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앙코르를 둘러싼 논란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4. 9. 10. 14: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 감상은 일반 공연을 지켜보는 것보다 좀 더 까다롭다. 나름 신경을 써야 할 규칙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악장과 악장 간에는 박수를 삼가야 한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교향곡, 소나타, 협주곡 등은 대개 여러 악장으로 구성된다. 악장이란 그 자체로 독립성과 완결성을 갖춘 작은 곡이지만 하나의 온전한 작품은 아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은 모든 악장을 연주해서 공연이 다 끝났을 때 비로소 박수를 보내는 것을 일종의 ‘불문율’로 여긴다. 문제는 클래식 음악에 상당한 소양을 쌓지 않으면 연주가 멎었을 때 이게 악장이 끝난 건지, 아니면 곡 전체가 끝난 건지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초보자로선 대체 언제 손뼉을 쳐야 할지 혼란스러울 법도 하다. 그래서인지 일부 공연장은 사전 안내 방송을 통해 “박수는 연주자가 공연을 마치고 인사할 때 보내 달라”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한다.
루마니아가 낳은 세계적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연합뉴스
드물지만 연주자가 일부러 오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2012년 4월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이 그랬다. ‘한국 피아노의 대부’로 불리는 원로 피아니스트 정진우의 독주회 데뷔 60주년을 맞아 후배들이 마련한 뜻깊은 무대였다. 베버의 ‘무도회에의 권유’를 연주하던 정진우가 갑자기 건반에서 손을 떼곤 지긋이 눈을 감았다. 공연이 끝났다고 여긴 몇몇 청중이 손뼉을 치자 정진우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건반을 두드렸다. 꼭 “속았지” 하며 놀리는 얼굴이었다. 이번엔 박수 대신 폭소가 터져나왔다. 관객이 박수를 언제 보내야 할지 몰라 가슴을 졸이는 게 과연 좋은 공연의 모습인지 의문스럽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청중이 악장과 악장 사이에 손뼉을 쳐도 상관없다”며 “그런 뜻밖의 상황까지 다 포함하는 게 공연”이라고 말한 것이 문득 떠오른다.
앙코르의 경우는 어떨까. ‘악장과 악장 간 박수 금지’와 달리 무슨 원칙 같은 것은 없다. “한 곡 더 들려달라”는 요구를 연주자나 성악가가 받아들이면 좋고 난색을 표해도 그만이다. 다만 청중의 앙코르 요구를 척척 받아주는 마음씨 착하고 체력 좋은 연주자나 성악가가 무대에 선 날은 귀가가 늦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 통상 오후 8시 시작하는 예술의전당 공연이 앙코르 때문에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겨 10시30분에야 끝난 사례도 봤다. 일반 연주회나 독창회와 달리 오페라에선 앙코르가 잘 나오지 않는다. 연극과 유사하게 진행되는 오페라의 특성상 공연 도중 한 가수가 같은 노래를 두 번 부르면 흐름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앙코르 금지가 무슨 불문율인 것은 아니다. 스타 성악가들이 대중에 널리 알려진 곡을 멋지게 소화한 뒤 객석의 앙코르 요구에 응해 한 번 더 부르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이 주최한 오페라 ‘토스카’ 공연에 출연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왼쪽 네 번째)가 다른 출연진 및 제작진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오페라 ‘토스카’ 공연이 앙코르를 둘러싼 논란에 불을 지폈다. 테너 김재형이 ‘토스카’를 상징하는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열창한 것이 발단이 됐다. 노래가 너무 훌륭했는지 청중이 앙코르를 요청했고 잠시 망설이던 김재형은 지휘자가 음악을 다시 연주한다는 신호를 보내자 같은 노래를 또 불렀다. 그러자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기우가 갑자기 무대에 난입하더니 “이건 (김재형의) 독창회가 아니다”라며 “나를 존중해달라”고 외쳤다. 게오르기우는 전부터 오페라 공연 중간의 앙코르에 비판적 입장을 취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본인의 소신이 무엇이든 그 표현 방식이 틀렸다는 것이다. 성난 청중 일부가 티켓 환불을 요구하고 나섰다니 완전히 망한 공연이 되고 말았다. 게오르기우는 “나를 존중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관객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할 듯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