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후진국’으로 퇴보하는 윤석열 정부 [아침햇발]

박현 기자 2024. 9. 1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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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11월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2차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확정된 직후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현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정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3년 전 사용하는 언어가 많이 낯설었다. 그는 기성 정치권을 향해 ‘거대한 부패 카르텔’이라며 날을 세웠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정치인의 입에서 정부가 국민을 약탈한다는 말은 그때 처음 들었다.

그는 2021년 6월29일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다”며 “이 정권은 권력 사유화에 그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해 계속 국민을 약탈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해 11월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약탈이라는 표현을 썼다.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폭등은 ‘재산 약탈’입니다. 악성 포퓰리즘은 ‘세금 약탈’입니다. 1천조가 넘는 국가 채무는 ‘미래 약탈’입니다. (중략) 국민을 약탈하는 이권 카르텔을 두고 나라 경제 살릴 수 있겠습니까.” 연설의 마무리까지도 “부패와 약탈의 정치를 끝내겠다”고 한 걸로 봐서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듯했다.

국어사전에선 약탈을 ‘폭력을 써서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과연 정부에 대해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물론 평생 검사로 살아오며 범죄자들을 준열하게 질타하는 공소장을 써오는 데 익숙해 있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한편에선 들기도 했다. 그러나 집권 3년차가 되어 이 연설문들을 다시 읽어보니 이런 말들이 단순히 수사학적 표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윤 대통령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검사의 눈엔 모든 이가 범죄자 내지는 잠재적 범죄자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검사 윤석열’이 아닌 ‘대통령 윤석열’이 이런 시각을 지금도 갖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정치학에서 ‘약탈국가’는 지배세력이 강압적 권력으로 주민들을 지배하면서, 질서 유지와 보호 서비스 제공을 명목으로 주민들을 갈취하는 국가 형태를 말한다. 근대 이전 고대·중세 시대의 국가 형태다. 물론 윤 대통령이 전근대적 국가와 근대 국가를 구별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검사의 시각으로 보니 약탈적 속성이 보인다는 정도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정부 정책에까지 투영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세금을 비롯한 핵심 경제 정책을 국민을 ‘약탈’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정부의 역할은 최대한 줄이는 게 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이 국가를 보는 관점이 바로 약탈국가론인 게 이런 이유에서다. 윤 대통령이 애독했다는 신자유주의 이론가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라는 저서가 설파하는 게 바로 이런 주장이다. 시장은 자유방임 상태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만큼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이 정부가 해온 일이 바로 이런 식이었다. 세입과 예산 감축이 대표적 사례다. 국세 수입은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2년 396조원에서 올해 367조원으로, 정부 예산은 같은 기간 680조원에서 657조원으로 줄었다. 정부는 내년에도 2022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재정운용계획안을 내놨다.

정부의 크기와 관련한 국제 비교에서는 조세부담률이라는 지표가 활용된다. 국가의 힘은 재원으로 쓸 수 있는 세입의 규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조세부담률은 세금 총액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이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2022년 22.1%로 올랐다가 올해 19.1%, 내년에는 18.9%(예산안 기준)로 낮아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평균은 비교 가능한 최신 데이터로 2021년 25.2%다. 오이시디 평균에 견줘 한참 낮은 수준이다.

근대 이후 세금은 국가의 형성과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6~18세기 세금을 효과적으로 거두는 데 성공한 국가는 전쟁 수행 역량이 뛰어나 강성한 국가가 되었으며, 20세기 이후 복지국가의 형성에도 세금이 토대가 됐다. 최근 몇년 새 반도체 등 첨단기술 패권을 놓고 ‘국가 대항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핵심이 보조금을 어느 나라가 많이 주느냐다. 세입 기반이 약한 나라는 밀릴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부자 감세’에 열중하느라 2년 연속 수십조원의 세수 결손 사태를 빚으며 세수 기반을 훼손하고 있다. 이런 재정 상태로는 급증하는 복지 수요는 물론이고 기술패권 경쟁에서도 힘을 쓸 수가 없다. 윤 대통령의 철 지난 신자유주의 철학 탓이 크다. ‘재정 후진국’으로의 퇴보를 당장 멈춰야 한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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