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데자뷔…"원유 공급 과잉" 국제유가 전망 또 하락

모건스탠리, 연말 유가 전망치 2주 만에 또 내려…
브렌트유 배럴당 85달러→80달러→75달러,
과거 침체 때와 비슷한 수급 불균형 흐름 경고

/로이터=뉴스1

글로벌 투자은행의 국제유가 전망치가 또 하향 조정됐다. 미국, 중국 등 경기둔화로 인한 수요 약세와 산유국의 공급 과잉이 원유 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최근 원유 재고 증가세에서 경기침체 신호가 포착됐다고 지적한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CN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모건스탠리는 이날 투자 보고서에서 국제 원유 시장 벤치마크인 브렌트유의 올해 4분기 가격 전망치를 배럴당 평균 75달러로 조정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말에도 브렌트유 전망치를 기존 배럴당 85달러에서 80달러로 5달러 내린 바 있는데 추가 하향한 것이다. 이번에 2025년 전망치도 기존 75달러에서 70달러로 내렸다.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들은 이날 보고서에서 "원유 재고 증가, 정제 마진 감소, 현물과 선물 가격 차이 등은 모두 과거의 경기 침체기 또는 수요 약세 시기를 반영한다"며 최근 원유 시장 내 수요 약세와 재고 증가 등을 이유로 브렌트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의 주식 분석가이자 상품 전략가인 마르틴 래츠는 보고서에서 "최근 원유 가격은 수요 약세가 상당했던 시기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며 "기본 시나리오로 삼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타임 스프레드(선물시장에서 월물 간 가격 차이)가 경기침체 때와 유사한 재고 축적이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과거 미국 경기 침체 기간 원유 비축량이 1억5000만~2억2000만 배럴 증가했었다. 최근 브렌트유 1개월물과 12개월물의 가격 차이로 인해 선진국의 원유 재고가 1억5000만 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완만한 경기침체(mild recession)와 유사한 수요 둔화를 뜻한다"고 분석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선진국의 원유 재고 증가는 전 세계적으로 원유 비축량이 3억7500만 배럴, 즉 연간 일평균 100만 배럴 이상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브렌트유 선물 가격 추이/그래픽=이지혜

모건스탠리는 이전에도 여름 휴가철에 나타나는 계절적 수요 강세가 점차 약해지고 4분기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의 공급 증가 전망에 따라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80달러 중반 범위에서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하지만 래츠 전략가는 "(브렌트유의) 가격 하락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고 급격했다"고 지적했다.

브렌트유는 지난 6일 중국 수요 약세 속 미국 경기둔화 신호까지 겹치면서 2021년 12월 이후 최저 수준인 배럴당 71.06달러로 마감했다. 주간 하락률은 2023년 10월 이후 11개월 만에 최대치인 10%에 달하기도 했다. 9일 종가는 허리케인 북상으로 인한 미국 원유 생산과 정유소 운영 차질 가능성에 전 거래일 대비 1.1% 오른 배럴당 71.84달러다.

모건스탠리 외에도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등 다른 투자은행 역시 공급과잉을 지적하며 원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특히 씨티은행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의 협의체인 OPEC+의 추가 감산이 없다면 2025년 브렌트유 가격이 평균 60달러로 추락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글로벌 원자재 거래업체 군보르와 트라피구라 그룹도 중국발 수요 둔화 속 산유국의 지속적인 공급 문제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에서 거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OPEC+의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카자흐스탄, 알제리, 오만 등 8개국은 앞서 이달 말까지로 예정했던 자발적 원유 감산을 11월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의 합의로 OPEC+ 산유국의 공급량 증가가 두 달 연기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 OPEC+ 이외 산유국의 생산량이 여전히 견고하고, OPEC+ 자발적 감산에도 공급과잉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며 유가 추가 하락을 점치고 있다.

정혜인 기자 chimt@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