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8년 전 알파고와 둔다면 과감하게 3승에 도전하겠다"
"시간 벌점까지 받으며 응씨배 우승한 이치리키 료 멋있었다"
"한중일대만 바둑이 함께 발전하면 더 재미있을 질 것"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57개월 연속 한국 랭킹 1위이자 자타 공인 세계바둑 최강자 신진서(24) 9단이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 대해 재미있는 자신감을 보였다.
신진서는 10일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2회 란커배 우승 기념 기자회견에서 "만약 지금 실력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8년 전에 돌아가 알파고와 대결한다면 어떻겠는가?"라는 유튜브를 통한 팬 질문에 대해 "당시 알파고의 실력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승부 예측이 의미 없긴 하지만 만약 둔다면 5번기에서 과감하게 3승에 도전하겠다"라고 말했다.
2016년 3월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는 당시 세계 최강자인 이세돌 9단을 4승 1패로 꺾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알파고는 이세돌에게 당한 1패가 유일한 패점이었다.
이후 알파고는 인터넷 대국에서 세계 최강자들을 상대로 60전 전승을 거뒀고 중국 1인자 커제 9단과 3번기에서도 완승했다.
프로기사 여러 명이 상의해서 착점하는 단체 상담기에서도 모두 승리한 알파고는 68승 1패를 기록한 뒤 바둑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 알파고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자신감을 보인 신진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AI 때문에 대부분 프로기사의 실력이 크게 향상됐다고 밝혔다.
AI에도 자신감을 보인 신진서는 그만큼 승부에도 민감하다.
"예전에는 연습 바둑을 져도 며칠 동안 기분이 안 좋았다"라고 밝힌 그는 "지금은 많이 성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세계 대회에서 지면 1주일 동안 아프고 결승에서 지면 다음 결승에서 이길 때까지 아프다"라고 강한 승리욕을 보였다.
또 올 시즌 프로기사 최초로 연간 상금 15억원에 도전하는 신진서는 "바둑 기사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상금이 부족한 게 사실인데 많이 받을 수 있으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신진서와 일문일답.
-- 올해 란커배에 앞서 LG배에서도 우승하고 농심배에서는 끝내기 6연승으로 한국에 우승컵을 안겼지만, 응씨배와 춘란배 등 다른 세계기전에서는 중도 탈락했는데 올 시즌을 평가한다면.
▲ 올 초에 워낙 영광스러운 일이 있어서 축하도 많이 받았는데 그 이후엔 아쉬운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작년에 큰 아픔이었던 란커배에서 우승해서 올 시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해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 최초로 연간 상금 15억원 돌파 여부가 관심인데.
▲ 초등학교 때 입단했는데 그때는 대회 나가면 상금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시합만 보고 뒀다. 이제는 대회전에 상금도 한번 검색해보기도 하는데 상금은 (성적이 좋으면)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바둑기사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상금이 부족한 게 사실이긴 한데 많이 받을 수 있으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쓴 책을 보면 이창호 선수가 대국 수를 조절했다면 전성기가 더 오래갔을 거라고 했는데 본인은 대국 수를 줄일 생각이 있는가.
▲ 예전보다는 최근 제한 시간이 속기로 가기 때문에 같은 판수라면 지금이 덜 힘든 것 같다.
작년에는 아시안게임에서 너무 많은 힘을 빼긴 했다. 지금은 대회가 예전보다 그리 많지 않아 그런(대국 수를 줄이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아직은 괜찮은 상태인데 나중에 더 힘이 들면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다.
-- 바둑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 바둑은 굉장히 어렵다고 다들 알고 계시는데 룰 자체가 간단하다. 그 가운데 치열하게 싸우면서 AI조차 수를 다 찾지 못할 만큼 쉬우면서도 어려운 게 매력이다. 15년 이상 바둑을 뒀지만 지금도 수를 보면 볼수록 더 많이 나오는 게 재밌다.
--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이겨내나.
