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후소송’ 판결로 아시아 기후운동의 희망 봤다”
“한국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아시아 국가들의 ‘기후소송’에 희망을 안겨줬습니다. 한국 판결이 일본·대만의 법원과 각국 정부의 기후 정책을 변화시킬 계기가 될 거라 확신합니다.”
지난달 29일 한국 헌재가 2031년 이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없는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내린 결정과 관련해, 대만과 일본에서 기후소송을 진행 중인 변호사들은 “아시아 환경 운동사에 중요하게 기록될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대만의 스티븐 옌(29) 변호사와 일본의 아사오카 미에(77) 변호사는 올해 1월과 8월 각각 대만과 일본에서 제기된 기후소송의 법률대리인이다. 수년간 국내외 환경·기후 문제에 대한 법률 활동을 해온 이들에게 한국과 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기후소송 의미와 영향에 관해 물었다.
두 변호사는 한국의 기후소송이 대만과 일본 소송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일 한겨레와 화상 인터뷰를 한 옌 변호사는 “기후소송은 미래에 있을 측정 불가능한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그러던 중 독일 헌재에서 정부 기후정책을 문제 삼는 판결(2021년)이 있었고, 한국에서도 청소년과 아이들이 정부 기후대책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돼(2020, 2021년) 참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청소년 기후소송보다 4년 늦은 대만 기후소송엔 정부 기후 정책에 책임을 묻기 위한 원고로 기후변화 피해를 겪는 농민과 어부, 시민, 어린이들이 참여했다.
“한국 변호인단에게 많은 도움 받아”
미나마타병(수은 중독으로 마비·지적장애가 나타나는 질병) 같은 공해병 소송을 맡아온 아사오카 변호사는 지난 4일 한겨레와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 뒤 신설된 석탄발전소에 반대하는 소송이 계속 기각되면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던 중 한국 청소년이 주도한 기후소송 소식을 접했다. 일본 사회는 한국보다 보수적이라 원고로 참여할 학생들을 모으는 것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는데 한국 기후소송 변호인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사오카 변호사는 일본의 15~29살 청년 16명이 도쿄전력의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 등을 요구하는 가처분 소송(나고야재판소)을 맡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들려온 기후소송 일부 승소 판결이 ‘한 줄기 빛’과 같았다고 했다. 옌 변호사는 “언론에서 결과를 접한 뒤 내가 맡은 소송이 승소한 것처럼 손뼉을 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 판결은 한 국가에 국한된 게 아니라 독일법 계통을 따르는 대만 사법원(헌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대만과 일본의 환경 단체들과 청년들이 정부 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해 싸워온 노력이 정당했다는 걸 일깨워 준 판결”이라고 말했다.
아사오카 변호사도 “정부 에너지 정책은 환경단체가 문제 삼기 어려운 ‘성역’이었는데, 한국 헌재가 2031년 이후 정부가 기후대응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판단한 부분은 아시아 국가들의 향후 국가온실가스감축 목표(NDC) 상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우려되는 산업계 원전 도입 목소리”
한국과 일본, 대만에서 석탄발전과 핵발전(원자력발전) 의존도가 커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아사오카 변호사는 “후쿠시마 사고 뒤 기존 51개 원전이 현재 19기만 가동되면서 석탄화력발전 비중이 30% 이상으로 늘었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신규 원전을 건설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데, 정부의 무능과 국민의 무관심으로 미래가 회복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갈까 우려된다”고 했다.
옌 변호사와의 화상 인터뷰에 함께 참여한 옌팅린 대만 환경권리재단 캠페이너는 “대만은 국민투표를 통해 2025년까지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했는데, 외려 석탄발전과 천연가스발전 비중(각각 45%, 32%)이 높아져 탄소 배출을 심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기업들을 중심으로 소형모듈원전(SMR)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풍력과 태양광, 지열에너지 같은 재생에너지로 가는 게 기후와 미래를 위한 올바른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일본과 대만의 매장 자원이 적고, 영토가 제한돼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리기 어렵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원전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내비쳤다. “원전은, 탄소 배출이 심각한 석탄발전보다도 미래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지우는 위험한 에너지”라는 것이다.
“각국 소송 참가자들, 지속해서 연대하자”
변호사들은 각국 소송에 영향을 미친 한국 소송 참가자들과 변호인단에 고마움을 전했다.
아사오카 변호사는 “독일과 네덜란드 기후소송을 보면서, 사법제도가 다르고 보수적인 아시아에선 기후소송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청년과 시민들이 헌재를 설득하고 결과를 끌어내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옌 변호사는 “기후대응 후진국으로 평가받는 아시아 국가들에 희망을 보여 준 한국 소송 참가자들에게 감사하다.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 급격한 기후변화를 막기 어려운 만큼, 각국 소송을 통해 정부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게 지속해서 연대하자”고 제안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대만은 지난해 기후변화대응법을 만들었는데, 올해 2월 어린이, 농부, 어부, 시민단체 등이 이 법률이 규정한 조처가 충분하지 않다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미래세대가 포함된 다양한 시민들이 정부가 만든 법률을 상대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기후소송과 그 성격이 비슷하다.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후소송은 지난 8월 청년들이 정부가 아니라 도쿄전력 등 10개 전력회사들을 상대로 일정량 이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못하도록 막아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소송이다. 미래세대가 안정된 기후에서 생활할 권리를 주장한다는 내용이 우리나라 기후소송과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영국 런던정경대(LSE) 그랜섬 기후변화환경연구소는 1986년부터 지금까지 51개 국가에서 2340건(2023년 집계 완료 전)의 기후소송이 제기됐다고 집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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