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가짜뉴스’를 좋아해
올여름 폭염에 스쳐 흘러간 뉴스 가운데 에스엔유(SNU) 팩트체크센터 운영 중단 소식이 있었습니다.
팩트체크센터는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가 운영하는 비영리 플랫폼으로 ‘팩트체크 저널리즘’을 실험해 온 곳입니다. 팩트체크 저널리즘이란, 매일 숨 가쁘게 쏟아지는 정보의 포화 속에서 공익적 관점에서 진위를 가릴 필요가 있는 사안을 추리고 이를 면밀하고 투명하게 검증하는 장르의 기사를 가리킵니다. 2017년 3월 출범 이후 30여개 언론사가 참여해 7년간 5000여개의 팩트체크 기사를 생산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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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받아쓰기 관행에 대한 반성, 권력자의 말과 행동에 대한 감시, 바쁘고 피곤한 현대의 독자들을 위한 검증 대행 서비스 등 여러 측면에서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는데 그만, 지난달 18일부로 ‘무기한 휴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원인은 재정 악화. 센터 출범 직후부터 지원을 이어오던 네이버가 1년 전 갑작스럽게 손을 뗀 것이 치명타였죠. 정은령 팩트체크센터장은 앞서 네이버의 지원 중단 배경에 평소 센터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현 집권 세력의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월 21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간사였던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이런 발언을 했지요.
“팩트체크센터는 네이버를 사용하는 국민으로 하여금 윤석열 정부와 보수 진영의 발언이 대부분 ‘가짜뉴스’라는 인식을 갖게끔 편향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2023년 1월3일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
‘팩트체크 저널리즘’을 죽이다
어찌 보면 아이러니한 장면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그간 누구보다 ‘가짜뉴스 근절’을 강조하고, ‘가짜뉴스와 전쟁’을 정치적 소명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네 공론장을 더럽히는 거짓부렁을 걸러내고자 스스로 팔을 걷어 붙인 팩트체크센터의 활동은 장려되어 마땅할 텐데, 오히려 찍어누르는 모양새였습니다.
야당 시절의 박 의원은 사뭇 달랐습니다. 문재인 정권 2년 차였던 2018년 10월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를 제작하고 유포한 사람은 사법 처리해야 한다’며 수사기관과 주무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대책 마련을 주문합니다. 더불어민주당발 ‘가짜뉴스와 전쟁’이었죠.
이에 박성중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이렇게 나서는 것은 정치적 오해를 부를 수 있고, 반대 목소리를 억누를 여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당시 과방위 소속이었던 윤상직 의원 역시 “정말 무섭다. 이것이 소위 이야기하는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s, 위축 효과)다. 공포다, 공포”라고 했습니다. 국가가 앞장서서 참·거짓을 힘으로 단속하기 시작하면 사회 구성원이 누리는 자유는 반감되고 말 것이라는, 교과서적인 지적입니다.
그랬는데 정권 교체와 함께 칠링 이펙트의 철자를 죄다 까먹은 걸까요.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검증 보도는 ‘허위·조작·공작’ 딱지가 붙어 수사 대상이 되었고, 수사팀이 발족할 무렵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와 언론진흥재단에는 ‘가짜뉴스’ 대응 기구가 설치됐습니다(지금은 둘 다 사라졌습니다). 여당 의원들은 “가짜뉴스를 만든 사람은 패가망신시켜야 한다”(윤두현 전 의원)는 새로운 소신(?)을 공공연하게 드러냈습니다. 개별 보도에 대한 행정 심의부터 포털 관련 입법까지, ‘가짜뉴스 퇴치’라는 구호 아래 일사불란한 공론장 리모델링이 시도됐습니다.
‘무엇이 가짜인가’ 규정하는 힘
‘가짜뉴스’는 문제적인 용어입니다. 알려진 것처럼 이 말은 ‘fake news’를 직역한 말이고, 2016년 미국 대선을 기해 세계적인 유행어가 됐습니다. 2018년 비비시(BBC)가 정리한 ‘가짜뉴스의 역사’에서 요점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먼저 ‘가짜뉴스’라는 말을 언급한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가 아닌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그는 대선 유세 중 민주당을 겨냥한 ‘피자 게이트 음모론’을 에둘러 지칭하기 위해 이 말을 썼다.