▲ 최근에도 슬럼프가 왔는데 비교적 쉽게 넘길 수 있었다. 많은 실패를 통해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가장 큰 슬럼프 2016년부터 2~3년간인데 생각도 어렸고 나이도 어렸던 시기였기에 어떻게 넘겼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 어떤 비결이 있었던 게 아니라 바둑을 계속 두다 보니 다시 나에게 기회가 왔고 아무 생각 없이 계속하다 보니 넘기게 된 것 같다.
-- 지금 실력 그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8년 전으로 돌아가 '알파고'와 대국을 한다면.(유튜브 팬 질문)
▲ 승부는 당연히 해보고 싶다. 당시 알파고의 실력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승부 예측은 큰 의미가 없지만 대국한다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만약 승패를 예측한다면 5번기에서 과감하게 3승까지 도전해보고 싶다.
-- 평소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고 대국을 앞두고 루틴은 있는가.(유튜브 팬 질문)
▲ 루틴은 만들지는 않았으나 대국을 앞두고 잠을 많이 자는 편이다. 세계 대회 때는 아침이나 점심을 많이 먹지 못해 매우 허기진 상태에서 대국하는 편인데 한판이 끝나면 쓰러질 정도이기도 하다.
-- 후학 양성에 대한 생각은 있는가.(유튜브 팬 질문)
▲ AI가 있는 상태에서 저한테 뭘 배울지 애매하긴 한데 제가 가진 기술이나 생각 정도는 전해 줄 수 있을 같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나중에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 바둑에서 지고 나면 솔직히 기분이 어떤가.
▲ 예전에는 연습 바둑만 져도 며칠 동안 기분이 안 좋았다. 지금은 조금 성숙해졌다고 믿고 싶지만, 세계대회에서 지면 최소한 1주일은 아픈 것 같고, 결승에서 지면 다른 결승에서 이길 때까지 아픔이 있는 것 같다.
-- 최근 일본의 이치리키 료가 응씨배 우승하고 올해 대만 선수들 성적이 좋은데 어떻게 보는가.
▲ 며칠 전 이치리키 선수가 응씨배에서 우승했는데 시간 벌점까지 받으면서 승리를 만들어낸 게 상당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이 기회에, 일본에서 세계대회를 개최하고 '이치리키 키즈'가 생긴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한중일대만이 같이 발전하면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AI가 있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대만 기사들도 많이 성장하고 세계대회에서 초일류 기사들을 꺾을 수 있는 기량이 된 것 같다. 저도 멈춰 서 있으면 밀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의 리쉬안하오 선수 같은 경우는 저보다도 AI에 대한 이해력이 아주 높은 것으로 보이는 강자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무명 선수도 AI 공부를 잘하면 절대 섣불리 볼 수 없다.
-- 국내에서 유심히 지켜보는 후배 기사가 있는가.
▲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잘하는 후배들이 많다. 하지만 세계대회에서 중국 기사들을 이기고 우승하기는 아직 쉽지 않다.
한우진이나 문민종 등 신예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더 많이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국내 대회에서는 저를 많이 이겨갔으면 좋겠다.
-- 바둑 아닌 다른 일을 했다면 어떨 것 같나.
▲ 상상이 잘 안되긴 한데 그냥 공부해서 성적에 맞는 대학에 갔을 것 같다.
다른 일을 한다면 공부를 해 보고 싶긴 한데 아마도 바둑이 제일 나한테 맞는다고 느끼지 않을까 싶다
-- 팬 미팅 계획은 없는가.
▲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그동안 팬들을 많이 못 뵀는데 언제든지 찾아보고 만나 뵙고 싶다.
제가 조금 내성적이라 팬들에게 말을 많이 못 하긴 한데 그래도 팬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서로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 평소 독서는 많이 하는 편인가.
▲ 에세이를 낸 입장에서 약간 부끄럽긴 한데 사실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월간바둑이다. 앞으로는 독서량을 많이 늘리겠다.
shoele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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