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아닌 '임금절도'…소멸시효 연장하고 지연이자 확대해야"(종합)

권신혁 기자 2024. 9. 10. 13: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노총 등 임금체불 근절 토론회
"경제적 살인이라는 경각심 부족해"
"민사·형사법 개선…3년→5년 연장"
"노동자 보호 대지급금 요건 엄격"
"반의사불벌죄 폐지…합의종용돼"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이동철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상담소 실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임금체불 근절대책,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임금체불 실태와 해결방안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 2024.09.10.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권신혁 기자 = "임금체불이라는 말 대신 '임금절도'로 바꿔야 합니다."

지난해 임금체불액이 1조7845억원에 이르며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운 것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1조436억원으로 집계된 가운데, 이 같이 임금체불을 단순 재산범죄가 아닌 '중대범죄'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김위상·김형동·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실, 강득구·김성회·김주영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이 9일 오전 국회에서 공동주최한 '임금체불 근절대책·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나왔다.

이날 모인 노동계 및 노동 관련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사업주, 정부, 사법부 등 사회 전반에서 임금체불죄를 심각한 범죄행위라는 인식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임선영 전 국가인권위원회 이주인권팀장은 "임금체불 용어를 임금절도죄, 임금사기죄 등 범죄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말로 바꿔야 한다"며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체불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1본부장은 "임금체불의 뿌리 깊은 원인은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살인이라는 사회적 경각심이 부족한 데 있다"고 짚었다.

아울러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임금체불 근절을 위해 법제도 개선 방안을 논했다.

권오성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금체불 근절을 위한 다층적 제도설계 방안'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그는 "임금체불 대응은 여전히 시급한 정책과제"라며 민사법, 형사법 형역에서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민사법 영역의 경우, 권 교수는 "임금 지급의 확보와 관련해 소멸시효 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임금체불죄의 공소시효는 5년이다. 그런데 임금 채권의 민사상 소멸시효는 3년이다.

권 교수는 "민사상으로는 3년 소멸시효가 완성됐으나(사용자 임금 지급의무 소멸) 공소시효는 완성되지 않아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사례도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소시효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권 교수는 "임금체계의 단순화 및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며 "근로자가 자신의 임금이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임금체불은 필연에 가깝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이동철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상담소 실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임금체불 근절대책,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임금체불 실태와 해결방안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 2024.09.10. suncho21@newsis.com

이어 임금청구를 간소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임금체불에 대한 진정 고소를 통해 체불 사실이 확인돼 '체불임금등사업주확인서'가 발급된 경우에도 사용자의 재산을 강제집행하기 위해선 근로자가 새로 임금청구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고 문제를 짚었다.

그러면서 "소송보다 간단하고 신속한 방법으로 확인서가 발급된 임금채권에 집행력을 부여하는 제도의 신설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형사법 영역에서 권 교수는 현행법이 임금체불죄를 횡령, 사기, 배임 등의 재산범죄와 같은 평면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그는 "임금체불죄의 보호법익은 단순히 재산이 아니라 생존권적 성격의 근로권과 높은 관련성을 가지는 재산적 법익"이라며 "임금체불죄의 본질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금체불죄 양형에서 피해 근로자 수와 미지급기간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권 교수는 "노동관계는 사법관계가 아닌 공법관계"라며 "국가의 개입이 전제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사례를 발표한 이동철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노동교육상담소 실장은 현행 대지급금(근로자의 체불된 임금을 우선 국가가 대신 지급) 제도의 요건이 강화된 점을 문제 삼았다. 이 실장은 "사용자가 지급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국가가 대지급금으로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데, 그 요건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는 근로자들이 '어떻게 하면 국가 보조금을 빼먹을까'라고 생각한다는 시각을 바꿔서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 참여한 박성우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임금체불은 단순한 채무 불이행이 아니라 근로계약의 기본질서를 무너뜨리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하며, 나아가 그 노동자가 부양하는 한 가정을 파괴시킬 수 있는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은 현재 임금체불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원인으로 고용노동부의 임금체불 신고사건 처리행태를 꼽았다. 그는 "임금체불의 1차적인 법적 구제절차는 고용부에 신고(진정)하는 것인데, 진정건의 빠른 처리를 위해 근로감독관들의 합의 제안이 빈번하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5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임금체불 근절과 노동약자 보호를 위한 전국 고용노동관서 기관장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고용노동부 제공) 2024.09.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와 더불어 임금체불죄가 반의사불벌죄라는 점을 문제로 보고 폐지를 촉구했다. 박 위원은 "임금체불죄는 근로기준법상 유일한 반의사불벌죄인데, 합의 금액을 빠르게 받기 위해선 노동자가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해야 한다"며 "형사처벌 면제를 조건으로 체불임금이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점이 근로감독관의 부당한 합의종용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사법부가 임금체불을 가벼운 범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임금체불죄는 근로기준법에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규정된다.

그는 "2020년 전국 1심 법원의 임금체불죄 형사판결 결과를 보면 징역형 등 실형이 선고된 건수는 4%에 불과하다"며 "벌금형과 벌금형 집행유예가 64%로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또 "벌금형의 경우에도 형량을 보면 체불액의 13.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노동행정, 사법 행태로 인해 제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 안 될 유인이 없는 것"이라며 "오히려 적당히 늦게 지급하는 것이 사용자에게는 경제적으로 이익이고 유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우려했다.

이에 박 위원은 "지연이자제도를 전면 확대해 임금을 늦게 지급할수록 그만큼 사용자에게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연이자 미지급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위원은 "지연이자 자체가 근로기준법상 임금이 아니고 미지급 관련 처벌 규정이 없어 고용부 진정 절차에서 노동자들이 지연이자를 받지 못한다"고 했다. 실효성을 위해 진정 절차에서 지연이자 미지급도 함께 다루자는 주장이다.

한편 이날 고용부를 대변해 참석한 이창기 근로기준정책과 서기관은 토론 및 발표 중 언급된 소멸시효 연장과 대지급금 요건 관련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이 서기관은 소멸시효 연장과 관련해서 "쉽지 않다"며 "정합성을 같이 고려할 필요가 있고 현재도 근로자가 임금 지급 독촉이나 소를 제기해 소멸시효를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지급금 요건 강화와 관련해서는 "법정 판결 없이 체불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법원 판결을 대처하는 효과를 지니려면 공신력이 있어야 한다"며 "최근 일부 근로자들 사이에서 부정 수급이 나타나고 있어 신빙성을 위해 강화한 것"이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innovation@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