―트럼프는 당선 일주일쯤 뒤부터 ‘가짜뉴스’라는 말에 재미를 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엔엔(CNN) 기자를 향해 이 말을 사용하면서 여러 사람을 심란하게(혹은 짜릿하게) 만들었다.
―이후 당시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을 통해 유포된 허위 정보가 미국 유권자에게 제법 영향을 미친 사실이 밝혀졌다. 그 중 일부는 마케도니아의 한 마을에 등록된 수백개의 ‘가짜 뉴스 웹사이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뉴스의 꼴을 갖춰 사람들을 기만하며 이를 바탕으로 수익까지 올리는 이 행태는 ‘가짜뉴스’를 이전까지의 왜곡·거짓말과 구분 짓는 특징이 됐다.
―그러나 결국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퍼질수록 용어를 명확히 정의하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보부터 괴담, 음모론, 오보는 물론 그저 제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까지 모든 것에 ‘가짜뉴스’를 붙이기 시작했다.
결론은 마지막 문장입니다. ‘가짜뉴스’는 그 불분명한 개념에 비해 단어가 갖는 파괴력이 너무 큰 나머지, 이 용어의 의미에 관한 사회적 합의 없이 막무가내로 퍼져 나갔고 모두가 저 좋을 대로 쓰는 말이 됐습니다. 힐러리는 음모론을, 트럼프는 제도권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불렀죠. ‘무엇을 가짜로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쓰인 겁니다. 특히 정치인에게 더할 나위 없는 무기인 셈입니다. 그들의 말에는 ‘규정하는 힘’이 있으니까요.
앞서 인용한 이낙연 총리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가짜뉴스 처단’을 구실 삼아 언론 규제(혹은 개혁)를 밀어붙이는 모습은 민주당에서도 발견됩니다.
문재인 정부의 ‘가짜뉴스 대책 마련’ 요구에 “자율규제가 우선”이라며 갈등을 빚던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당시 좌초됐던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담긴 언론중재법 개정 작업은 22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 중입니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는 “가짜뉴스를 쓰지 않으면 될 일”(정청래 의원)이라고 받아치고 있지요. 민주당은 22대 총선 기간 ‘가짜뉴스티에프’(TF)를 발족해 ‘가짜뉴스 제보’를 받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가짜뉴스와 전쟁’이 실제로는 ‘언론탄압’의 구호라고 비판해온 야당의 행보치고는 뜨악한 일이었죠.
‘가짜뉴스’, 매혹적인 조어의 승리
일부 연구자들은 ‘가짜뉴스’라는 말이 가진 불쾌한 잠재력을 감지하고 이 표현을 쓰지 말자고 주장해 왔습니다(에스엔유 팩트체크센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짜뉴스’ 대신 ‘허위정보’(misinformation)는 어떻겠냐는 식으로요. 그러나 잘 만들어진 신조어 앞에 장사 없는 법이지요. 정치인과 유권자는 물론 언론도 ‘가짜뉴스’를 선택했습니다. 진실을 식별할 수 없는 혼탁한 시대를 표상하기에 이 만한 용어가 없다는 것일테죠. ‘가짜뉴스’에 관한 개념 정의가 제각각인 점마저 혼세의 표제어라 할 만 합니다.
이것은 ‘가짜뉴스’의 승리처럼 보입니다. 실제 허위조작정보만큼이나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널리 창궐하여 전 지구적인 ‘인식의 전장’에서 승전고를 울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승리의 북소리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정치가가 늘어날수록 ‘가짜뉴스’ 낙인을 찍어 자유를 억압하려 드는 권력의 만행도 잦아질 겁니다. 그건 그것대로 ‘가짜뉴스의 폐해’ 못지 않게 두려운 일입니다.
미디어 잔혹사는?
유튜브 댓글부터 저녁 뉴스 날씨예보까지 미디어의 영토는 드넓습니다. 늘 논쟁이 끊이질 않는 영역이지요. 이곳에 익숙하고도 새로운 전선이 들어섰습니다. 언뜻 정치적 이전투구에 지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우리의 일상에 깊이 연루된, 자유에 관한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 투쟁담을 중계해드립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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