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정리 하랬더니 ‘꼼수’ 부린 저축은행…당국 칼 빼드나

정윤성 기자 2024. 9. 1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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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실적 방어 수단으로 변질된 PF 정상화 펀드
논란 지속되자 3차 펀드 조성에도 제동…연체율 관리 ‘난항’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저축은행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채권 정리 과정에서 자산운용사와 공모해 '꼼수' 매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저축은행중앙회 차원에서 조성한 PF 펀드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여러차례 지적된 바 있다. 펀드를 둘러싼 잡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 주도로 건전성이 악화된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설까지 제기되면서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서울의 한 PF 사업장 ⓒ시사저널 최준필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검사 결과 상상인저축은행은 펀드 운용사 오하자산운용에 시세보다 비싸게 채권을 매각하고 건전성을 높인 것처럼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상상인저축은행은 오하자산운용의 PF 정상화 펀드에 6월 908억원, 8월 585억원씩을 투자했다. 이후 해당 펀드에 부실 PF 대출 채권을 장부가보다 높은 가격에 넘겨 총 129억원의 매각 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당기순이익을 부풀릴 수 있었고, 연체율을 2.6%포인트 낮추는 '착시효과'를 유발했다. 자신이 투자한 펀드에 부실 채권을 높은 가격에 매각해 부실을 이연하는 '꼼수 매각'이 이뤄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하자산운용이 동조한 사실도 확인됐다. 오하자산운용은 저축은행의 개별 확인을 받아 투자를 결정하는 'OEM(주문자생산)펀드' 방식으로 운용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정 투자자나 판매사의 지시나 명령에 따라 펀드를 운용하는 OEM펀드는 자본시장법상 불법이다.

그간 저축은행중앙회 주도의 부동산 PF 정상화 펀드에서도 유사한 행위가 지적된 바 있다. 펀드에 부실채권을 비싸게 팔아 저축은행이 단기 실적을 방어하고 연체율을 왜곡하는 일종의 '파킹거래'가 이뤄졌다는 지적이다. 중앙회는 지난해 9월과 6월에 한 차례씩 업계의 부동산 PF 부실 채권을 모아 공동 매각하는 펀드를 조성했다. 1차는 330억원, 2차는 5100억원 규모다.

펀드에 출자한 저축은행들은 자신들의 부실 채권을 10~20% 할인된 가격으로 매각한 뒤 이를 다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공매를 거치면 헐값에 넘겨야 할 부실 채권을 자체 PF 펀드에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매각하면서 부실 돌려막기와 충당금 환입까지 기대할 수 있던 것이다. 이를테면 30%의 충당금을 쌓은 부실채권을 공동 펀드에 20% 할인된 가격으로 팔면 10%포인트의 충당금을 환입 받아 수익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렇게 펀드에 부실채권을 잠시 맡아 두고 일시적으로 건전성 지표를 개선한 뒤 부동산 가격이 회복되면 다시 사들이는 방식으로 활용한 셈이다.

또한 금감원은 2차 펀드에 자금을 댄 저축은행과 이 펀드를 통해 부실 채권을 매각한 저축은행이 상당수 겹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매수자(2차펀드)와 매도자(PF대출 채권자)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진성매각이 이뤄지기보다 부실을 이연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공매와 상각으로 부실 채권을 처분하면 손실이 크다"며 "결국 자신들이 만든 펀드로 부실을 이연한 뒤 부동산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버티다 매각해 수익을 얻으려는 것으로 재구조화라는 당국의 정상화 취지에선 빗겨간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저축은행 간판 ⓒ연합뉴스

펀드로 꺾은 연체율 다시 '꿈틀'…당국 압박은 가속화

펀드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자 향후 저축은행 차원에서의 펀드 조성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금감원은 저축은행중앙회의 3차 펀드 조성도 중단시킨 상태다. 이에 따라 펀드를 통해 방어해 온 저축은행들의 연체율도 다시 꿈틀댈 조짐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전국 79개 저축은행 연체율은 평균 8.36%를 기록했다. 1분기 말 대비 0.44%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약 2년 반만에 상승세가 꺾였다. 여기엔 그간 조성한 펀드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다.

저축은행들은 경·공매를 통해 부실 채권을 정리해 향후에도 건전성을 관리해나가겠다는 계획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저축은행의 경우 경·공매 유찰 때마다 가격이 떨어지는 탓에 매각 규모에 따라 수익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어서다. 경·공매 시장에서 매수자와 매각자의 눈높이 차이가 큰 것도 걸림돌이다. 경·공매 활성화로 부실 채권 매물이 많아지면 매수자들이 가격을 더욱 낮춰 사려 들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게다가 당국은 저축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르면 10월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건전성 관리가 미흡한 저축은행에 대한 적기시정조치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이는 일종의 강제 경영 개선 조치로 당국 요구에 따라 영업 정지나 합병·매각까지 이를 수 있다.

다만 저축은행들은 인위적인 구조조정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저축은행 결산 설명회에서 "경영실태 평가에 따라 예상되는 당국의 조치 수준은 '권고' 정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며 "실제 당국 조치까지 가려면 계량적 평가에 더해 비계량적 평가까지 이뤄져야 하고 자발적인 경영 개선을 거쳐야 하는 등 실제 조치 발동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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