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리프킨 “물자원 확보 갈수록 중요…신재생에너지 쓰면 물 96% 절약”[인터뷰]

2024. 9. 1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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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아쿠아 플래닛’ 출간 기념 인터뷰
“기후 변화로 인한 신유목, 가까운 미래 이야기”
6천여년 간 길들인 물, 한도 넘기자 재야생화
기후 난민 불가피…사고방식 뿌리째 바꿔야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노동의 종말’, ‘제3차 산업혁명’의 저자인 제러미 리프킨이 신작 ‘아쿠아 플래닛’을 출간하며 지난 9일 오후 8시 줌(zoom)을 통해 한국 언론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민음사 제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제러미 리프킨이 재생에너지 예산은 줄이고 원자력발전소 지원은 늘린 최근 한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와 함께 ‘기후 위기’는 이미 시작됐으며, 인류가 ‘물의 행성’ 지구에서 더 살아가려면 반드시 물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노동의 종말’, ‘제3차 산업혁명’ 등의 저자인 제러미 리프킨이 9일 줌(zoom)을 통해 헤럴드경제와 만났다. 신작 ‘아쿠아 플래닛’을 출간하며 오랜만에 한국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리프킨은 대표적인 물 부족 국가인 한국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시장 관점에서 보면 2019년부터 태양광·풍력 발전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됐다. 시장 규모도 커지고 비용도 줄어든 것”이라며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화석연료는 개발, 저장하는데도 많은 비용이 들어 신재생에너지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최근 정부가 확대키로 한 원자력 발전은 유달리 가뭄과 홍수가 빈번한 한국에 이롭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전체 전력의 68%를 원전에서 얻는 프랑스는 물 부족으로 냉각수를 확보하지 못해 원전을 폐쇄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그는 “화석연료와 원전 대신 태양광과 풍력을 이용하면 냉각수로 쓰이는 물의 96%를 아낄 수 있다”며 “비용도 훨씬 저렴한데도 오래된 기술(원전)로 돌아가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출간된 제러미 리프킨의 신간 ‘플래닛 아쿠아’의 부제는 ‘우주 속 우리 지구를 다시 생각하다’이다. 물로 이뤄진 행성은 지구가 유일하다. [민음사 제공]

그러면서 리프킨은 “앞으로는 전쟁이 아닌 기후위기가 대규모 인류 이동을 초래하고, 이는 아열대 지역에서 캐나다, 러시아와 같은 한대 지역으로 올라가는 경로를 띌 것”이라며 “50년 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20년 후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만 년 동안 빙하기와 홀로세를 지나 인간이 농업, 목축을 정복하고 이를 가능케 한 ‘도시 수력 문명’을 건설,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수력 인프라가 붕괴하고 있는 단계에 왔습니다. 지구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란민이 10억 명 발생합니다. 이미 수백 만 명의 강제 이주민들이 발생했고, 이들은 중동에서 유럽으로, 중앙·남아메리카에서 북미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신유목 시대는 이미 도래한 것입니다.”

리프킨의 말에 따르면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단 20년. 2044년이 되기 전에 지난 6000년간 물을 길들이고, 지배할 수 있다는 사고 관념 자체를 바꿔야 하는 큰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의 제목인 ‘아쿠아 플래닛’ 역시도 지구가 ‘물의 행성’임을 책을 펴는 순간부터 닫는 순간까지 잊지 말라는 저자의 당부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인류가 물의 행성에서 물을 너무 함부로 다뤄와 이처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리프킨의 설명이다.

사실 지구 상에 문명이 태동한 6000년 전부터 인류는 지구가 초록색 대지로 뒤덮인 ‘그린 플래닛’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다 1969년에서야 아폴로호가 달탐사를 떠나며 우주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고 비로소 지구가 푸른색 물의 행성임이 밝혀졌다. 이런 행성은 우주에서 유일하다.

리프킨은 “자연을 길들이며 살아온 인류가 자본주의 시스템 도입한 지 200년 만에 재(再)야생화된 지구로 인해 혼돈에 빠졌다”며 “그래서 지구(earth)라고 부르는 대신 구태여 ‘아쿠아 플래닛’으로 불러 주위를 환기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 표지.

실제로 재야생화 된 지구의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지구 표면의 온도가 1℃ 올라갈 때마다 강수량은 10% 늘어난다. 이로 인해 지구 곳곳에서 겨울에는 폭설이 오고, 눈이 한번도 안 내린 곳에 눈이 내렸다. 봄에는 홍수가 인명·재산 피해를, 여름에는 심각한 가뭄이 들어 농업이 황폐화됐다. 극악의 폭염은 인명을 다수 희생시켰고, 엄청난 규모의 산불의 원인이 돼 산림이 무차별적으로 소실됐다.

