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문제 제기, 문체부 “국제 대회 출전 제한 폐지”
대한배드민턴협회(배드민턴협회)를 상대로 감사를 진행한 문화체육관광부가 김택규 회장 등 일부 임원들의 후원 물품 배임 및 유용과 보조금법 위반 사실을 확인했다. 문체부는 향후 관련 내용을 좀 더 조사한 뒤 수사기관에 참고 자료로 제공하고, 문제가 된 사업의 예산을 직접 관리·감독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문체부 체육국은 10일 서울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한배드민턴협회 조사 중간 브리핑’을 열어 그간 배드민턴협회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안세영 선수가 파리올림픽에서 우승한 뒤 협회의 미진한 선수 관리 등 각종 운영 실태를 폭로하자, 문체부는 △선수 관리 △협회 후원 계약 방식 △보조금 관리 실태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왔다. 이 과정에서 안세영을 포함한 국가대표선수단 22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문체부 중간 조사 결과를 보면, 김택규 회장은 후원 업체와 승강제리그와 유·청소년 클럽리그에 사용할 물품 구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른바 페이백 방식으로 추가 용품(셔틀콕, 라켓 등)을 받아 임의로 사용했다. 구체적으로 2023년에는 총 8억8000만원어치의 물품을 구매하면서 1억5000만원의 용품을 받았고, 2024년에는 8억6000만원어치 용품 계약을 체결해 1억4000만원을 용품을 페이백 받기로 했다. 배드민턴협회는 2022년 승강제리그와 유·청소년 클럽리그 운영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뒤 매년 40∼42억원을 문체부로부터 지원받았다.
김택규 회장은 페이백으로 받은 용품을 지역별로 차등 배분했다. 승강제리그와 유·청소년 클럽리그 공모사업추진위원장이 소속인 태안군배드민턴협회에만 전체 페이백용품의 약 27%(2023년 1억5000만원 중 약 4000만원)가 배분됐다. 2024년에도 페이백용품은 공문 등 공식 절차 없이 임의로 배분됐고, 사업의 목적과 무관한 대의원총회 기념품 등으로 일부 사용됐다고 문체부는 밝혔다. 협회는 또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후원사와 총 26억원어치 용품을 수의계약으로 체결해 보조금법을 위반했다.
이정우 체육국장은 김택규 회장의 페이백을 놓고 “횡령·배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규모가 어디까지 늘어날지는 좀 더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추가 조사를 마치는 대로 수사 참고자료로 (수사기관에) 제공할 예정”이라며 “승강제리그 사업은 대한체육회를 통해 협회에 예산이 제공됐는데, 이제는 직접 교부 및 관리 감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외국의 사례와 비춰볼 때 배드민턴협회의 후원용품 사용 강제 조처는 불합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미국, 일본, 프랑스는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용품은 사용을 강제하지 않고 있다. 덴마크는 신발 및 라켓에 대한 권리가 선수의 소유임을 명시하고 있다.
문체부는 라켓, 운동화 등 경기력에 민감한 영향을 미치는 용품은 선수 본인의 결정권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후원사와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후원사의 용품만 이용해야 한다는 계약 규정은 배드민턴협회의 요청으로 이뤄진 만큼, 추후 후원사와 조율이 가능하다.
과거 후원사들의 후원금 중 일부가 국가대표선수단에 배분되게 하는 규정이 삭제된 상황도 추가로 발견됐다. 배드민턴협회는 2021년 6월 해당 규정을 삭제했고, 이 과정에서 선수단의 의견이 전혀 수렴하지 않았다. 또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선수 또는 선수단에게 지급됐던 후원사 보너스 또한 2023년부터 협회에 지급되도록 조항을 바뀌었다. 문체부는 이를 놓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한편, 관련 예산의 사용처를 파악하기로 했다.
문체부는 ‘국가대표가 아닌 배드민턴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 규정을 놓고선 ‘직업행사의 자유’를 과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해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배드민턴협회는 국제대회 출전 요건을 국가대표 활동 기간 5년 이상 및 일정 연령(남자 28살, 여자 27살) 이상인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국가대표 선수단 대다수는 국제대회 출전 제한 폐지 또는 완화를 희망하고 있었다. 다른 종목에서는 비국가대표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 규정이 없고, 주요 외국(미국, 일본, 덴마크, 프랑스) 또한 국제대회 출전 제한이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이밖에 문체부는 △단식과 복식의 별도 선발 절차 마련하고 △학력에 따른 연봉 상한 차별(고졸 5000만원, 대졸 6000만원)을 철폐 및 계약 기간(고졸 7년, 대졸 5년) 단축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또 배드민턴협회가 선수의 임무로 ‘촌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을 들고, ‘본 협회의 정당한 지시에 불응하는 자’를 선수 결격 사유로 둔 규정은 즉각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문체부는 이날 발표된 제도 개선 방안을 중심으로 9월말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정우 체육국장은 “전체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김택규 회장은 횡령과 배임 사태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며 “승강제리그는 배드민턴협회 외에 탁구, 테니스, 당구가 추가돼 있다. 여기서도 물품과 관련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었고 유사한 사례가 있을 수 있어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관계가 필요하다면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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