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54만명, 청년 고립을 '개인사'로 치부하는 세상 [그림자 밟기]
사회와 단절된 채 지내는
고립ㆍ은둔 청년 54만명
개인 문제 치부할 일 아냐
다만 법적ㆍ제도적 틀 부족
사후관리 조례 규정한 곳은
지자체 85곳 중 고작 3곳 뿐
전국적인 표준 기준 시급해
사회와 단절된 채 좁은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청년 54만명. 누군가는 '개인적인 일'이라고 깎아내릴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사회적 측면에서도 고립ㆍ은둔 청년의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풀어야 한다. 문제는 이를 위한 법적 지원망이 튼튼하느냐는 거다. 아쉽지만 그렇지 않다. 홍기자의 '그림자 밟기' 에서 고립ㆍ은둔 청년 54만명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20대 청년 김민성씨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 2019년 이후 햇수로 5년째 사람들과의 발길을 끊고 있다. 집에서 혼자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는 게 그의 일상이다. 돈이 없으면 건설 일용직으로 삶을 지탱한다.
공시를 포기한 민성씨는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다"고 털어놨다. "공시에 수없이 응시했지만 모조리 떨어졌어요.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포기했죠. '나만 패배자인 것 같아' 사회에 나갈 용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1인분' 역할쯤은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민성씨처럼 사회와 단절된 채 집 안에서 홀로 지내는 고립ㆍ은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23년도 실태조사를 통해 "'고립 청년'은 전체 청년인구의 5%에 달하는 54만명이고, 이중 '은둔 청년'은 24만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고립 청년은 타인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기 어려운 청년을, 은둔 청년은 사회활동 없이 집이나 방에 스스로를 가둔 청년을 의미한다. 이들이 고립된 삶을 선택하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다만, 현대 사회의 복잡한 구조와 개인의 심리상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사실 고립ㆍ은둔 청년은 개인 문제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이런 유형의 청년들이 많아지면 사회가 병든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실시한 온라인 심층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립ㆍ은둔 청년 8436명 중 6360명(75.4%)이 자살을 생각했다. 이중 1698명(26.7%)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이들을 위한 법적ㆍ제도적 틀은 탄탄하게 구축돼 있을까. 참여연대 부설기관 청년참여연대가 '청년의 고립ㆍ은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어떻게 지원하고 있나?' 이슈 리포트를 통해 지자체 85곳의 고립ㆍ은둔 청년 지원 조례와 정책(올해 6월 17일 기준)을 살펴본 결과는 다소 아쉽다.
지자체 85곳 중 고립ㆍ은둔청년의 '사후관리'를 조례로 규정한 곳은 서울시 성북구, 서울시 강동구, 경기도 안산시 등 3곳(3.5%)뿐이었다. '사후관리'를 법적 테두리 안에 넣지 않은 지자체가 90%를 넘는다는 거다.
사후관리는 고립ㆍ은둔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이다. 수많은 청년이 고립ㆍ은둔의 늪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빈번해서다. '2023 고립ㆍ은둔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5.6%가 재고립과 은둔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 고립ㆍ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서울청년기지개센터의 김주희 센터장은 "고립ㆍ은둔 청년들은 회복을 잘 하다가도 삶이 어려움에 처하면 다시 은둔할 가능성이 높다"며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기관과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청년에게 알려주면서 '끈'을 연결해놓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지자체의 지원 정책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청년참여연대가 전국에서 2020년 7월부터 올해 6월 3일까지 시행했거나 시행 예정인 정책 49건을 분석한 결과, 17개 광역시ㆍ도 중 8곳(47.1%)에는 고립ㆍ은둔 청년 정책이 단 한건도 없었다.[※ 참고: 기존 사업에 고립ㆍ은둔 청년을 포함해 대상을 확대한 정책은 제외했다.]
그나마 만들어 놓은 지원정책도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일례로 '청년포털' 등 정부가 운영하는 청년정책 사이트에서 지자체의 지원 정책들을 모두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앞서 언급한 고립ㆍ은둔 청년 이슈 리포트를 기획한 민선영 참여연대 팀장의 말을 들어보자.
"'청년포털'이나 '청년몽땅' 같은 청년 정책 검색 사이트에서 지자체의 정책을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청년 정책 검색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없는 케이스가 많아 별도로 구청ㆍ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책을 찾아야 했다." 그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고립ㆍ은둔 청년이 정책을 한눈에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지자체와 유기적인 협력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 역시 청년정책의 활성화를 위해선 고립ㆍ은둔 청년들을 향한 전국 단위의 단계별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진열 동서대(사회복지상담학) 교수는 "관련 정책이 없는 지자체에서 살고 있는 고립ㆍ은둔 청년들은 사각지대에 몰릴 수밖에 없다"면서 말을 이었다.
"그들을 무조건 밖으로 나오게 하는 정책이나 제도는 실효성이 없다. 1차적으로 청년들이 왜 은둔하게 됐는지 이유를 파악한 후 심리ㆍ정서적인 부분을 치료해야 하는 게 우선이다."
은둔 상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당사자를 지원하는 '안무서운회사'의 유승규 대표는 "고립ㆍ은둔 청년은 세상에서 상처받은 기억이 많기 때문에, 자신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실제로 지자체 지원을 발판으로 밖으로 나오는 고립ㆍ은둔 청년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고립ㆍ은둔 청년이 늘면 좋을 게 없다. 경제에 활력이 감돌지 않는다는 측면을 넘어 사회적 비용도 적지 않게 치러야 한다. 최근 청년재단의 연구에 따르면 고립ㆍ은둔 청년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7조원대로 추산됐다. 고립과 은둔의 세상을 택한 그들을 사회로 끌어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는 거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자체마다 지원 기준이 다르다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며 "전국적인 표준기준과 관련 법령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약속은 정말 지켜질 수 있을까.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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