지구 재야생화의 영향은 특정 지역이나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큰 산불이 나 일대 대기가 주황색으로 변하고 가까운 미국 시카고나 시애틀에서도 외출 금지 경보가 울린다. 물부족으로 인한 과도한 지하수 취수는 황당하게도 집앞 도로와 땅을 붕괴시킨다. 저서에 따르면, 오는 2050년께 현재 댐의 약 61%가 가뭄과 홍수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리프킨 이전에도 기후 위기에 대한 경보는 쉼 없이 울렸다. 일각에서는 ‘기후위기가 음모론’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논의 자체는 오래됐다. 하지만 큰 각성이 뒤따르지 못해 관련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에 대해 리프킨은 “현재 우리가 따르는 매뉴얼이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우리에게는 새로운 서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전히 인류가 대지 중심의 원칙과 가설, 즉 산업화와 수력 도시문명을 이뤘던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로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프킨은 모든 걸 다 바꾸라고 제언한다.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 경제·정치적으로 택한 시스템, 아이의 교육방식까지도 전부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무엇보다 물 자원을 이용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대규모 댐을 짓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며 “대신 ‘물 마이크로그리드’(분산 에너지원을 수용하여 에너지의 공급과 수요를 관리하는 지역 관리망)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고 이로 인해 물 자원이 점점 더 고갈되지만, 그렇다고 물이 사라지진 않는다. 다만 이 물이 언제 어디서 생기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게 리프킨의 시각이다. 그는 “물 마이크로그리드를 사용해 하늘에서 내리는 물을 집수하고, 저장하고, 배분하면 된다”면서 “미래에는 중앙집권적인 하나의 큰 댐 대신 수 백 만개의 마이크로그리드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자연적인 물의 흐름을 막지도, 격리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빗물을 수확(?) 중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계절별 가용성 변화 뿐만 아니라 댐의 통제 시스템에 침입해 대도시 지역의 급수를 차단하고 볼모로 삼으려는 사이버 범죄 및 테러 공격의 위험의 증가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때 마이크로그리드로 지역마다 물을 저장해두면 중앙 상수도망이 손상돼 물 공급이 중단돼도 임시적으로 상수도가 복구될 때까지 물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1945년생인 제러미 리프킨은 50년 뒤에 태어난 Z세대를 가르켜 ‘본인을 멸종 위기에 처한 종으로 여기고, 다른 동물들을 일종의 가족으로 여기는 첫 세대’라고 명명한다. 민음사 제공.

이 외에도 ▷금융자본에서 생태자본으로 ▷GDP(국내총생산)에서 삶의 질 지표로 ▷소유에서 경험으로 ▷수직적 경제에서 수평적 경제로 ▷중앙집권화된 가치 사슬에서 분산된 가치 사슬로 ▷지식재산권에서 오픈소스로 ▷제로썸게임에서 네트워크 효과로 ▷세계화가 아니라 세방화(글로컬라이제이션)로 ▷지정학 중심에서 생태 중심 정치 등으로 현 시스템이 점차 전환되고 있다고 리프킨은 말한다.

국가가 국민에 행하는 가장 강제적인 동원인 군대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성격이 변하고 있다. 리프킨은 “현재 모든 글로벌 싱크탱크들이 하고 있는 얘기가 ‘앞으로 군대의 역할이 자원 확보에서 생태 지역의 구호와 복구로 전환될 것이다’는 얘기를 한다”며 “기상이변이 일어나면 군대가 개입해서 대비, 보호, 복원, 재건축 활동 등을 할 예정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군대는 더 많은 시간을 생태 지역 거버넌스의 책임 관리에 할애할 것이고, 자연스레 전쟁과 투쟁하는 시간은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권력, 경제력, 일반적인 패권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 화석 연료를 통제해 왔는데, 이제는 중앙집권화가 아니라 분산형 에너지의 시대가 오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의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전혀 어렵고 이론적이거나 학문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과 상식에 기반한 것이고,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이와 함께 리프킨은 동양과 젠지(Gen-Z)를 주목한다. 특히 인간 대 자연을 분리시키는 서양철학과 달리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지 않는 불교나 도교 같은 동양철학에 관심을 둔다. 그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모두 자연을 자원으로 여기고 하느님이 아담에게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앞으로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불교와 도교가 문화적 DNA에 스며든 동양 국가들이 미래를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는 초록색의 대지로 이뤄져있지 않았다. 푸른색 물로 이뤄진 ‘물의 행성’이다. 게티이미지.

아울러 1945년생인 리프킨은 1995년부터 2010년생을 뜻하는 ‘Z세대’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놀라운 세대다. 이 세대는 본인을 멸종 위기에 처한 종으로 여기고, 다른 동물들을 일종의 가족으로 여기는 첫 세대”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웨덴의 10대 그레타 툰베리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등교를 거부하고 기후 온난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운동·Fridays for Future)을 이끌며 일찍부터 환경 운동을 이끌고 있다.

그러면서 공감능력이 인류가 지구에서 또 한번 살아남을 수 있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또다시 멸종위기가 다가오고 있고, 앞으로 100년 동안 현재 살아있는 종의 반이 멸종할 것이라고 과학자들이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번의 빙하기에도 호모사피엔스는 살아남았죠.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우리 종은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종입니다. 협력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공감할 수 있는 점이 우리의 경쟁력입니다. 공감 능력은 확장하기도 하고 붕괴하기도 하는데요, 지금은 이 공감능력이 확장되어야 하는 때임이 분명합니다.”

플래닛 아쿠아/ 제러미 리프킨 지음·안진환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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