목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고 애정도 그 누구보다 크다고 자부하는 사람인데, 월드컵 중계권도 지금 JTBC가 가져간 상황이고 또 K리그도 지상파에서 중계하고 있지 않아요. 그리고 유럽 주요 리그도 쿠팡 플레이, SPOTV 이런 다른 채널들에 다 가 있잖아요. 축구 중계를 다시 재밌게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여의도를 떠나야 되겠다는 결론밖엔 없는 거죠”라고 말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중계 당시 시청률 부진으로 인한 부담감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카타르 월드컵이 방송적으로는 실패를 했어요. 한국 대표팀이 16강에 올라갔지만, 저는 시청률 경쟁에서 꼴찌를 했기 때문에 그거에 대한 어떤 부채 의식이라고 그래야 하나. 회사에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하기가 KBS 내에서는 조금 애매한 것도 있었고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러면서 “승리를 통해서는 조금 배울 수 있지만 패배를 통해서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메이저리그 전설 크리스티 매튜슨의 말을 곱씹었다. 프리랜서로도 성공해 과거의 성공이 운이 아니라 실력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이광용 아나운서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이영표 해설위원과 함께 메인 캐스터로 활약하며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 중에서는 드물게 야구까지 섭렵한 것도 그의 자랑거리다.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는 갑작스럽게 야구 중계를 맡아 두 종목을 넘나드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예전부터 월드컵 한국 경기와 KBO 리그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중계를 하고 싶었어요. 둘 중의 하나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둘 다 했더라고요. 그리고 이게 대한민국에는 저밖에 없어요”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물론 앞서 SBS를 떠나 자리 잡은 배성재 아나운서 등과의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엔터테이너형 아나운서들도 많고,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의 눈길도 사로잡아야 한다. 이광용 아나운서는 자신을 “프로그램을 빛나게 하는 도우미형 아나운서”로 정의하면서 차별화 요소로 꼽았다. 그는 “저는 캐스터가 잘나려고 하면 방송이 못나진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제가 아니라 제 파트너 해설자, 경기 선수들이 빛나면 저는 그냥 그 빛을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저는 좋은 콘텐츠의 힘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친근한 목소리도 강력한 무기다. 2005년 시작한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햇수로 벌써 19년째 된 장수 프로그램이다. 이광용 아나운서는 퇴사하기 직전까지 프로그램 역사의 거의 절반인 9년 동안 내레이션을 책임졌다. 그는 “여러 채널에서 재방송되는데 두 개 중 한 개는 제 목소리인 셈이죠”라며 웃었다.
이광용 아나운서의 끈기는 중계 전 루틴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밥을 먹지 않아요. 밥을 먹으면 물을 마셔야 하고요. 물을 마시면 경기 중간에 화장실을 가야 하거든요”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2018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 당시에는 오프닝부터 시상식까지 7시간 동안 한자리에 있었다.
그런 끈기로 스포츠 토크쇼나 테니스 중계 등 새로운 분야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스포츠 중계는 범위는 무한대이고 항상 100점은 못 맞는 시험 같아요. 하지만 그래도 현장에서, 중계석에 앉아 있을 때 제일 행복해서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 그가 웃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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