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저항 만만찮았나…'설득' 키워드로 내세운 김정은 연설
수해로 민심 이반 '이중고'…최고지도자 화법 바꼈다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국경일을 맞아 장문의 연설로 현 국정 운영 방향을 설명했다. 예정에 없었던 연설에선 최근 현지지도 때와는 달리 간부들을 질책하거나 다그치는 모습이 아닌 '설득'하는 화법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김 총비서가 정권수립기념일(9월 9일) 76주년 기념 연설에서 "당 제8차 대회가 제시한 투쟁목표 점령의 승산을 확정지어야 할 올해 현재까지의 국가사업 전반의 현황을 종합적으로 심도있게 분석평가하고 국가사업에서 견지해야 할 투쟁 방향과 지침들을 상세히 밝혔다"라고 보도했다.
그간 김 총비서는 당 회의나 최고인민회의 회의를 계기로 국정 운영 방향을 밝히는 연설을 해왔다. 이번처럼 특별한 회의가 열리지 않았음에도 김 총비서의 연설이 이뤄진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최고지도자가 나서 민심을 챙겨야 할 상황이라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그는 연설에서 올해부터 개시된 지방발전 정책에 대해 특히 부각했다. 이는 북한이 '지방발전 20x10'이라는 이름으로 추진 중인 것으로, 앞으로 10년간 매해 20개 지방 지역에 새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김 총비서는 지방발전 정책이 "70여년, 근 80년에 달하는 기간 해내지 못했던 사업이라 아직은 지방발전 구상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와 입장을 갖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최고지도자가 직접 구두로 자신이 주도적으로 추진 중인 정책에 반대의 목소리가 있음을 시인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그는 그러면서 이같은 '내부의 회의적 시선'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거나 간부들에게 잘못을 돌리지 않고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확언한다, 가능하다"라고 재차 '설득'하는 듯한 언급도 내놨다.
아울러 "아직은 나라의 경제 형편이 순탄하지 못하고 여력을 내기도 힘든 조건"이라며 현재의 상황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거나 "당과 정부는 지방의 낙후성을 최대한 더 빨리 털어버리기 위해 추가적인 구상을 발기하고 철저한 실천에 옮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라며 정책 추진의 필요성을 거듭 부연하는 발언도 눈에 띄었다.
이번 연설은 올해 여름부터 이어진 김 총비서의 지방발전 정책 추진 현지지도에서 보여 준 그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지난 7월 함경남도 신포시의 양식사업소 건설 준비 현장을 찾아서는 "설계 수준이 낮다", "당 정책이 관철되지 못했다"라고 간부들을 공개 질책했다. 이달 초엔 함경남도 함주군의 지방공업공장 건설 현장을 찾아 "속도에만 치우치는 '무지향적 경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잔소리'를 했다.
그랬던 김 총비서가 '이례적 연설'을 자청해 간부와 주민들을 향한 '설득'에 나선 것은 압박 일변도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반발과 회의적 관측이 이어지며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타당한 측면도 있다.
여기에 지난 7월 말 서북부 지역에 발생한 대규모 수해가 반발 여론을 크게 부추겼을 가능성도 있다. 이날 연설에서도 김 총비서는 지난 7월 말 평북도·자강도·양강도 수해로 '국가적 사업에 지장'을 받았다고 언급했는데, 수해 이후 김 총비서가 '애민' 행보에 집중했던 것을 감안하면 지장의 요인이 물리적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김 총비서는 "고층, 초고층 건물들을 지으려면 그만큼 기초가 든든해야 하는 건축공학적, 구조역학적 원리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제도가 굳건하려면 민심적 기초가 든든하고 전체 인민이 실생활을 통해 여기에 적극 공감해야 한다"라고 말해 현재 주요 관심사가 '민심 다스리기'에 있음을 거듭 표출했다.
이번 연설이 올해 국가사업 전반에 대한 총괄 분석'임에도 '핵능력 지속 강화' 외에 대남 및 대외정책과 관련한 언급이 나오지 않은 점도 북한의 현 상황을 보여 주는 모습이라는 평가다. 지금 '바깥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연설은 대외 메시지보다는 대내 메시지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판단된다"며 "주민들이 직면한 여러 가지 어려움과 이로 인한 불평불만이 체제 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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